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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록 Jan 29. 2023

해고할 땐 언제고, 이혼 소송의 증인이 되라고요?

번역행정사 김서록 흑역사 - 외국계 중소기업 A사 재직 에피소드


두 사람이 만났다. 

둘은 초면이라 외적 조건 정도만 알고 있는 사이다. 

상대방이 갑자기 "저 어떤 것 같아요?"하고 묻는다. 

딱히 할 말이 없다. 여기서 뭐라고 답해야 할까.  


채용시즌에 자기소개서때마다 이런 장면이 연상되곤 했다. 정확하게는 '지원 사유를 쓰시오'라는 문장을 볼 때마다. 이런 질문은 주로 지원자가 몰리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급에서 내놓는데, 회사규모가 작을수록 보기 힘들긴 하지만, 볼 때마다, 그리고 쓸 때마다 항상 고역이었다. 

솔직히 회사 일이야 고만고만할 테고 돈을 좀 더 얹어주는 회사 찾는 게 국룰 아닌가그러나 어쩌겠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어찌어찌 '자소설'을 완성하여 제출 버튼을 눌렀다. 

내 소설이 별로였을까? ‘귀하를 모시지 못하게 되어’로 시작하는 메일이 자꾸만 쌓여갔다. 


이어지는 불합격 소식에 자신만만했던 기색이 옅어지고 점점 의기소침해지던 차였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02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하늘은 어둑어둑했고 지방민인 내게 여론조사나 광고전화가 아니면 02로 전화 올 일이 없었다. 통화 거절 버튼을 누르려다가, 혹시 몰라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A사입니다. 최종 합격하셔서 전화드려요. 입사를 원하시면 오늘 내로 증빙서류를 보내주세요. 필요 서류 정리해서 메일 보내놓겠습니다.”


시계는 오후 6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 내로' 서류를 보내라는 말에 부랴부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요청받은 서류를 정리하여 이메일 발송 버튼을 누르니 때는 11월 말, 금요일 오후 8시 37분이었다.



한번 내려놓으면, 더 많이 내려놓게 될 수 있다 

서울에 연고 하나 없는 지방 출신자가 상경하기 위해 처리해야 할 문제가 꽤 많았다. 첫 회사의 합격 통지를 받은 당시가 마지막 학년의 기말고사를 치르기 전 시점이었는데, 중소기업 대부분은 합격통지일부터 출근예정일까지의 기간이 넉넉하지 않다.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회사도 있다) 결국, 대학 마지막 학기의 성적을 제물로 삼았다. 학생의 상황을 배려해 주려는 교수님 덕택에 이메일로 시험을 본 과목도 있다만, 교수님께 고개를 못 들 정도로, 음, 폭망 했다. (이 글을 읽는 취준생이 있다면 기억해 주시라. 회사는 잠깐이지만 성적증명서는 영원하다) 


또, 거주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아직 월급 받기 전인데 서울 월세는 왜 이리 비싼지. 아무리 역 근처라지만 창문 하나 없고 한 명 들어가면 꽉 차는 고시원이었는데 가격이 비싸서 선뜻 계약하지 못할 정도였다. 출근 전부터 이미 밑지는 상황이랄까. 물론 당시에는 그런 생각 없이 그저 취업 사실이 기쁘기만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베팅한 사람은 쉽사리 초조해진다. 

이익보다 손실을 못 참는 인간 특성상, 베팅한 대상 (첫 일자리)을 어떻게든 사수하고자 했다. 이미 쓴 돈도 돈이지만 마지막 학기 성적 때문에 최종 평균이 확 낮아졌으니 다른 회사에 지원할 때 유리할 수 없었다. 첫 일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때 취준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이 일었다. 이런 감정은 결국 '그나마 남은 자원'까지 남에게 넘겨주거나 포기하게 만든다 


나는 회사가 근로계약서 작성을 미룰 때 이를 받아들였다. 회사는 입사 후 3개월은 수습기간이라며 수습기간 이후에 정확한 연봉을 책정하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겠다고 했다. 채용공고와는 다른 급여도 받아들였다. 채용공고에 대기업급의 연봉을 적어놓았길래 지원했었는데, 이 또한 못마땅해도 그러려니 했다. 수습기간에는 급여의 60%만 인정한다고 했고, 그렇게 산출한 금액에 갖다 붙일 수 있는 명목을 다 갖다 붙여서, 그 금액에는 점심 식사 비용까지 전부 포함됐다는 설명도 들었다. 이 정도면 채용공고는 과장 광고 아닌가 싶었다. 


