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롬지원 Feb 28. 2024

사랑의 시차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회한에 대하여

글과도, 지금 하는 일과도 거리가 먼 회사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어쩌다 그 말을 꺼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수에게 글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아. 그리고 무려 나의 일기를 보여주었어. 생각해 보니 그분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이후 나의 첫 독자라고 할 수 있겠지. 그 당시 나는 비록 글이 아닌 취업을 선택했지만.


하지만 결국은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어.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글이 나에게 들어왔어. 노크도 없이. 넌지시 들어온다는 말도 없이 제 집에 온 양, 냅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어.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나, 어쩌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결정적인 이유를 모르겠고, 몇 가지 계기들을 짐작할 뿐인 거야. 누군가가 글을 쓸 생각은 없는지 건넨 말 한마디 때문이었을까. 글쓰기 책을 읽다가 울어버린 게 이유였던 것일까. 시작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하는 이유는 명백하게 잘 알고 있으니 된 것 아닐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펭귄은 서 있는 것만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70%를 사용한다고 하지. 나의 경우,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 하루의 80% 정도는 직장, 수면, 운동에 쓰는 것 같아. 그러고 남은 20%를 글에 쏟을 수 있어. 그 80%는 내가 살기 위해 바쳐야만 하는 시간이고, 남은 20%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달라지는 거야. 두 발은 땅에 서서 두 눈만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삶에서, 내가 별을 바라보는 데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을 계속 세어보게 되는 것 같아. 나는 하루를 나의 꿈으로 열고 닫아. 회식을 해도, 야근을 하고 나서도 쓰기도 하지. 시간은 금이라고 하잖아. 더 가치 있는 금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나의 시간을 세공하고자 해. 시간이 아까운 거지.


그러다 문득 시간을 너무 흘려보냈다는 회한이 드는 거야. 수많은 문학책을 섭렵해 자신만의 의견을 가진 누군가를 볼 때, 자기 작품을 낸 누군가를 볼 때. 오랜 시간 내가 바라는 그 꿈을 위해 이미 많은 시간을 쏟은 누군가를 볼 때. 그 순간은 나 자신, 나의 글, 그러니까 나의 사랑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바라볼 때였어. 작곡을 지망할 때도 이랬지. 아주 고질병이야. 이 병 때문에 나는 작곡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렇게 작별했는데, 그런데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지금이 나의 최선이야.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순간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어. 과거의 나는 다양한 활동들을 했고, 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었어. 지금 글쓰기라는 새로운 존재를 사랑하게 되었고, 예전부터 사랑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는 건 어불성설인 것 같아. 지금 만났기에 사랑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수많은 사랑의 시도를 통해서 좀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도 더 잘 사랑할 수 있을 거야. 과거의 경험이, 과거의 사랑이 지금의 사랑을 지켜주고 있는 거야. 무엇보다 글쓰기는 다양한 시도를 반기고 그 다채로움을 껴안지. 글쓰기를 사랑하다니 난 행운아야.


비교하기에 앞서, 처음 내가 그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던 건, 내가 그 일을 하는 게 너무 행복했기 때문 아니야?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마음이지. 나는 좋은 책들을 더 많이 읽고 싶고, 좋은 생각들을 더 많이 하고 싶고, 좋은 행동들을 더 많이 하고 싶어. 몸이 반응하는 것인지 나는 밤 12시경에 잠이 들면 알람 없이 오전 5~6시에 눈이 떠져. 눈을 뜨면 고양감에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아. 참고로 이전까지 나의 평균 기상 시간은 오전 8시 20분이었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나는 글을 쓸 때 경쾌함을 느끼고 머리가 맑아져. 나는 이것을 라이터스 하이(Writers' high)라고 불러. 글을 쓰며 나의 약하고 수동적인 생각들을 극복해 나가는 것에 나는 큰 만족감을 느껴. 나와 나의 사랑은 글로 만들어지고 있어. 글로 인해 나는 차분해지기도 하고, 진지해지기도 하며, 때론 설레고 들뜨기도 해. 특히 일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글이 될 조각을 만나게 되면 심장이 두근거려. 내가 만들어가야 할 '나'가 있고, 만나게 될 관계, 일과 즐거움, 생각과 글들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의 꿈을 지켜내고 싶어. 예전처럼 스스로에게 휘둘려서 나의 기쁨을 잃고 싶지 않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거나 더 나아지고 싶다는 비교 심리는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싶어. 그렇게 나의 마음을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어르고 달래고, 쉬운 일은 쉽게 내버려두려고도 하며,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고 해도 새로운 방법에 대해서는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어. 나의 글쓰기를 지속하게 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판단해.


한편, 나는 고민, 걱정하기보다는 준비하려고 해. 처음부터 마라톤 풀코스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전에 하프, 10km, 5km를 달리거나, 누군가는 제대로 걷기부터 시작해야 할 수도 있어. 링컨도 나무를 팰 1시간을 주면 45분 동안 도끼날을 간다고 했지. 나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부터 하고 있어.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앞장서서 뛰어가고 있지만 결국 나에게는 오늘만이 있고, 오늘 쓸 글이 있기에,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해. 그런 점에서 다음 문장은 현재 나의 페이스에 긍정을 보내줘. 이렇게 가는 게 맞다고 응원과 위로를 해줘.


"평범한 일을 매일 평범한 마음으로 실행하는 것이 비범한 것이다" by 앙드레지드


'빨간 클립 한 개' 이야기를 알아? 빨간 클립 하나를 가지고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했더니 1년 만에 이층집 한 채가 되었대. 그런 꿈들도 이루어지는데, 내가 꾸는 이 꿈이 왜 안 되겠어? 수많은 희망의 증거들을 보면 좌절할 수가 없어. 나는 잘할 수 있을 거야.


결국 내가 바라던 대로 나의 의도를 잘 전달한다면, 독자들에게 생함, 자유, 성장, 강함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나의 일을 다 한 거야. 내가 가진 모든 것에 집중해 독자들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 거야. 과거를 후회하기보다는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해. 더 잘할 수 있도록, 더 잘 사랑할 수 있도록 과거를, 과거의 사랑을 잘 다듬어보려 해. 현재의 사랑은 뒤늦은 만남인 만큼 더 절절하게 사랑하면서. 내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꾸며진 모습과 내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날 것의 내 모습, 아니 스스로 평가절하한 것에 가까운 내 모습을 비교하지 않으려 해. 정말로 사랑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발견되지 않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