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영업 도전기(3): 간절함이 맞춘 운명의 톱니바퀴

이중생활자의 꿈

by 이중생활자 홍원표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이방인


입사 후 몇 차례의 날 선 경험을 통과하며, 나는 영업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아주 조금씩 더듬어 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에 서툰 내가 잡상인의 부적을 떼어내고 호텔리어로서 명함을 건네기 시작했지만, 내 마음은 늘 절벽 끝에 선 것처럼 급했다. 이십 대 전체를 바쳤던 '노래'를 스스로 지워버린 나에게, 이 새로운 길은 단순한 수입원으로써의 직장이 아니라 무너진 자존감을 재건할 유일한 성소(聖所)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이 전향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실적이라는 숫자로 증명해내고만 싶었다.


사무실의 선배들은 마치 노련한 어부 같았다. 그들은 매일 아침 거친 바다로 나아가 훌륭한 수확물을 들고 귀항했다. 굵직한 계약을 따내 사무실 가득 뱃고동 소리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나는 축하의 미소 뒤편에서 아득한 열등감을 느꼈다. '얼마만큼의 시간과 시행착오가 있어야 저 선배들의 궤도에 오를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내 걸음은 더디게만 느껴졌고, 조급함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매일 아침 사무실 미팅이 끝나면 사무실은 순식간에 공동묘지처럼 적막해졌다. 관리 직원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자의 거래처를 향해 외출했기 때문이다. 관리할 거래처가 많지 않았던 나는 늘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겨졌다. 전화기 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버려진 섬 같았다. 그 소외감을 견디다 못한 나는 어느 날, 과장님께 당돌하게 말했다.


“과장님! 저도 일하고 싶어요. 거래처 좀 주세요!”


도발적인 요청에 과장님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아무 말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책상 서랍 깊숙한 곳을 뒤적여 낡은 파일 하나를 내밀었다.


“그래, 정 그렇다면 여기 있는 리스트에 전부 연락해 봐. 아무도 손대지 않은 거니까.”


누런 파일 표지에는 ‘한국 다단계 회사 리스트’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단번에 왜 이 데이터가 동료들의 외면 속에 묵혀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은 업계, 불투명한 재무 구조, 그리고 예측 불허의 사람들. 하지만 내게는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 리스트를 마치 보물지도라도 되는 양 받아 들었다.


'ㅇ'의 언덕에서 만난 운명


그날부터 나는 수화기를 들고 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초성 ‘ㄱ’으로 시작하는 회사부터 하나씩 번호를 눌렀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콜드콜(Cold Call)’. 이름처럼 상대방의 반응은 ‘빌딩타기’를 하며 낯선 사무실에서 마주치던 냉기보다 훨씬 더 차가웠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거절의 말들은 날카롭기만 했다.


가끔 의외로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곳을 찾아가 보면, 과연 이 회사가 유지될까 싶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이는 곳이 태반이었다. 어떤 이는 나를 만나자마자 호텔 계약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네 사업 설명회를 들어보라며 끈질기게 영업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전화를 걸어보면 그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회사들도 상당했다.


파일 리스트의 ‘ㅅ’을 지나 ‘ㅇ’에 도달할 무렵, 내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리스트의 대부분이 성과 없이 'X' 표시로 채워졌고, 나는 비로소 선배들이 왜 이 파일을 버려두었는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역시 영양가 없는 쓰레기더미였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나는 다시 그 어두운 비상계단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오후, 맥 빠진 손가락으로 'ㅇ'으로 시작하는 ‘이O코리아’라는 회사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이O코리아입니다!”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온 목소리 너머로 활기찬 사람들의 소음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통화했던 침체된 사무실들과는 느낌부터 달랐다.


“안녕하세요, OO호텔 판촉팀 홍원표라고 합니다.”

“네? OO호텔이요? 세상에, 저희가 지금 호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고 전화를 주셨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암튼 이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네요. 괜찮으시면 오늘 당장 저희 사무실로 와주시겠어요?”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전개에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직감적으로 이것이 호텔 영업사원으로서의 첫 번째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O코리아로 달려갔다.


