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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경 Mar 17. 2017

협동조합과 민주시민교육

* 아래 글은 <캠퍼스 협동조합>을 주제로 작성한 글의 일부입니다. 수정·출판 예정입니다.


인간발달의 원천은 '사회'에 있다.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비고츠키의 교육학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종류를 '관계'와 '협력' 등 사회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교육학으로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국내에서 비고츠키가 주목받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그의 교육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좋은 교육 모델로 쏜꼽혀오던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쿠바 등 전 세계의 교육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상호작용과 언어 및 문화가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던 비고츠키의 이론체계는 '문화역사적 이론', '사회적 구성주의' 등으로 불린다.

교육심리학자 비고츠키는 '협력'이 공동체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가치일 뿐 아니라, 인간발달에서 필수적이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인간적 가치라는 것이 본래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간들의 공동체' 속에서 고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인간관은 "동료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체적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협력'이 단지 도덕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 '교육에서 필수적이며 가장 효과적인 과정'이라는 비고츠키의 논거는 '협력'과 '관계'를 명확한 교육적 가치로 상승시키는 근거가 되고 있다.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적인 측면을 강조했던 그는 단순히 개인의 개별화된 문제해결 능력 계발에 초점을 둔 교육의 접근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발달과정에서 배우고 익혀야 할 모든 지식과 개념, 기능들은 사회적 협력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것이기에 협력적 상황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친구와 우정' 등은 사회적 관계와 협력이 없다면 결코 제대로 익힐 수 없다. 주의집중이나 자기규제, 창조성 등 갖가지 정신기능들 역시 고립된 상황에서는 익힐 수 없는 것들이다. 이를 두고 비고츠키는 인간 발달의 원천이 '사회'에 있음을 강조했다.


'지성'은 '사회적 산물'이다.

교육철학자 듀이 역시 교육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영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경험을 교과서 삼아 일상 속의 여러 문제들을 함께 생각하고 지성을 키워나가는 일, 학교와 사회의 경계를 두지 않고 학생과 학교와 세상의 변화를 위한 일상적인 실천을 중시여기는 것이 듀이의 사상이다.

듀이는 산업화·도시화·기계화화노동의 분화 등과 같은 사회적 변화들로 인해 직접적인 인간관계와 풍부한 의사소통, 자율과 자치, 실제적 활동에의 직접적 참여 등과 같은 산업화 이전의 공동체가 지녔던 바람직한 생활양식이 변질되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치의 혼란, 경쟁과 폭력의 증대, 물질주의의 확산, 관료주의화, 공공선의 부재 등과 같은 현상들은 근대적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소산이라며,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공동체적 사유 및 행위양식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간본성이란 '충동, 습관, 지성'이라는 세 요소의 유기적 결합이며, 이 중 '지성'은 '사회적 협동이나 자유로운 교섭 그리고 의사소통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공동체의 산물'이라 강조했다. '지성'을 사회적 산물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는 '민주적인 공동체'라며, "인간본성이 가진 능력에 대한 신념, 즉 인간의 지성과 공동의 그리고 협동적인 경험의 능력에 대한 신념은 민주주의 기초"라고 설명했다.

이런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복잡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을 지탱하고 성장시켜가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적인 관계성을 인식해야 하고, 그러한 인식은 다른 무엇보다 사회적인 관계를 잘 드러내주는 실제 활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듀이의 주장이다.

실제로 듀이는 학생들이 일상적인 삶 속에서 협력활동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보고, 그 일환으로 '수공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여기서 '수공 프로그램'은 '손으로 만든다'는 의미 그 이상의 교육적 의미로서 단순한 기술함양의 차원이 아니라, 지적이고 사회적 성향을 발달시키기 위한 실제적 활동으로 구성된다. 요리, 정원 가꾸기, 수공·목공 활동 등의 공동 작업이 중심축이었다. 이들 프로그램은 정해진 교과 수업의 피로를 덜고자 별도로 부가된 프로그램이나 정서적 위안과 즐거움을 제공할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었다. 교과내용을 배우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학교 밖에서와 같은 적극적인 '관심'과 '능력'이 살아있도록 매개해줄 활동을 탐색하고 조직한 결과였다. '생동성'이 교육적 성장의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노동은 그 자체로서 놀이이기도 하고 사회적 협동을 체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교육은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서 체득하고 실천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일이다.

