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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Apr 19. 2022

두 여성이 고통을 말하고, 기록하며, 버티는 법

책 <박순애, 기록, 집>

김혜미의 <박순애, 기록, 집>(1월 출간)은 나와 타인을 잇는 '대담한', 동시에 '압도적인' 글쓰기다. 타인을 경유해서 내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서도 타인을 대상화시키지 않는 작업은 쉽지 않다. 특히나 그게 '인터뷰집'이나 '기록집'의 형식이라면 나를 드러내는 건 더더욱 어렵다.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종종 내가 개입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나의 생각이나 경험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해줄 수 있도록 '기능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을 뿐이다 . 그게 인터뷰어에 대한 예의이자, 그가 한 말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조작 간첩 박순애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이야기한 이야기, 이게 가능할까?'라는 부제를 보고 호기심과 동시에 미심쩍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도 이야기한'이라는 부분이, 어쩌면 '먼 과거'의 아픔으로 넘길 수도 있었던, 유신정권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인 박순애씨의 삶을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동시에 저자는 우리가 그의 삶을 멀찍이서 응시하는 게 아니라, 마주 보는 법을 알려준다. 자신이 박순애의 삶에 개입하고, 연결의 매듭을 하나하나 단단히 묶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래서 내게 이 책은 김혜미와 박순애가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형상으로 그려진다.


1940년대에 법대를 다니던,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게 대학을 다닌 엘리트 여성이었던 박순애씨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전쟁을 겪은 이후에 마주한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국 '살아남기 위해' 재일교포와의 결혼을 선택한 그는, 결국 일본에서 일하다가 조총련 회원 집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서 15년 형을 받는다. 그리고 출감을 해서도 10년 동안은 보호감찰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45년을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버티다가 2015년에야 무죄를 선고받았다. '기구했다'라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가족 안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내몰렸고, 국가는 그를 철저하게 버렸다. 그의 삶은 기록하기조차 벅찬 일이다. 그런데 김혜미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박순애의 삶 자체보다는 고통 속에서 살아오며 버텨낸 그 힘이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울면서도 살아갈 수 있을까 알고 싶었다"(72p)라고 말하며, 그 지점에 천착한다. 기록자로서 '들어야 하는' 윤리와, 질문하고 동시에 내 말을 하고 싶은 '욕망'이 부딪혔다. 그래서 김혜미는 중간에 포기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한 '충돌'을 감수하고 쓴다.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서 더 선명하고, 더 편한 길은 분명 따로 있다. 하지만 김혜미는 자신의 감정과 이야기를 꼼꼼하게 박순애의 이야기와 병치시킨다. 너무나도 '거대한 사건'을 겪은, 아흔이 넘은 박순애를 이해함과 동시에 자신과 연결시키려는 시도에 경외감마저 느꼈다. 


김혜미는 엄마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와서 이 책을 썼다. 그는 자신의 고통과 다양한 감정을 설명할 말이 없어서 좌절했다. 고통을 해결할 길은 없었다. 다만 고통을 이고 지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집중한다. 장애·소수자 언론에서 일하던 그는 형제복지원 사건과 선감학원 사건의 피해생존자, 장애인, 빈민, 해고 노동자를 만났다. 일을 그만둔 뒤에는 박순애를 만났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거쳐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고, 고통에 무너질 것 같은 인간의 취약성이 동시에 인간을 연결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연결된 취약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스스로 강해지거나 극복할 때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한테 의존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취약은 해결된다. 그 순간 고통은 의미를 찾고, 고통이 주는 지독한 외로움은 옅어진다. 인간은 같이 살 수밖에 없다. 기억은 사람을 같이 살게 만든다."(230p)


김혜미는 박순애와 인터뷰하면서 계속 엄마를 생각했다. 자신과 엄마와의 기억을 통해 박순애를 바라봤다. 이것은 글쓴이로서는 굉장히 위험하고 무모한 시도이기도 한데, 김혜미에게는 그런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이 있었다. 그 절박함이 한 사람의 세계를 다른 한 사람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 책의 단단한 밀도와 독특한 시선을 만들어냈다. 


박순애씨가 "교도소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가 다시 "안 가는 게 낫겠다"라고 고개를 저었을 때, 김혜미는 자신의 인터뷰한 선감학원 피해생존자의 '나중에 선감도에 집을 짓고 싶다'는 말을 떠올렸다.  나아가 자신이 '집'이라는 고통스러운 공간에 갖고 있는, '돌아가기 싫으면서 또 돌아가고 싶은' 감정과도 연결시켰다. 숱한 연결의 지점을 차곡차곡 만들어나가던 김혜미는, 박순애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넘어서서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대화'는 시작되었고, 김혜미는 고통스러운 운명에 맞서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 박순애로부터 발견한다. 박순애는 김혜미에게 "버텨, 버텨야 해"라고 말했다. 그것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가장 혹독한 시절을 거친 몸이 가진 힘이었다. 그와중에 김혜미와 엄마의 대화도 시작됐다. 여기서의 대화는 온전한 화해라고 보긴 어렵다. 다만 버티기 위해서, 고통에 대한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박순애, 기록, 집>은 현재 '발달 장애인' 관련 운동을 하는 김혜미가 탈시설 장애인과 나눴던 '집'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장애인 거주 시설을 전전했던 그는 '외로웠다'라고 말했다. 죽을 생각을 했다. 하지만 버티면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설을 나왔지만 도움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맨몸'으로 던져졌다. 자주 아파 병원을 오갔고, 집을 구하기도 어려워서 김혜미가 백방으로 살 집을 구하러 다니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또 버텼고, 김혜미에게 "왜 사는지 모르겠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라고 말했다. 


이 책이 '인간은 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살아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김혜미가 '우리의 고통이 어떻게 이어지고, 마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좌절하면서도, 계속 시도를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이 책에 드러난다. 그 과정 속에서 결국 김혜미는 '고통을 버텨내는 삶'에 대한 작은 단서를 이렇게 만들어냈다.   


장애인들의 요구가 얼마나 과도하고 부당한지 따져보자고 외치는 한 정치인을 보면서, 그가 대의하고자 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매끈하고 활력 있는, 언어화되고 숨지 않아도 되는 삶. 타인의 고통에는 합리적인 해결책이 있으며, 자신의 고통도 '이겨내면 된다'고 믿는 삶. 그는 그래서 수없이 두려움과 좌절을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살아아겠다며 자신의 고통에, 나아가 고통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할 생각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울퉁불퉁한 삶을 산다.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말로 설명하지조차 못하는 이런저런 고통을 마주한다. 다행히 그것은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고통'을 매개로 타인의 세계와 부딪혀보고, 그 안에서 이해와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이다. <박순애, 기록, 집>이 내밀한 절망과 우울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나'에서 시작해 '너'와 '우리'에 다다르면서 어떤 힘을 느꼈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함께 맞잡은 마음을 갈라놓으려는 시도들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은, 김혜미가 박순애에게 다가가듯 타인을 향해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용기를 내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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