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었다. 투자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자 했고, 한편으론 투자 수익에 구애받지 않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님들이 누구인가. 속세의 물질들을 놓아버리고 출가한 분들이 아닌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메세지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출판 후 남아 있던 재고가 소진되고는 더 이상 재출간되지 않아 책을 살 수는 없었고, 도서관도 최근에 지어진 곳에는 책이 없어 쉽사리 빌릴 수도 없었다. 초판 발간 시기는 무려 1976년이었다. 책이 흘러간 시간만큼 책이 머무는 곳도 아주 낡은 도서관에서였다.
차를 타고 비로소 무소유 책이 모셔져 있는 도서관을 방문했다. 책은 열람실이 아닌 서고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마저도 오후 6시가 지나면 서고 책은 꺼내지 못하는 줄 모르고 갔다가, 도서관 직원분의 수고로운 친절로 겨우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첫인상은 책이 참 낡았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살 수 없는 책을, 사람들이 두고두고 돌려가며 읽느라 닳을 대로 닳아 책에는 테이프가 감겨있었고, 본디 하얬을 책의 껍질은 누렇게 바래 무수한 손을 거쳐간 티가 났다. 여기에 내가 또 하나의 손때를 더하려는 것이었다.
법정스님의 글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적이 있는데, 오래간만의 해후였다. 수 십 년 전 스님이 걱정하던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에 씁쓸해하기도 했고, 지금 이 시대에 여전히 필요한 메세지를 만났을 때는 남다른 울림이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구성하는 입자들은 필경 크게 요동을 치거나 잔잔하게 아름다운 물결을 그리며 진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래된 와인처럼 말씀 하나하나가 짙고 향기로웠다.
스님의 필력이 대단하셔서 술술 읽혔지만, 어쩐지 이 책을 빨리 읽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에 깊이, 천천히 새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어서 이다음의 또 향기로운 말씀을 읽고 싶어 결국 계속해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짧은 수필들이 다양한 경험으로 저마다 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무소유라는 큰 주제가 굳건히 자리하며 글들을 관통하고 있었다. 책을 읽기 전까진 무소유라는 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소유란 그것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 소유하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미니멀하게 산다고 생각했지만, 세상 호화롭게 집착하며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수많은 경험들이 나를 거쳐갔음을 반증하듯 과거 그때의 그 물건들이 먼지가 쌓인 채 여전히 내 주변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고, 지금도 수많은 옷과 책들에 둘러 쌓여 있다. 그리고 또 더 갖기 위해 투자 공부를 하려는 것인데, 내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필요한 만큼’이라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겠지. 필요한 곳에 쓰기 위해 얻으려고 하고 있는지, 정작 중요한 것은 놓아둔 채 중요하지 않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고 애쓰고 괴로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유념해야겠다.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지만, 유독 내 마음을 끌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수연 스님에 대한 것이었다. 수연 스님은 법정 스님을 포함하여 다른 이들에게 행동으로 봉사하신 분인 것 같았다. 법정 스님이 편찮으실 때 수연 스님은 산에서 몇 시간을 걸어가 공양을 하고, 비로소 약국에서 약을 가져온 이야기를 보았을 땐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버스에서의 일은 법정스님의 마음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도 흔들어 놓고 말았다.
“버스 안에서였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주머니 칼을 꺼내더니 창틀에서 빠지려는 나사못 두 개를 죄어 놓았다. 무심히 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감동했다. 그는 이렇듯 사소한 일로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에게는 내 것이네 남의 것이네 하는 분별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도 자기 소유가 아니다. 그는 실로 이 세상의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 법정스님 ‘무소유’에서
그분의 짙은 향기가 나에게 배었던 것인지, 이 책을 읽은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나는 일상에서 그를 떠올린다. 그리고 오늘 갔던 헬스장에서 기구들이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보고 또 수연스님을 떠올렸다. 나는 기구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근력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허리는 아끼고 아껴 써야 하는 부위인데,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허리를 굽혀 바닥의 기구를 주울 필요가 없도록 했다. 깔끔한 바닥을 보아 즐거운 기분을 느끼며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덤이었다. 마치 내 것이라 생각하며 가지런히 정리하는 건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나는 오늘 헬스장의 주인이었다.
무소유를 읽고 감정에 초연해졌다던지, 투자마인드를 배웠다던지 하는 건 비약일 순 있겠지만, 내 마음의 온도가 올라가고 지금의 내 상황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