듀이는 산업화, 도시화 등의 변화들이 공동체 생활에 있어 인간관계를 다양화하고 그 질을 고양시켜 줄 경험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었음을 지적하며, 수공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실제적 경험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그러한 결함을 극복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실제 삶의 문제로부터 심화·확장되어갈 수 있도록 하는 협력적·자치(self-rule)적 경험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창의적인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단지 투표권이 공정하게 집행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믿는 것은 민주주의를 왜소하게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거나 행정을 집행하는 방식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심오하다. 듀이는 집단 간 상호작용이 자유롭고, '상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적'이라고 인정한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운데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서 체득하고 실천하는 시민으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교육'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듀이의 교육관은 자발적 '참여'와 '협동'을 사업의 동력으로 삼는 '협동조합'의 핵심 골격과 유사하다. 듀이의 '공동체'와 '협동조합'의 규범적 성격과 준거는 동어반복의 수준으로 맥을 함께하고 있다. '협동조합' 역시 '민주적 참여', '협동과 공존의 가치'를 제도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지닌 사업체를 통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이 '협동조합'이다. 공동의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의사소통하며 상호변화까지 이끌어가는 것이 성공의 열쇠다.

듀이의 실험을 건설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교육적 매개로서 '협동조합'을 검토하는 것은 '학교'가 만들어놓은 '교육'의 경직성을 벗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캠퍼스 협동조합에서 학생들은 스스로의 필요와 문제를 낯설고 마주하고 이에 대응하는 일에 상당한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협동조합에서 수행하는 사업 자체가 학생들의 필요를 해소하기 위한 일이며, 그로 인한 수익을 다시 학생들의 교육복지를 재투자하는 비영리적 성격을 지니는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짐작이 가능하다. 책 속의 개념적 지식을 책상에 앉아서 습득하는 활동이기보다는 현재적 상황을 의도적으로 낯설게 하고, 문제적 사태에 빠지면서 인식체계를 새롭게 해야 한다. 현재 작동하고 있는 캠퍼스 협동조합이 재정적 '복지' 실현에 한정하고 있다면 '교육적 매개'로서 협동조합의 의미를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는 자각이 요구된다. 학생들이 학교와 교육의 주체임을 인식하고, 스스로 공공의 이익(교육복지)을 실천하고 책임지는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곧 민주시민으로서의 '시민성' 고양과 직결된다.

듀이는 그의 고향 버몬트주 벌링턴시를 포함한 지역 공동체의 유소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진정한 공동체가 지녀야할 바람직한 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토론과 의사소통을 통한 의사결정에의 민주적 참여와 공공선(common good)의 추구, 협동과 공존, 가치와 의미의 공유 등을 중시함과 아울러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사회'가 그것이다. 바람직한 공동체성의 준거를 내재화하고 있는 ‘협동조합’을 방편으로 삼는 데 손색이 없다.


협동조합, 학교의 공동체성 회복을 돕는다.

듀이는 '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육시스템이 공동체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공동체의 실체적 준거로서 내적으로는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의식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관심의 수와 다양성'을, 외적 준거로는 '다른 사회집단과의 자유롭고 충만한 상호작용'을 꼽았다. 그의 준거를 엄격히 적용하면 교육공동체로 일컬어지는 학교가 실제 공동체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적·물리적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활동들이 인재양성이나 교사교육과 같은 특정 목적을 위해 전개된다고 해서 그것을 일방적으로 공동체라고 단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듀이의 시각에서 볼 때, 학교에서 만일 구성원들이 여러 의사결정과정에 충분히 그리고 자유롭게 참여하고 있지 못하거나, 혹 공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에 비추어 각 구성원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학교 외의 다양한 기관이나 단체들과 풍부하게 상호작용하지 못하고 그 자체의 관심만을 추구한 채 고립되어 있다면, 그것은 기계적인 결합일 뿐 진정한 공동체라고 볼 수 없다.

학교 자체로 공동체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 안에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는 일은 학교의 공동체성을 채우는 일로 연결된다. 먼저 공동체성을 담보하는 내적 원리인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의식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관심의 수와 다양성'은 협동조합 사업의 내적 구성원리다. 구성원들이 의식하고 있는 관심 영역이 바로 사업의 원천이며,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파생하는 구성원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업의 메커니즘이다. 구성원의 관심 영역이 이동하는 경로에 따라 움직이는 작동 원리는 '생물'에 가깝다. 공동체성의 외적 원리인 '다른 사회집단과의 자유롭고 충만한 상호작용'은 협동조합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자산이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사업은 신뢰와 협조의 규범에 기반을 둔 호혜적인 사회적 관계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가 성공의 열쇠다. 게다가 협동조합 7원칙 중 하나인 '지역사회 기여'는 듀이의 외적 준거 '다른 사회집단과의 자유롭고 충만한 상호작용'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공동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협동조합'을 활성화하는 일은 학교 제도의 경직성을 극복하는 의미있는 실험이라 하겠다.


조현경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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