옆 옆자리에 앉던 어떤 합격자는 그다음 날부터 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떠났어도 여전히 동기가 많았다. '다들 그러니까'하고 정신 승리했다. 



누울 자리보고 발을 뻗는다

사측의 요구는 점점 대담(?)해졌다. 기획이나 영업직에 지원했던 문과생 신입에게 '개발자'로 일하라고 했다. 까라면 까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니 문과생 신입들은 자바스크립트 지침서의 번역을 했다. 임원들이 야근을 강요하는 환경이라 직원 사이에 칼퇴 비법이 공유됐다. 평소에 가방을 안 들고 다니면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퇴근할 수 있다나. 그나마 영업직으로 발령받은 몇 명은 은근히 룸살롱영업을 강요받았다. 지금 시대에, 정말 룸살롱까지 따라가야 하나?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할 지경이었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있을까. 꾸역꾸역 일하다 보니 3개월은 지나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반면, 사수는 드디어 연봉이 확정되겠다며, 자기 덕 잊으면 안 된다고, 한 턱 쏘는 거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인사팀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귀하를 정규직으로 모시지 못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오늘 오후까지 사직서를 작성하고 사원증을 포함한 비품을 반납한 뒤 퇴사하시면 됩니다.’


Wow! 

차였다! 헤어지자고 할까 말까 고민하던 와중에! 

그나저나- 자기가 먼저 헤어지자고 해놓고, 이별 통보 편지를 써서 자기한테 보내달라고? 이건 또 뭐람? 

신박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퇴사를 하면 하늘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마음 한편으론 후련했다. 처음에 회사가 나를 선택했을지라도 끝까지 책임지는 건 다른 얘기라는 걸 확실히 배웠다. 연인이나 친구 같은 인간관계만 살펴봐도 알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너무나 어렵게 말이다.  


상황이 어쨌든 첫 회사에 다니고자 이런저런 선택을 한 주체는 나였다. 퇴사한 동기들과 맥주 한 잔을 하며 회사욕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계속 삶을 살아가야 했고, 성인이라면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그 결과가 나쁘말이다. 


인연을 맺을 때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 왜 나온 건지도 이해했다. 몇 개월이 지나고 회사에서 다시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회사에 남은 동기의 연락이었는데, 그녀는 가벼운 안부를 물은 뒤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진술서 써줄 수 있어요? 사장님 때문에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내용으로요.”


의아했다. 동기는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만약 나의 퇴사 관련하여 어떤 자료가 필요하다면 분명 회사에 유리한 자료를 구해야 하는 게 맞았다


“갑자기요?”

“소송에서 증거 자료로 쓴대요.”


도대체 뭐가 뭔지 가늠이 안되어 계속 질문을 던졌다. 


“소송이요? 누가 누굴 소송하는데요?”


그녀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 이내 고백하듯 말했다. 


“사실…… 회장님과 사장님이 이혼 소송을 하거든요.”


웃음이 나왔다. 우리 둘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잠시 생각했다. 나 자신이 그 부탁을 거절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동기의 부탁이라는 탈을 쓴 회사의 요구를. 


이에 대한 답변을 함으로써 '최종_최최종_진짜최종'적으로 A사와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어떤 말로 거절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회사에서 연락을 받은 그날, 근처에 살던 동기를 불러내어 맥주를 마셨다. 한 동기는 진술서 수집을 담당하는 옛 동기가 짠해서 거절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덤덤한 척, 그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Note

많진 않지만 저를 구독해 주시고 제 글을 좋아해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글의 순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중소기업 에피소드와 그때 배웠던 점을 먼저 업로드했습니다. 

혹여, 외국어번역행정사 관련 에피소드를 먼저 듣고 싶다는 의견이 있으면 말씀 주세요. 

각자의 소중한 시간에 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3.1.29.

김서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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