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인가..
한국에서 살아도 외국에서 살아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뭐 먹지?
함께 숙소 생활을 하는 동료들과도 브런치를 만들어 먹고 생각한다. 저녁은 뭐 먹지?
그리고 다음 질문을 한다. 한국에서 우리 엄마는 삼시 세끼 다른 반찬에 국에 일하면서 이걸 다 어떻게 생각해 냈지? 대단하다.!
아무튼, 해외살이 10년이 훌쩍 넘었다. 시켜 먹는 것보다는 내가 해 먹는 것이 속이 편할 때가 많다. (이건 엄마가 계모임 마치고 집에 와서 속이 더부룩할 때 하는 소리였는데.. 내가 지금 하고 있다니) 비행기에서 먹는 기내식보다는 내가 간단하게 챙겨간 음식이 더 좋을 때가 많다. 도시락 싸서 가면 동료들이 엄청 부지런한 사람으로 본다.. 그렇지.. 부지런하지 근데 매일 그렇지 않다는 것도 함정이긴 해.
최근에 막바지로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새집 살림살이 선물해 주는데 재미가 생겼다. 그릇을 구경을 가고 선물을 하면서 내 것도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드릉드릉 시동을 걸던 플레이팅 본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세끼 안 먹으면 죽을 것 같던 그런 시절도 지났고, 하루에 한 두 끼만 잘 챙겨 먹어도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바뀐 지 오래다. 이왕 먹는 거 좋은 거 몸에 넣어주자는, 이왕 먹는 거 나한테 차려주는 밥상도 예쁘게 차리자!
그 이유는 바로 내 직업 때문이겠지.
이건 지난번에 비즈니스 클래스 타고 한국 가는 길에 치즈 플레이트를 먹는 사진이다. 우리 회사는 서비스에 진심이다. 밥 먹을 때 일정 시간 이상의 구간이면 예쁜 랜턴도 켜주고 플레이팅 가이드에 따라서 손님 밥상을 아주 예쁘게 차려준다. 애피타이저는 보통 플레이팅이 다 되어서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메인 코스 디저트는 플레이팅 가이드를 따라서 음식을 담아낸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올해의 비행 모먼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F1 formula edition menu카드와 디저트가 실렸을 때였다. 내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현재 포지션도 F1이고, Formula 1도 F1이고 겸사겸사 라임도 좋고 공통점이 생긴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플레이팅도 멋들어지게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가져다주면 사진 찍고 영상을 찍느라 플레이팅이 늦게 돌아온다. 괜스레 기분도 좋아진다.
요즘은 무광 그릇이 예뻐 보여서 두 어개 사놓고 메뉴를 바꿔가면서 부지런히 차려먹는 중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한 번 담아볼까 하다가도, 플랫 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공용 공간에서 영상을 찍는 게 조금은 조심스럽다. 말은 이렇게 해 놓고 묵 쑤는 거 이것저것 찍어 놓은 것은 있지만 한 편의 영상으로는 언제 탄생이 될런지.. 글을 쓰는 일도 영상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올리시는 분들의 꾸준함은 본받고 싶다. 조금 더 부지런해져 보자 나 자신!
한동안 케일에 꽂혔었다. 올리브유에 볶아서 숨을 좀 죽이고, 그러면 생으로 먹을 때 보다 부담이 없어서 좋다. 여기에 아보카도 오일, 화이트 비니거 뿌려서 페퍼론치노 뿌려먹으면 진짜 맛있다. 여기에 파마산 치즈까지 얹으면 샐러드도 근사해 보이는 마법이 완성된다. 너무 맛있어서 한동안 빠져있을 때에는 건물 사는 동생들한테도 케일 손질하고 파마산 치즈까지 나눠줬다. 맛있는 건 나눠 먹으면 더 맛있거든요. 같이 먹으면 더 더 맛있고.
플레이팅을 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직업병도 있지만, 오해를 약간 풀어주기 위함도 있다. 타지에서 사는 딸이 늘 걱정이 되는 엄마는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끼니는 거르지 말라고 대화의 마지막을 맺으신다. 진짜 잘 차려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찍어서 보내드린다. 이 정도면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을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더불어 이 사진을 보는 우리 행님은 자기도 나와 함께 살면 이런 밥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네가 차려주는 것에 비하면 내가 차리는 밥상이 적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를 위한 밥상은 내가 최선을 다해서 차려줄게.
예쁘게 플레이팅을 함으로써 순기능이 여러 가지가 있네. 일단은 내가 나를 잘 챙겨준다는 기분 좋음 첫 번째,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무마시킬 수 있는 소화기 같은 역할, 그리고 앞으로 나와의 미래를 그리는 사람에게 심어주는 청사진까지.
먹고사는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고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뭐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