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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웨터 Nov 29. 2022

환불의 여왕 (2016.07)

소설습작 서유미수업

   그녀는 환불의 여왕이었다. 그녀가 처음 환불한 것은 대학교 때 산 티셔츠였다. 지방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서울로 대학교를 온 뒤, 그녀 용돈으로 처음 산 여름 티셔츠였다. 티셔츠 하나를 고르기 위해 그녀는 친구와 명동 백화점을 가서 그 백화점을 거의 두 바퀴 정도 돌았다. 첫 번째는 각각의 매장에 어떤 제품이 있나 보느라, 두 번째는 다시 그 제품들을 보며 비교하느라. 고심 끝에 고른 것은 결국 처음부터 한 눈에 들어 왔던 노란 티셔츠였다. 하지만 노란 티셔츠에는 종류가 두 개가 있었다. 기린 그림이 그려진 초록색 프린트가 들어간 것과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지고 반짝이는 큐빅이 두 개 박혀있는 것, 그렇게 두 개의 티셔츠 앞에서 그녀는 고민을 시작했다. 고양이 티셔츠가 더 예쁘긴 했으나 큐빅 때문에 세탁이 까다로울 것 같았다. 반면 기린 티셔츠는 뭔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무난하게 입기 괜찮아 보였다. 친구의 의견도 물어보고 고심 끝에 결국 기린 티셔츠를 골라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그 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 속엔 온통 티셔츠 생각뿐이었다. 분명히 마지막 순간 기린 티셔츠가 더 무난하게 잘 입을 것 같아 사 왔지만, 두고 온 고양이 티셔츠가 자꾸 눈에 밟혔다. 두 개 다 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용돈 받아 사는 학생 처지에 그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똑같은 색깔의 노란 티셔츠를 두 개 사서 뭐 할 것 인가. 과연 오늘 오후 자신의 결정이 옳았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기린 티셔츠를 환불하고 노란 고양이 티셔츠를 새로 사면 얼마나 좋을지 가늠해보았다. 고양이 큐빅 티셔츠를 입고 이쁘게 미소 지으며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이르니, 그녀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백화점으로 달려가 기린 티셔츠를 환불해달라고 했다. 환불이라니. 그녀 어머니도 잘 하지 못했던 그것이었다. 그녀 어머니도 막상 물건을 사놓고 마음에 안 들면 끙끙대다가 그냥 말아버리곤 했다. 다시 매장에 찾아가서 환불해달라고 이유를 구구절절 대며 사정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도 어려워하던 그것, 그 환불을 그녀가 처음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점원 언니가 쌀쌀맞게 굴며 안 해준다고 하면 어떡하나 했던 우려와는 달리, “저 … 이거 환불 좀 해주세요.” 라는 그녀 말이 떨어지자 마자 그녀는 결제 영수증과 제품을 달라고 하더니 바로 취소 영수증을 끊어서 그녀에게 주었다. 왜냐고 물어 보지 조차 않았다. 제품을 혹시 입어 보진 않았는지, 제품에 뭐가 묻지 않았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 접한 환불의 세계는 그렇게 깔끔하고 간편했다. 예전과는 달리 소비자의 권리가 대두되면서 단순 변심에도 환불이 가능하게 된 탓도 있겠으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이제 환불은 더 이상 어려운 과제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박하게 시작한 환불의 세계는 몇 년이 지나면서 그 어렵다는 가구 환불의 단계까지 이르렀다. 직장인이 된 그녀는 어느 해 봄 쇼파를 새로 샀다. 가구 매장에서 그 많은 쇼파들 중에서 고르고 고르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진한 갈색 가죽 쇼파를 골랐다. 그런데 일주일 뒤 기사 아저씨들이 와서 쇼파를 설치해주고 간 뒤 다시 보니 뭔가 이상했다. 쇼파에 앉아서 엉덩이를 쑥 집어넣고 허리를 편안히 기댄 채 발을 내밀었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녀는 몇 번이나 다시 앉아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발을 내딛어 보았으나 여전히 닿지 않았다. 그저 발끝이 바닥에 닿을랑말랑 할 뿐이었다. 그녀에게 아니 어쩌면 보통 사람들에게 쇼파란 앉아서 기댄 채로 발이 자연스럽게 땅에 닿아서 편안히 쉴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 배달된 쇼파는 전혀 그런 자기 본연의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가구 매장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으나, 일단 이미 배송되어 설치까지 된 상품이기에 환불은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녀는 퇴근하고 가구점에 가기 위해, 그날 혼신의 힘을 다해 일을 전속력으로 마무리했다. 어렵게 가까스로 칼퇴근을 하고 1시간 거리에 있는 가구점으로 달려갔다. 처음 가구를 살 때 그토록 친절했던 직원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동안 다져온 신공으로 지지 않고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먼저 매장 진열 상품의 높이, 땅 바닥에서부터 좌석까지의 높이를 재니 44CM 정도였다. 점원은 자기네 쇼파는 공장에서 제조되기 때문에 쇼파 좌석의 높이가 높아 봤자 매장 진열 상품 대비 2~3 CM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5CM 정도 차이가 되어야 상품의 하자가 인정되어 환불 받을 수 있겠지만 그럴 확률이 2% 될까말까 한다고도 했다. 그녀는 그런 그의 말을 새겨듣고, 집에 오자마자 줄자를 들고 쇼파의 높이를 쟀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쟀는데 49CM가 나왔다. 딱 1CM가 모자랐다. 다시 쟀다. 재는 방법을 달리 하니 어찌어찌 겨우 50CM를 맞출 수 있었다. 그 사진을 찍어 직원에게 보냈다. 직원은 그녀의 환불을 향한 열정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쇼파를 환불해준 적은 없었는데…” 라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환불을 해 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인생이 환불이었다. 언제나 별 걱정 없이 쉽게 결정해버리고 뒤에 가서 발 동동 구르며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집도 그랬다. 그녀가 그 오피스텔을 계약한 것은 단순히 그녀의 남자 친구가 맞은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새로이 살 집을 알아 봐야겠다고 했을 때 그는 순순히 같이 집을 보러 가 주었다. 그런 그에게 고맙다고 하며 같이 집을 보러 다니긴 했으나 그녀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다. 밤에도 언제든 그가 보고 싶으면 달려나갈 수 있는 거리. 그는 그녀에게 방 구조도 그렇고 채광도 그렇고 여러 요인을 따져 봤을 때 자신의 집에서 7분 거리에 있는 집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맞은 편 집은 집 앞에 바로 다른 원룸에 위치하고 있어서 채광이 좋지 않은 점이 별로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듣지 않았다. 그가 추천한 집에서 그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횡단 보도를 하나 건너야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그의 맞은 편 집을 계약을 했다. 


