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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May 07. 2022

'에스파' 성희롱 피해 사건, 치기 어린 장난 아닙니다

성적 대상화 통해 '남성성 과시', 이대로 내버려둘 겁니까

*지난 3일에 쓴 기사입니다(편집 과정에서 빠진 부분 포함).


걸그룹 '에스파'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경복고등학교 101주년 기념식에 축하 공연을 하기 위해 참석했다가 봉변을 당해야 했다.


이날 현장을 찍은 영상을 확인해 보면 에스파가 이동을 위해 움직일 때 주변에 남자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서 통행이 어려울 정도였고, 심지어 동의 없이 멤버들 가까이에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손을 잡으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공연 중에 학생들이 무단으로 무대에 난입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학생들이 에스파 멤버들을 찍은 사진을 올리며 "만지는 것 빼고는 다했다", "섹스!!!" 등의 말을 SNS에 내뱉은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성희롱'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언뜻 보면 '무질서한 상황'에서 일어난 해프닝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학생들의 무례한 행동과 그릇된 성적 표현, 학교 측의 방관과 무책임, 소속사의 보호 미흡이 만들어낸 '대형 사고'에 가깝다.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사진을 찍거나 접촉을 시도했던 것은, 에스파로서는 신변의 위협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학교는 '책임회피' 하기도


경복고 공연은 소위 '팬덤'이 참석해서 응원하는 공연은 아니었다. 팬들이 많이 찾은 공연이었다면 무례한 행동들은 어느 정도 통제가 됐을 것이다. 돌출 행동을 제지하는 팬들이 있기도 할뿐더러, 적어도 자신이 사랑하는 '아티스트'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공감대가 그들 사이에서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복고 공연은 일반 고등학생들이 관람했고, 팬덤에서의 '룰'이 적용될 리 만무했다. 그저 유명한 연예인이니 가까이 가고 싶고, 사진을 찍어서 주위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성 아이돌에 대한 온라인 상의 '성적 대상화' 역시 통제되지 않았으니 문제가 '성희롱'으로 치닫게 됐다.


문제는 에스파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 경복고는 과연 이 사태에서 어떤 대응을 했냐는 점이다. SNS에 올라온 이날 영상을 보면, 학생이 몰려드는 가운데, 여자 관계자 한 명이 네 명의 멤버를 감싸고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누리꾼들은 SM 측이 제대로 경호를 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아 비판하고 있다.


경복고는 SM엔터테인먼트 창립자이자 총괄프로듀서인 이수만씨의 모교다. 때문에 경복고 축제는 SM 소속 아이돌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공연을 해왔다. 2015년에는 걸그룹 '레드벨벳'이 축제의 '협찬 품목'으로 적혀 있는 이미지가 퍼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회사 창립자의 모교라는 이유로 연례행사처럼 소속 아이돌이 공연을 가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오면서 SM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경복고도 무질서한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경복고는 이번 논란이 터지자마자 학교의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첫 사과문에서 에스파와 SM에 사과한다면서도, "경복 학생이 아닌 외부 인사 몇 명이 행사장을 찾아왔으나 안전 관계상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던 사실이 있었으며, 그 일로 인하여 일부 SNS에 결코 사실이 아닌 악의적인 글이 게재되지 않았나 유추할수 있다"라며 마치 외부에서 허위사실을 퍼트려서 논란이 빚어졌다는 식으로 쓴 것이다.


하지만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경복고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제야 경복고는 두 번째 사과문을 내놓는다. 이번에는 "공연 질서유지에 노력하였으나 일부 학생들이 공연 관람에 성숙하지 못했고, 행사가 끝난 후 SNS에 공연 사진과 글을 올려 물의를 일으켰다"라며 "학교에서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시행하여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밝혔으나, 사과의 의미는 퇴색된 뒤였다.


'성적 대상화'의 문제... 체계적인 교육 필요해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가 10대 남성들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성적 대상화'나 '폭력적 문화'를 되돌아보는 한편, 학교가 나서서 '성평등', '디지털 성폭력'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성 성평등 교육활동가인 이한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또래 집단에서 '남성성 과시'의 일환으로 벌어지는 '성적 대상화'의 문제"라며 "젊은 남성들의 성적인 욕망의 표현이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또래에서 권장되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러운 욕망 역시 표현하거나 누군가에게 가닿을 때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인식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씨는 SNS 상의 성희롱에 대해서는 "성인지감수성, 성평등 교육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교육도 병행되어야 한다"라며 "온라인 공간에 올린 글·사진·영상 등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한 번 퍼져 나가면 걷잡을 수 없다는 걸 학생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폭력적인 발언을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결코 이번 일은 '치기 어린 장난'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남성들의 폭력적 문화의 단면이 드러난 부분이며,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학교에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 한 시간 교육해서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연예인 인권' 문제를 가시화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소셜미디어 사용으로 인해 연예인과 관객들의 거리감이 줄어들고 사적인 정보도 많이 알 수 있게 되었다"라며 "그런 미디어 친밀성이 실질적인 친밀성으로 생각하는 상황이 나타나면서 '연예인 인권'의 문제도 더 심각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에스파 멤버들이 받았을 충격과 이에 따른 사후 관리가 이번 사건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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