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다고 여러 번 신호를 보냈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눕혀서 쉬게 한다.’
고 하셨다. 그게 딱 내 상황에 떨어지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구두 신고 촐랑거리고 다니면서 삐걱거리는 신호를 많이 줬는데 그걸 몰랐으니 발목이 나에게 강제로 쉼표를 준 것이다. 그 덕분에 가족들과의 시간,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 거리가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편지를 보내며 나만의 방식으로 이제껏 함께 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표현을 하고 왔다.
@해지는 시간의 구포대교
출국 전 마지막 약속을 뒤로한 채 경전철을 타고 김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잔잔한 낙동강 위로 지는 해가 아름다웠다. 겨울인데 이렇게 따뜻하면 어떡하냐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찹찹한 겨울 공기, 퇴근길의 시작을 알리는 교통량의 증가, 그 모든 걱정을 하찮게 만들어주는 경전철 속의 따뜻한 공기. 괜히 마음이 센치해졌다.
아직도 아침저녁으로는 풀리지 않은 발목이 걸음걸이를 무겁게 만들지만, 이 정도 회복된 게 어디냐 싶어서 출국을 결정했다. 당장 비행을 할 수 있을 컨디션은 아니겠지만,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근무가 있다면 하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며 중간중간 글 쓰고, 책 보고, 공부하고, 운동하는 일상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그 무엇보다 이제는 누워서 쉬기가 몸이 근질근질거리고, 온전한 나만의 공간에서의 시간이 그리웠다. 해야 할 일이 한국에 있을 때 보다 훨씬 많지만, 다시 돌아가서는 내 힘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해 낼 수 있는 일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출국장에서
삶을 살아가는 속도가 있다면? 카타르에서 내 삶의 속도는 늘어진 테이프 같은 속도인 것 같다. 내 일, 또 다른 삶이 있는 이곳은 느슨한 느낌이 든다.
카타르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별 생각이 없다. 한국에 와서 만나야 할 사람들, 먹고 싶은 음식들, 해야 할 일의 생각들이 설렘의 무대 위에서 번갈아가면서 춤을 추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으면 짧은 일정에도 해 낼 수 있는 일들이 많을 만큼 예약시스템은 잘 되어 있고, 신속정확하게 일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지난번 방문과는 다르게 바뀐 여러 트렌드들, 촌사람이 대도시에서 두 눈이 휘둥그레한 느낌을 2024년에도 나는 여전히 느끼고 있다. 병가로 와서 예전만큼 바쁘게는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발목에 힘이 생기고 기동력이 붙은 순간부터 나는 또 부지런히 움직이는 길동이처럼 여기저기 다니고 있었다.
나의 공백은 먼지가 말해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신나서 쟁여온 김장김치를 냉장고에 넣으며 부지런을 떨었을 거다. 이번엔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 밀양 얼음골 사과 두 개, 마른 김, 커피 믹스 몇 개가 전부다. 짐 가방을 펼쳐놓고 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비행 내내 부어버린 발에 움직임은 불편했고, 펼쳐 둔 짐가방에 든 물건은 적은데 왜 이렇게 많아 보이는지. 구척장신 친구에게 내가 도하에 돌아왔음을, 천천히 이곳저곳을 정리하리란 것을 알렸다. 구척장신 친구 왈
“반려 먼지는 안돼 친구야”
아무리 몸이 움직이기 힘들더라도 그래, 반려 먼지는 안돼! 내. 방 - 주방 - 욕실 - 거실의 순서로 하나씩 정리를 해 나가야지.
@가장 먼저 눈뜨면 보이는 장소
@멈춰버린 나의 달력
돌아와 보니 나의 달력은 여전히 지난해 11월을 가리키고 있다. 병원 약속과 회사에 연락해야 하는 날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타지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내 몸을 돌보려는 노력이 담겨있는 것 같다. 수고했다. 2024년의 달력도 개시해야지. 이건 오늘 꼭 해야 할 일이다.
@주방정리 완료
내 방짝도 긴 휴가를 다녀왔단다. 우리 둘 부재의 흔적이 먼지로 보였다. 인덕션 위에 쌓인 먼지를 걷어내고, 밥 담는 용기도 새로 씻어서 건조시켜 두었다. 나름 내가 떠나기 전에 정리해 두었다고 생각했지만, 남아있던 그릇 친구들도 같이 세척해 두었다. 오후의 햇살이 잘 드는 내 숙소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순간은 오후의 설거지, 거실에서 보내는 독서 시간이다. 나의 몸을 볶아치지 않고, 방문의 빈도가 높은 장소부터 하나씩 청소해 나가는 쾌감이 좋다.
다시 매 끼니 무엇을 해 먹을지 레시피 페이지를 뒤적이고 있으니 내가 다시 카타르로 온 것이 실감이 난다.
한 달 정도는 지상엣 있을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에서의 경험, 정리하고 싶었던 나의 생각들을 하나씩 풀어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을 예정이다.
내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있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고, 이런 공간을 한국에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분리된 공간이서 다른 속도로 세상 돌아가는 템포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지금 해외에 사는 동안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서의 시간이 부족하다 생각하기보다, 그곳에서의 추억을 힘 삼아 타지의 삶도 잘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