   대망의 이삿날, 그녀는 이사를 하고 그제서야 경악을 했다. 아침이 되어도 점심이 되어도 그 방은 햇빛이 들지 않았다. 지난 번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오후 4시경이었기 때문에 겨울철 늦은 오후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충 넘기고, “이 동네 오피스텔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보통 다 이래요.”라는 부동산 아줌마의 말에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그녀에게 집이란 아침이면 햇빛이 들어와 잠을 깨고 창문을 열었을 때 조금이라도 하늘이 보여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를 향한 마음에 눈이 멀어 계약한 그 집은 집으로서의 기본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에게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와 함께 있지 않을 때 이대로 햇빛도 보지 못하며 방에 앉아 마냥 그를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끔찍했다.  


  그녀의 고민이 또 시작되었다.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부동산 계약서를 꼼꼼히 보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그녀에게 유리한 규정은 없었다. 그녀는 그래도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녀가 생각해낸 대책은 지원군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부동산에 빠삭한 외삼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실 외삼촌이 부동산을 잘 알아서보다는 싸움꾼 기질이 다분해서가 더 큰 이유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지고 외가 쪽 재산 분배를 놓고 외삼촌, 이모 간의 싸움이 붙었을 때 가장 막내였던 그가 열세에도 불구하고 꽤 든든한 몫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전투력 덕분이었다. 그런 그를 앞세워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절대 이런 집에서는 살 수 없다, 처음부터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게 아니냐 라며 막무가내로 계약 취소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고자세를 취했던 부동산이었지만 외삼촌과 그녀의 쌍방 공격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부동산이 결국 절충안을 내놓았다. 마침 그 오피스텔에 다른 빈 방이 있는데 그 방은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햇빛이 잘 들어오니 괜찮으면 그 방으로 옮겨주겠다는 것이었다. 한숨을 쉬며 이런 사례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 완전한 환불은 불가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그 절충안에 수긍을 했다. 절반의 승리였다. 