간절함이 맞춘 운명의 톱니바퀴


한달음에 도착해 이O코리아의 사무실 문을 연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거대한 빌딩 한 층을 통째로 쓰는 사무실 안에는 백여 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전화기를 붙잡고 고함을 지르듯 소리치며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더 울프 오브 더 월스트리트>의 사무실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열기가 공간을 달구고 있었다.


나와 마주한 담당자는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오늘 아침 전략 회의에서 한 달 뒤에 있을 대규모 행사 계획이 확정되었고, 마침 몇 군데의 후보 호텔을 추리고 있던 차에 내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다. 회의 종료와 동시에 걸려온 나의 콜드콜은 그들에게 '하늘의 계시'처럼 받아들여졌다.


객실 수십 개와 대연회장을 통째로 사용하는 메머드급 행사. 드디어 내게도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운'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안다. 리스트의 'ㄱ'부터 'ㅇ'까지 수많은 거절을 견디며 수화기를 놓지 않았던 그 지루한 시간이 없었다면 이 '운'은 결코 내게 오지 않았을 것임을.


그날부터 나는 이O코리아의 직원이 된 것처럼 그 회사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신입사원 입장에서는 대어를 낚아 올리고 있다는 소식에 사무실의 선배들도 반신반의하며 기대를 보였다. 결국 계약서에 최종 서명이 찍히던 날, 나는 선배들이 받던 그 뜨거운 박수의 주인공이 되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학교 성적도 보잘것없고 이력서도 부실한 가수 지망생을 뽑아준 회사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나는 온몸으로 증명해 냈다고 생각했다.


성공의 문턱에서 마주한 2주의 지옥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만약 행사 당일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한다면, 이 대규모 계약은 단발성 해프닝으로 끝나고 나는 다시 밑바닥으로 추락할 것이 뻔했다. 나는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기 위해 결벽증 환자처럼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행사 직전까지 무한 반복하며 점검했다.


드디어 행사 당일, 호텔 로비는 인파로 북적였다. 수많은 사람이 체크인을 위해 줄을 섰고, 대연회장은 다양한 부스들이 들어섰다.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총지배인님과 각 부서의 부장님들이 신입사원인 내가 가져온 행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나 역시 1박 2일 동안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구두 뒷굽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행사가 막바지에 다다라 성공적인 피날레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이O코리아의 담당자가 나를 조용히 밖으로 불러냈다.


“원표 씨, 저... 정말 죄송한데, 오늘 행사비용 결제를 바로 못 해 드릴 것 같아요. 본사 승인 절차 때문에 2주일 뒤에 집행된다고 하네요.”


심장이 발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부장님은 이미 경고했었다. 이 회사는 재무 상황이 유동적일 수 있으니 반드시 행사 종료와 함께 전액 결제를 받으라고. 담당자에게 확답까지 받았던 터였다. 이 소식을 들은 부장님은 노발대발하며 당장 결제를 받아오라고 다그쳤지만, 담당자는 완강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나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아니면 나를 믿어준 그 담당자에 대한 마지막 신뢰였는지 부장님 앞에 섰다.


“부장님,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2주 안에 반드시 결제받겠습니다. 제가 유치한 행사니 제가 마무리 짓겠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의 2주는 내 생애 가장 긴 시간이었다. 온갖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회사가 부도나면 어쩌지?’, ‘담당자가 잠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노래를 그만둔 후 이곳에서도 또다시 패배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매일 나를 옥죄었다. 다행히 약속된 2주째 되는 날, 행사 대금 전액이 입금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비로소 내 인생의 첫 번째 영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무대 위에 돋는 빛


그 일을 기점으로 나는 영업을 담당하는 호텔리어로서 자신만의 영토를 구축해 나갔다. 불과 1년 전, 노래를 지워버리고 옥탑방 마당에서 세상의 불빛을 원망하던 청년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뒤늦게 싹튼 나의 가능성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이 모든 삶의 전환점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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