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조 이후에는 바닷물이 밀물로 바뀌는데, 물속에서 정신을 잃고 나서 힘이 빠지자 몸이 떠올랐고, 바닷물의 흐름이 바뀜에 따라 해변 쪽으로 떠밀려 갔나 보다. 같이 간 일행은 내가 배영을 하는 듯 보였다고 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눈을 감고 있길래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했다고 한다. 곧 수상구조대가 왔고, 나는 의식이 깨어있는 채로 구조 보트에 누워 모래사장으로 돌아왔다.
물에 빠진 채로 의식을 잃어갈 때도 만큼, 멀쩡하게 해변가의 벤치에 앉아 있는 상황도 꿈같았다. 몸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지만 수상구조대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한 사람씩 더 늘어나며 물에 빠졌을 때 무슨 상황이었냐, 어느 나라에서 왔냐 등등 - 같은 질문을 돌아가며 했다. 피로감이 몰려왔고 그저 해변가에 누워 낮잠을 자고 싶다는 욕구만 일었다. 구조사는 내게 호흡기를 씌우기도 했는데, 바닷물을 먹었다고 말했으니 내게 산소를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지금 내 얼굴이 창백하다며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호흡기를 쓰자 코에서 짠물이 흘러나왔다.
그런 내 옆에서 구조사들은 하와이 로컬다운 여유를 보여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 하와이까지 와서 '하필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싶지? 근데 너, 나중에 아주 유쾌하게 말하게 될걸. 하와이에서 그런 일도 경험해 봤다고 말이지."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여유가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억지로 허허-하고 웃었다.
Sam, 니 말이 정말이네. 여기서 이렇게 타자기를 두들기며 썰을 풀고 있구나.
어느덧 산소호흡기의 산소가 모두 소진되었다. 호흡기를 떼었다.
이제 수상구조대들이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그중 Boss로 보이는 구조사가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병원이라니. 내가 이렇게 멀쩡한데.
감기에 걸렸을 때 절-대 병원 안(못) 간다는 미국에서 병원을 가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나는 몇 차례나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옆에 있던 내 일행 또한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마른 익사 (Dry drowning)'라는 걸 처음 들어봤다. 물이 폐 속으로 들어가 서서히 호흡곤란이 오는 증세를 말하는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거라나.
아, 그럼 가야죠 (...)
구급차가 오자 나는 앰뷸런스 쪽으로 가려했다. 그러자 침대에 누우라고 한다.
속으로는 '몇 걸음 되지도 않는데. 진짜 오바아닌가' 싶었지만 나는 의료인이 아니니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
앰뷸런스에 누워있는데 곧 간호사(?)분이 주삿바늘을 가져와서는 오른팔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유명 코미디언이 링거 맞다가 사망했다고 그랬는데... 그래도 미국은 의료 수준이 낮은 편은 아니니까...'
속으로 북 치고 장구치고 다했다.
"저기, 나 한국에 있을 때 간호사 분들이 내 오른팔 혈관을 찾기 어려워했거든. 왼쪽에서 찾는 게 더 수월할 거야."
"괜찮아. 어렵지 않아."
간호사는 싱긋 웃었다.그렇게 쿨한 반응이던 그녀가 만약 혈관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면 분명 더 불안했을 것이다. 다행히 주삿바늘을 뺐다 넣었다 하는 일은 없었고, 이렇게 그녀를 포함한 미국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했다.
구급차에서 보니 더 반가웠던 카이커피
그런데, 병원에는 대체 언제 도착하는 것인가.
하와이도 큰 섬인데, 심지어 메인섬인 오아후에 있었는데, 병원이 이렇게 없는 건가 싶었다.
구급차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내가 커피니 도넛이니 이것저것 사 먹으러 굳이 구태여 찾었던 곳이라 시계를 보지 않아도 상당 멀리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한참을 갔는데도 병원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