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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Mar 16. 2021

성경의 주된 가르침은 무엇인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 (성경의 핵심적인 교훈)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Question 3 (제3 질문)

Q. What do the Scriptures principally teach?
문: 성경의 주된 가르침은 무엇인가?

A. The Scriptures principally teach what man is to believe concerning God, and what duty God requires of man.
답: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에 관해 마땅히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주로 가르친다.
미가서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Micah 6:8 He hath shewed thee,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th the Lord require of thee, but to do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thy God?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John 20:31 But these are written, that ye might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elieving ye might have life through his name.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John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I. 모범답안: "성경의 주된 가르침은 (1) 인간이 하나님에 관해 마땅히 믿어야 하는 것과; (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이다"

  제3문은 성경의 '주된'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묻고 있다.  성경의 주된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이 하나님에 관해 마땅히 믿어야 하는 것.  둘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  이 두 가지가 성경의 주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세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인간이 하나님에 관해 마땅히 믿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 예수를 믿으면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관한 것'에는 수없이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창세기부터 하나님은 '온 열방을 향한 꿈'을 꾸셨고, 그 꿈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한 '제사장 나라'의 방식으로 시작하여 예수의 십자가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책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시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구약은 신약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내용이라는 점도 주목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다른 것을 요구하시지 않고, 오직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성경 해석으로 만들어낸 '행위'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말씀은 명확하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세 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그 문장의 시작은 '오직(only)'이라는 점에서 세 가지 이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지 않으심을 알 수 있다.  '공의'를 행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하나님은 이 세 가지만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성경은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두꺼운 책이지만, 그중에서도 바로 위 내용들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주된' 가르침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를 하나로 줄이면 '예수'라는 단어로 귀결될 것이다.  성경은 예수를 증언하는 책이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공의, 사랑, 겸손은 예수가 이 땅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었다.


II. 스스로 새로 써보는 답안: "성경의 주된 가르침은 '겸손함'이다"

1. 개요

  모범답안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가 쉽지 않다.  숫자를 써서 답을 구분지어야 할 만큼 제3문의 답은 상당히 여러 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곱씹어보면 볼수록 결국 이 모든 답을 함축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가 떠오른다.  바로 '겸손'이다.  다시 질문과 답을 나열해 보자.  "성경의 주된 가르침은 무엇인가?  겸손이다."  이 문장이 어떻게 읽히시는가?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신다면, 앞으로의 논의가 흥미로우실 것이라 자신한다.


2. 성경의 핵심 내용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성경의 핵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표면적으로 그렇지 않아 보일지라도, 그 내면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동물을 잡아 드렸던 첫제사는 신약에서 예수님의 피로서 드려진 완전한 제사로, 출애굽 과정에서의 유월절 어린양은 신약에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로, 광야에서의 놋뱀을 통한 치유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으로.  성경의 모든 내용들은 결국 예수와 연결된다.  그래서 성경의 핵심 내용은 부정할 수 없이 '예수' 그 자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인간을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그 죄로 인해 자신을 단번에 제물로 바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창세기부터 계시록 까지를 꿰뚫고 있다.  기독교의 핵심은 '죄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가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고, 그 죄로 인해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3. 성경의 핵심 내용들은 겸손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나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와 겸손이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예수'와 겸손은 연결될 수 있을까?  예수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겸손'이 등장한다.


  성경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사이에서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 무엇일까?  나는 그 구분점이 바로 '겸손'에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 없는 겸손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잘 보이기 위한, 또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위한' 겸손이지만, 성경에 따른 겸손은 나보다 큰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 겸손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이제부터 성경이 말하는 겸손에 대해서(겸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을 통해 어떻게 성경의 가르침이 겸손과 연결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4. 겸손이란 무엇인가?

1) 두려움의 인지(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 본성 중 하나가 '거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별거 아닌 거 같다가도,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내가 다른 이보다 나은 것이 보이면 어깨가 올라간다.  


  거만은 두려워할 대상이 없는 것에서 발생한다.  겸손이 거만의 반대라고 보았을 때, 겸손은 두려움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무리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있더라도,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겸손은 생겨나지 않는다.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것은 인간과 다른 차원의 존재인 '신'이 있다는 것이고, 추후 최후의 '심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인지하게 만든다.  그러한 두려움의 인지는 기본적이면서도 근원적인 겸손을 발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2)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전제하는 것


Deus Vult!
(하나님께서 바라신다!)


  "Deus Vult"라는 라틴어 경구는 이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혔겠지만, 한때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문구다.  이를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바라신다"라는 뜻이 되는데, 이는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제1차 십자군 전쟁을 선포하며 제창했던 문구다.  의역하면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원하신다"라는 의미가 되겠다.  예수는 이 땅에 와서 오른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어주라는 가르침을 주며, 자기 스스로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며 전 인류를 위한 삶을 살았는데 사람들은 어느새 칼과 창을 들고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카톨릭과 다른 '이교도'를 배척하며, 그 배척과 성취하고자 하는 토지를 위해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방법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운운한 것은 지금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십자군 전쟁에서 있었던 해당 합리화 방법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신앙인들에게 사용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은 죄인이며, 끊임없이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을 보면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더욱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알면 알수록, 그 내용에 대해 강한 어조로 이야기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설프게 알거나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 나오는 성경과 관련한 우리의 강한 어조는 "Deus Vult"의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겸손'과 연결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감히 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이교도로 모함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던 당시 모든 성전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가 이스라엘에 오셔서 수많은 율법학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은 사실 간단하다.  과연 네가 알고 있는 성경이 진짜 맞느냐는 것이다.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주일 성수를 표면적으로 강제하는 바리새인에 대한 가르침... 수없이 많은 장면에서 예수님은 겸손하라 이야기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지금 내 생각이 성경의 가르침과 맞는가?'에 대해 의심해보아야 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9-30


3) 구원이 나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아는 것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내용이 바로 '구원'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원은 기독교에서 정말 중요한 개념이다.  구원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의견들과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명제는 기독교인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명제다.  그리고 이 명제는 '겸손'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겸손은 '내가 할 수 없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무력함은 사람들을 겸손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그 겸손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


III. 나오며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날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덕목을 하나 꼽자면 '겸손'이다.  본래 겸손은 동양 국가들에서 미덕이었고 서양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기 때문일까?  너무나도 빠르고 깊게 서구화된 우리 사회, 특히 교회에서 더 이상 겸손은 미덕이 아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드러내고 뽐내어(부르디외의 표현에 따르면 타인과 '구별 지어')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성경을 통해 겸손을 깨닫고 예수에게 겸손을 배워 자신의 삶에 녹여내야 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겸손을 잊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게도 성경에 나오는 수없이 많은 인물들 중,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사용하셨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겸손을 품고 있다.  그 인생 전체에서 겸손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겸손은 지키기 참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만큼 그 인물들은 겸손을 가득 품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기드온... 등등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들은 겸손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 본문에서는 겸손에 대해서 간단히 3가지 이야기를 했다.  (1) 나의 작음을 알고 그의 크심을 아는 '두려움의 인지', (2) 나의 죄성과 한계성을 인정하고 늘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전제하는 것, (3) 구원이 무력한 나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아는 것.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짧게 서술한 겸손과의 연결점보다 더 촘촘한 연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성경은 끊임없이 겸손을 이야기하고 있음이 참으로 놀랍다.  성경의 주된 가르침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더 멋지고 놀라운 대답이 많이 있겠지만, '겸손'이라는 대답도 나름대로 괜찮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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