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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10. 2021

죽은 사람이 새앨범을 냈다

그날의 러닝을 좌우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고된 노동을 하지 않은 하루, 달리면 바람이 느껴질 정도의 날씨, 땀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소재의 옷, 가벼운 러닝화.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음악이다.


러닝은 흰 티 같아서 어떤 음악과 함께 하는지에 따라 쉽게 물든다. 활기차고 힘차게 전진하는 러닝이 있는 반면, 하루 동안의 고민이 깊은 내면에서 씻어 내려지는 러닝도 있다. 내가 쓰는 음악 스트리밍 앱은 노래가 끝나면 들었던 음악과 비슷한 음악을 끊임없이 재생해준다. 처음 재생한 음악이 그날 러닝 전체를 지배한다. 선곡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마침 오늘은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팩의 새 노래가 나왔다. 데뷔한 지 상당히 된 가수들이어서인지 뒤를 이어 추천되는 건 추억의 노래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익숙한 반주가 흘러나왔다. 마이클 잭슨의 Love never felt so good이었다.


Love never felt so good 앨범 커버


이 노래는 2014년에 (나에게 있어서는) 불현듯 나왔다.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나고 5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생전에 녹음해둔 음악들로 만든 사후 앨범이었다.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의 기록을 마주할 때면 내용과는 상관없이 어딘가 뭉클해진다. 마침 이 노래의 멜로디는 뭉클함이 베이스에 있는 듯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다. 더구나 노래의 주인은 전 세계 사람이 다 아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사실 마이클 잭슨이 전성기이던 시절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었고, 그의 유명한 노래들은 따라 부를 순 있어도 숨은 명곡을 알 만큼 열렬한 팬은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어렸을 적 친구가 오랜만에 이름 모를 곳에서 편지를 보내온 느낌이 들었다.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묻고 여전히 자기 생각을 전했다.


사후 앨범은 죽음 이후라는 신비감만큼 여러 상상을 하게 한다. 마이클 잭슨이 이 음악을 어디까지 작업했을지 알 순 없지만 오랜 기간이 걸려 나온 걸 보면 마무리 짓고 떠난 노래는 아닌 것 같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 곡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무대의 사소한 디테일까지 잡아낼 만큼 깐깐했다. 그런 그가 이 노래를 끝까지 작업했다면 지금과는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잭슨이 춤추는 모습들을 콜라주 해서 만든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무엇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 음악을 들었을 때 지금과 같은 감정으로 들었을까.


Love never felt so good은 1983년에 마이클 잭슨이 폴 앵카와 함께 작업한 곡이라고 한다. 마이클 잭슨은 폴 앵카의 피아노에 맞춰 데모를 만들었지만 발매되지는 않았고 이후 조니 마티스가 곡을 받아 자신의 앨범에 수록하며 1984년 처음 세상에 공개된다. 2014년에 공개된 곡은 그 당시에 녹음한 마이클 잭슨의 데모를 활용하여 만든 것이다.


스트리밍 앱의 음악 추천 기능은 종종 우연한 만남을 주선한다. 무심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날 문득 귓가에 흐른 노래는 굉장히 나른했다. 몽환적인 선율이 흐르고 그보다 훨씬 꿈속에 있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서 노래를 했다. 음악은 나른했지만, 정신은 번쩍 들었다. 신기한 노래였다. 노래의 이름은 Good news. 맥 밀러라는 가수의 노래라고 했다.


Good news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스트리밍 앱이 등장하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랄게 사라진 후로 오랜만에 반복 재생되는 노래가 되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은 나를 맥 밀러와 연결해준 노래 이름과는 다르게 맥 밀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것이었다. 2년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사후 앨범이었다. 노래도, 가수 이름도 처음 듣는 이 음악의 주인이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흥분은 아쉬움으로 변해갔다. 누군지도 몰랐던 이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후회되었다. 누군가가 죽음은 하나의 세계가 멈추는 것이다. 그가 쌓는 음악 세계는 더 이상 없음을 알고 나니 Good news는 더 몽환적으로 들렸다.


 사람들을 나중에 천국에서 혹시라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묻고 싶다. 사후 앨범 들어보니 어떤지, 차기작으론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이냐고. 러닝은 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잊고 있던 나의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가장 생명력이 강한 활동을 하며 듣는 사후 앨범은 어딘가 역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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