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01의 기억.
4월 1일. 수요일. 만우절 아침이 밝았다.
아일랜드에서는 매달 첫 번째 수요일이 ‘문화의 날’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관리하는 몇몇 유료 문화관광지에 입장료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더블린에서 대표적으로 무료 입장 가능한 곳은 더블린 성, 그리고 영국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했던 ‘정치범’들과 일반 범죄자들이 가던 감옥인 킬만햄 감옥 등이 있다.
구글링을 하다가 어떻게 그 좋은 정보를 알게 되어, 아침부터 일어나 그저 공짜라면 좋아서. 시티센터로 무작정 버스를 타고 나갔다. 버스를 갈아탈까 하다가, 구글맵을 보니 걸어서 40분 거리이기에, 걸어가기로 결심하고 핸드폰을 두 손으로 꼭 쥐고 킬만햄 감옥으로 먼저 향했다.
관광지 중 하나라 그런 건지, 아니면 공짜라서 그런 건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직원이 나와 소리쳤다. [다음 투어는 1시 40분이에요!] 지금 11시 20분인데. 그래도 구글맵에서 40분이라는 거리를 1시간 동안 덜덜떨며 걸어온 게 너무 아까워 차마 돌아설 수가 없었다. 내 차례가 돌아왔고, 직원이 물었다. [1시 40분 투어 예약할거야?] [응.] [옆은, 친구들? 총 세 명?] 내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독일인 여자 둘이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근데 어차피 세 자리밖에 안 남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안내데스크로 갔더니, 또다시 직원이 물었다. [마지막 1시 40분 게스트들이네. 세 명이야?] 서로를 쳐다보던 우리는 그냥 [아, 뭐 어때. 응. 세 명.] [오늘은 문화의 날이라서, 입장료 없어.] [응. 고마워.] [뭐라고? 공짜라고?] 이 독일 여인네들은 공짜란 걸 모르고 왔나 보다. 둘 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횡재했다는 표정으로 입이 아주 귀에 걸린다.
투어 시작 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우리는 점심도, 시간도 때울 겸 감옥 안 카페로 향했다.
아일랜드의 아픈 역사가 시린 감옥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기대 없이 시킨 지중해식 키쉬는, 내 인생 최고의 키쉬였고, 샐러드도 싱싱했다.
독일인이라 생각한 그녀들은 오스트리아에서 휴가를 온 바브라와 코넬리아였다.
비엔나에 대해 아는게 있냐며, 두 쌍의 키위쥬스같은 녹갈색의 눈동자들을 반짝거리며 물어보기에, 사실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 나는 이렇게 얼버무렸다.
[응, 한국에서는 그, 줄줄이 이어진 소시지보고 비엔나 소시지라고 불러. 독일은 맥주, 오스트리아는 소시지로 되게 유명해!] 스스로도 곧바로 튀어나온 그 멘트에 감탄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여인네들은 또다시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알아듣기 너무 힘든 아이리쉬 악센트에 대한 고충과, 더블린의 거리가 얼마나 더러운가, 더블린이 더러울까 파리가 더러울까. 한국의 나이 시스템은 어떤가. 나는 왜 여기 나이로 27살인데 내년에 서른살인가. 등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투어 시간이 다가왔다. 티켓을 들고 감옥 박물관으로 들어가는데, 가이드가 우리를 저지했다. [껌 씹으면 입장 못해. 미안.] 바브라는 껌을 씹으며 [이해가 안돼, 왜?]라고 물었고, 가이드는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래서 안 돼.] 아. 세상에. 시꺼멓게 껌이 덕지덕지 늘어붙은 바닥은 마치 잭슨 폴락 그림 같았다.
입이 댓발만큼 튀어나온 바브라는 새 껌인데 아깝다고 궁시렁대며 껌을 휴지에 싸 버렸고, 우리가 입장하자 마자, 투어가 시작되었다. 투어가이드인 시아라는 다행히 아이리쉬 악센트가 그렇게 강하지 않았고, 정말 진심을 담아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 그 설명을 방해하는, 바브라와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가족이 있었다. 4남매를 데려온 한 뚱뚱한 아이리쉬 아줌마였다. 투어를 하는데 가이드에게 다가가 소리를 지르고, 설명을 하는 중에 울고 떠드는 여자아이를 딱히 저지도 하지 않고, 그저 공짜라니 좋은지, 가이드 바로 옆에 붙어서는 모두의 투어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 심정은 이해가 갔다. 애들 데리고 나들이는 나왔고, 아일랜드의 아픈 역사가 담긴 의미 있는 곳이고, 거기다 공짜니 자식들에게 좀 더 일찍 자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싶겠지. 하지만 그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킬만햄 감옥에 어렸을 적 갔다는 걸 기억이나 할 지 모르겠다. 설사 기억한다고 해도, 자기 나라의 순국열사들이 옥살이를 한 장소에서, 웃고 떠들고 떼쓰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준 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다. 세상에 있는 나라 중에, 아픈 역사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으랴. 지나간 역사는, 지나간 실수는 어떻게든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잊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었고, 그로 인해 상처를 준 쪽이든, 상처받은 쪽이든. 다시 그 상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이 그 상처를 헛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투어가 끝나고, 시아라에게 정말 유익한 투어였다며 감사를 표한 뒤, 사형수들의 유품과 유언이 전시된 3층으로 올라가, 감옥에서 결혼 한 뒤 처형된 부부를 비롯해 인상 깊었던 몇 명의 유언을 둘러본 후, 오스트리아 여자애들에게 더블린 성도 공짜인데, 더블린 성으로 갈 거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공짜라면 가고 싶다고 광대뼈가 다시 한 번 하늘로 승천하더니, 갑자기 둘이서 지도를 펼치고 독일어로 대화를 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바브라의 이야기인 즉, 2일에 19유로짜리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버스 노선이 한 방향으로만 운행되기 때문에, 투어 구간의 중간인 킬만햄 감옥에서 투어 시작점 주변인 더블린 성으로 가려면 한 바퀴를 다시 돌아야 해서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는 것. 그래서 걸어가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코넬리아가 이해가 안 간다며 시무룩해졌다는 것이다.
표정이 굳은 코넬리아가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자리를 비우자마자, 바브라가 한숨을 푹 쉬며 나에게 말했다. [아, 진짜.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코니랑 여행하는 게 너무 피곤해. 기분 맞춰주는 것도 지쳤어.] [원래 사람은 결혼하거나 여행 같이 가기 전에는 모르는 거라잖아.] [사실 좀 무서워. 코니는 정말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는 뭘 먹고 싶냐, 뭘 하고 싶냐, 어디 가고 싶냐고 물어도 ‘니가 원하는 대로 해’ 라고 하거든. 그러다가는 또 한 순간 기분이 좋아져서는, 엄청 높은 목소리로 ‘밥시~~’라고 부르며 사소한 걸 보고 열광해. 정말 미칠 것 같아.] 마침 코넬리아가 돌아왔고, 코넬리아는 그냥 걸어서 더블린 성으로 가자고 말했다.
아. 잘못 걸린 것 같았다. 여자들 싸움에는 끼는 게 아니랬는데. 나는 공짜 밝히다가 절교 직전의 두 오스트리안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37분을 더 걸어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