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생활자의 꿈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나는 그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서점 한가운데에서 선 채로 그 책을 모두 읽어 버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생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정착, 그리고 갈증
호텔 입사 후 1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새 내 삶의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옥탑방에 ‘검정 봉다리’를 흔들고 들어오던 그녀는 이제 내 아내가 되었고, 우리는 부천에 작은 전셋집을 얻었다. 좁았지만 온기가 가득했던 그 집은, 변화무쌍한 내 삶의 베이스캠프이자 안식처가 되었다.
호텔리어로서의 생활도 비상계단의 어둠을 지나 이제는 제법 밝은 곳에 있었다. 신입사원 특유의 전전긍긍함은 여전했지만, 간절함이 불렀던 기적 같은 성취들이 쌓여가며 나는 제법 의젓한 영업사원이 되고 있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회사들의 리스트를 붙잡고 씨름하던 'ㅇ'의 언덕을 넘어, 이제는 고정 거래처들이 내 명함 지갑을 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숙원 사업처럼 여겼던 대형 은행과의 연간 객실 계약을 따냈을 때, 비로소 나는 이 낯선 영토에서 ‘이방인’ 딱지를 완전히 뗐음을 실감했다.
삶은 안정적이었고, 미래는 순조로워 보였다. 많진 않지만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과 호텔리어라는 근사한 직함은 노래를 포기하며 바닥을 쳤던 내 자존감을 보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안락함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선 정체를 알 수 없는 갈증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결핍이라는 이름의 이정표
나는 노래를 그만둔 빈자리에 '성공'이라는 단어를 채우고 싶었다. 그 성공은 단순히 통장의 숫자를 불리는 차원이 아니었다. 내 소중한 꿈을 헐값에 팔아넘기지 않았다는 증명, 내가 쏟아붓는 노력과 열정이 온전히 나라는 사람의 가치로 환산되는 삶을 원했다.
그러나 호텔은 내게 안정적인 그늘을 제공하는 대신, 보이지 둘레를 씌워놓았다. 내가 아무리 뜨겁게 타올라 실적을 올린다 해도, 나의 10년 뒤와 20년 뒤는 이미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게 되어 있었다. 성실함의 대가는 보장되었지만, 폭발적인 성장을 꿈꾸는 내 안의 야성은 그 조용한 질서에 조금씩 숨이 막혔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가?’
노래를 그만두고 겨우 찾아낸 재능이 ‘영업’이라는 확신은 들었지만, 이 재능을 어떻게 나의 미래를 위한 지렛대로 쓸지 알지 못했다. 세상은 넓었고 나는 여전히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세상 사람 모두를 쫓아다니며 답을 구할 수 없었던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가장 밀도 있게 엿볼 수 있는 통로를 찾았다. 바로 독서였다.
영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나 퇴근길에 나는 습관처럼 종로의 대형 서점으로 갔다. 서점 입구의 베스트셀러 코너부터 시작해 소설과 경제경영 구역을 지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자기 계발 서가까지, 나는 마치 길 잃은 여행자가 지도를 살피듯 매일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한 권의 책이 내 손에 잡혔다.
운명을 벤치마킹하다
‘OOO을 벤치마킹하라.’
투박하고 다소 인위적인 표지 디자인 때문인지 거부감이 드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 책을 집어 든 순간, 나는 서점 한복판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서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어 버렸다.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책 속의 주인공은 전도유망한 외국계 경영 컨설턴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시만 해도 사회적 인식이 바닥이었던 ‘보험 설계사’의 길로 뛰어든 인물이었다.
그 시절 보험 영업이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고육지책이라는 편견이 팽배했다.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보험 하나를 읍소하다가, 결국 인맥이 바닥나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일. 그것이 사람들이 기억하는 보험설계사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책이 보여준 풍경은 전혀 달랐다. 007 가방 안에 노트북을 넣고 정장을 차려입은 고학력 전문 인력들이 외국계 보험사를 기반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상품 판매자가 아니라 고객의 인생을 설계하는 재무 컨설턴트였고, 자신의 성과만큼 파격적인 보상을 받는 전문가들이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흔든 것은 '시스템'이었다. 내가 일한 만큼 경력이 쌓이고, 그 성과가 온전히 나의 가치와 수입으로 쌓여가는 구조. 그것은 호텔에서의 내가 느꼈던 갈증을 단번에 해소해 줄 확실한 해답이었다.
어차피 같은 영업이 아닌가. 모르는 문을 두드려 호텔을 팔던 기세라면, 보험을 파는 일도 못 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라는 등불과 스물아홉의 결단
결심이 서자 흥분이 온몸을 지배했다. 보잘것없이 찌그러져 있던 내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 준 아내에게, 이제는 '진짜 성공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검정 봉다리’에 구호품을 담아 오던 그녀의 고단함과 걱정을 덜어주고, 우리가 함께 꿈꾸는 미래를 더 탄탄하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주변의 만류는 거셌다. 번듯한 호텔리어라는 직함을 버리고 왜 굳이 험난한 보험의 길로 가려하느냐는 걱정들이 쏟아졌다. 단단했던 결심이 사람들 앞에서 조금씩 흔들리던 그때, 나를 잡아준 것은 역시나 아내였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봐. 내가 옆에서 응원할게.”
아내는 인생의 어두운 고비마다 스스로를 태워 내 앞길을 비추는 등불이었다. 50만 원짜리 중고차를 사주며 나를 일으켰던 그녀는, 이번에도 조건 없는 신뢰로 내 등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나는 그 기대를 절대로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성공하여 아내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리라 다짐했다.
이십 대가 마무리되던 스물아홉의 12월, 나는 정들었던 호텔을 떠났다. 남들은 안정된 길로 접어들 시기에 나는 다시 길 없는 거친 들판으로 나갔다. 이 결정이 내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안의 심장 박동이 노래를 시작하던 스무 살의 그날처럼 다시 뜨겁게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