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외사랑
기적이 아닐까. 서로가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은 어떻게든 한쪽에서 먼저 시작되기 마련인데, 그 시간이 계속 이어지다가 연인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시간 이후 단념과 단절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를 원하지 않을 수 있지. 그 사실을 알고, 앞으로 이 사람이 나의 사랑이 되지 않더라도 사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미래의 그림을 잘못 보고 있는 걸지도.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사랑이니,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것 같아. 지금 네 눈앞의 그 사람이 좋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자체로 멋진 일이지. 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최대한 주는 것도 너무나 멋진 일이야.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줄 생각만 한다면, 그 사람이 나에게 사랑을 주건 말건, 어쨌거나 나는 그에게 사랑을 줄 수 있잖아. 받으려고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어.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아가 보는 거야. 현재의 나는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환대, 관심, 인정, 인식, 경청, 반응, 사랑을 생각해 보고, 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미래에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게 될 상상을 해보는 거야. 이번에는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건 나는 사랑을 찾아갈 것이고, 사랑은 나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누군가를 중독 수준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어. 하루 종일, 무엇을 하건 모든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거나, 그 사람이 일상의 의무와 휴식을 비집고 들어와, 종국에는 그 무엇도 의무와 휴식이 되지 못한 채, 온몸과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는 거야. 비로소 ‘사랑의 포로’라는 구태의연한 비유가 사실은 나를 꿰뚫어버리는 진리였구나 하고, 스스로 수인이 되길 자처한 현실을 깨닫게 되지. 마치 ‘그 사람 라이팅’을 당한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인고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정은 널을 뛰게 마련인데,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에 부드럽고 가벼운 미풍이 불어오는 것 같다가도, 썩 좋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우박과 서리가 날리는 태풍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거야. 한때 사랑의 아픔 따위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주어진 아픔들’에 비할 바 아니라 치부했던 나를 벌주려 아픔이 내게 덮쳐온 것 같기도 했어. 하지만 그 사랑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책을 읽으려 해도 내가 처해있는, 사랑에 관한 복잡 미묘한 상황이 떠오르고, 순식간에 책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아닌 스스로의 사랑의 감정을 읽어버리게 되고 마는 거야.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해보더라도,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어.
그나마 태풍을 강풍으로 돌리는 방향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한술 더 떠 이 사랑에 취해버리는 거야. 상황적 어려움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더더욱이 그 사람의 향기를 맡는 데에 집중하는 거야. 어쩌면 그저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또다시 한 발짝이라도 나오게 된다면 거침없이 모든 것이 휘몰아치게 될지언정, 어찌 되었든 지금도 태풍이 아니겠느냐 하는 본전치기 같은 생각이야. 태풍의 눈 속에서 풍속이 약해지길 기다리고 기도하는 것이지.
그 상황을 겪고나니 나를 먼저 다독거려줘야겠더라고.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 하는구나, 함께 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구나, 그리고 나는 그만큼 멋진 사람을 발견한 거구나. 우선 이런 상황과 마음을 만들어 낸 나를 칭찬해 줘. 그리고 내게 무엇을 채워주면 될까, 생각해 봐. 내가 즐거워할 일을 하고, 스스로를 더 좋아하게 될 생각과 행동을 나에게 선물하자. 그리고 그때그때 때를 놓치지 말고 좋은 사람이라 인정해 주고,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자.
우리는 계속 기적을 기대할 테니까. 우리는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나를 알아볼 사람을 만나길 욕망하고 고대하지. 그런데 우리는 조금씩 다르고, 저마다 이상하며, 얼마간은 특이한 데다, 다소 별나. BTS의 'Whalien 52'라는 곡에는 소리의 주파수가 일반적인 고래들과는 달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자신만의 52Hz 소리를 내는 고래가 있어. 백예린의 '물고기'라는 곡에서 '땅에서도 숨 쉴 수 있는 물고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하늘에서 자유롭게 날다가 땅에서 잠시 쉬고 있는 새'인 너를 만나게 돼.
그러다가 문득 생각해 보게 되는 거지. '이상한 물고기'가 '이상한 새'를 알아볼 수 있는 건 서로가 '서로의 물고기'임을, '서로의 새'임을 계속 이야기했기 때문일 거라고. 계속해서 당신을 알아보았다고, 당신 속에서 나에게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해야 해. 비록 그 언어가 종을 초월하여 다소 복잡한 것일지라도 말이지. 그것이 부족했기에 이제껏 혼자 '땅에서 숨을 쉬고 있는 물고기'였던 거야.
아주 열망해 오던 것을 기다리고만 있는 건 아닐까? 설령 지금 누구도 내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느낄지언정, 52Hz 고래처럼 계속 나의 소리를 내보는 거야. 누군가의 '땅에서도 숨 쉴 수 있는 물고기'가 되고 싶으니까. 내가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바로 그 물고기'가 되어 주고 싶어. 나도 나를 드러내고, 내가 상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열심히 들을 거야.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새' 임을 말하게 할 거야.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상대에게 반응을 해보는 거지.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건 상대의 외모, 옷, 멋진 차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우리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라고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잖아. 서로만 들을 수 있는 비밀스러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시간 속의 그 사람은 어떤 일을 겪고 있을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내가 언젠가 만나게 될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하고 상상해 보면 누군가와 마음 깊이 소통하고 연결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해. 혼자만의 시간을 더 근사하게, 즐겁게 보내면서 말이야. 그리고 그 상상을 믿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해. 박막례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내 마음대로 북 치고 장구치고 하면서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기를 기다릴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나는 더 이상 2024년 2월 26일 9시 30분의 내가 아니게 되고, 조금 더 긴 시간의 흐름 속의, 더 큰 나를 만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