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이 말하고자 한 것
<헤어질 결심>을 두 번 봤다. 고전적인 로맨스 서사의 힘은 미장센과 인물들을 둘러싼 다양한 디테일을 통해 극대화된다.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톱니바퀴가 맞아 들어갈 때 (첫 관람에서는 잘 안 보였다)의 쾌감, 특유의 연출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영화지만, 무엇보다 나는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의 사랑이 흥미로웠다.
먼저 둘은 '동류'의 인간이다. 둘은 사건을 '말'이 아닌, '사진'으로 보고 파악하는 것을 선호한다.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한다. 깜빡이를 정확하게 켠다. 꼿꼿하다. 자긍심이 넘친다. 그 동류의 인간들끼리는 알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정확한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서래는 자신의 '조상'에서부터 비롯된 자긍심과 존엄이 있다. 어떻게든 그걸 지켜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해준은 강박인지 직업윤리인지 모르지만 품위를 갖추고 '똑바로 보는 일'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 모든 가면을, 혹은 오랜 시간 가꿔온 개인의 성질마저도 배반하는 측면이 있고, 거기에서 사랑이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애틋한 이 로맨스가 마음에 든다.
사랑은 나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나를 망가트리는 일에 가깝다. 즐겁고, 기꺼운 자기파괴다. 흐물흐물하게 나를 형해화시켜서, 오로지 사랑하는 이의 의지로만 나를 주워담을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일, 또는 그런 일의 반복. '나'는 분명히 '나'이기 때문에 고유의 성질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어딘가 자꾸 빠지고, 구멍이 뚫리고, 내어주는 일이 발생한다. 때문에 단단한 이들일수록 사랑을 숨길 수 없고 그 파장은 더 크게 나타난다.
속된 일상의 영역으로 사랑이 들어오면, 그것은 우정에 좀 더 가까워지는 측면이 있다. 서로 보완하고 보조하고 품을 내어주는 일. 그러나 사랑의 본모습은 훨씬 더 역동적이다. 영화에서는 서래가 공자의 '지자요수 인자요산'이라는 말을 인용해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는데, 나는 인자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인자한 사람은 무겁고, 고요하며, 한 자리를 지키는 산 같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유동적이며,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물 같다는 것이다. 서래에게도 분명 산(호미산)은 자신을 이루는 하나의 '토대'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암시하는 바가 크다. 산은 꼭대기가 훤히 보이지만, 물은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다. 그게 사람의 마음에 좀 더 가깝다.
살아가면서 자주 잊기도 하지만, 사랑은 아무래도 고약하다. 뒤흔들고 불안하게 요동치지만, 인생을 걸어보게 만든다. 무얼 믿고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 사랑에 빠진 자신의 마음을 믿고서. 극중 살인 용의자인 홍산오(박정민)가 사랑한 사람에게 남기는 대사인, "너 없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는 조금 유치한 말이지만, 사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마음의 전부이기도 하다. 그런 감정은 '미추'나 '선악'을 판단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저 지금의 사랑에는 인생의 진실이,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 것일 뿐이다.
용기있고, 강인하고, 비타협적일수록 그 사랑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어떤 이는 수없이 무너지고 깨어지다가 결국엔 길을 찾지 못해 침잠하고 만다. 사라질지언정, 지워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영원할 수 없다면, 그의 몸에 작은 점 하나라도 남겨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