   

  그런 그녀가 결혼을 했다. 그에게서 최대한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에 그의 맞은편 집으로 이사까지 하며 그를 쫓아 다녔지만 결국 헤어진 이후의 일이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그와 헤어진 뒤 그녀는 남자는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며 집에서 정해준 남자와 결혼을 했다. 부모님이 주선한 맞선 자리에서 그녀는 그 남자를 처음 만났다. 수려한 외모, 깔끔한 스타일, 무엇보다 괜찮은 조건의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전에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어서 그녀를 가끔 짜증나게 했던 그와 달리 남자는 말이 많았다. 그에게서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아 아직 환하게 웃는 게 힘들었던 그녀는 자신이 굳이 대화를 이끌어갈 필요가 없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녀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들은 몇 번 만난 뒤 바로 교제를 시작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다. 


   그녀의 친구들이 왜 그렇게 서둘러서 결혼을 진행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자신은 빨리 정착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이 서른을 넘기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은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20대 때 자신이 원하는 남자들과 그토록 연애에 열중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쓰라린 상처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뿐 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의 선택을 믿었다. 결국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건이라며 경제력과 생활력이 좋은 남자를 만나야 고생 안하고 편히 살 수 있다는 그 말에 쉽게 수긍해버렸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쉽게 결정하고 그녀는 결혼식장으로 들어섰다. 눈부신 웨딩 이후 그녀는 장미빛 미래를 꿈꾸었다. 그녀에게 결혼이란 SNS에 올라오는 이쁘고 아기자기하고 알콩달콩한 일상과 같은 이미지로 존재하고 있었다. 


   막상 결혼을 하고 함께 살게 된 그 남자는 이전과는 딴 판이었다. 몇 달 안 되는 연애 기간 동안 그녀와의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 공들였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자신의 옷을 쇼파에 벗어 던진 채 집안일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래,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남자는 집에 오자마자 말을 시작해서 잘 때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연애 시절 했던 그런 장난스럽고 재미난 말들이 아니었다. 청소에 대한 불만, 쇼파 위에 쌓인 먼지를 봐라, 여기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다는 말. 음식에 대한 불만, 이거 맛이 왜 이러냐, 나는 여태껏 이렇게 맛없는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투정. 사회에 대한 비판, 우리나라 정치는 이래서 문제야, 이슬람 교도들은 잡아서 다 모조리 죽여버려야 돼, 중국놈들은 왜 자꾸 우리나라로 오는 거야 라는 원색적인 비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회사에 대한 불평 불만. 우리 팀장은 왜 그 과장만 이뻐 하는 거야, 내 후배는 왜 나한테 그런 식으로 기어 오르는 거야, 왜 나는 평가를 잘 받지 못한 거야 등. 매일 비슷한 테마의 불평 불만의 변주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 달을 참았다. 한 달 동안 내내 저녁 마다 그녀에게 말고문이 이어졌다. 집에 들어오면 말을 끝도 없이 계속하는 그 남자 때문에 그녀는 귀에서 이명이 들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 그 남자가 들어와 또 말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말을 듣고 또 들어주다가 한계에 도달했다. 말을 끊고 그만 침실로 들어와 버렸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도저히 이 남자를 못살겠어. 엄마가 이 남자 좀 어떻게 해줘. 엄마가 소개시켜줬잖아. 나는 엄마 말만 믿고 결혼했다고. 그니까 엄마가 이 남자 환불 좀 해줘. 응? 응?” 



평 : 소설 구성의 요소 중 배경이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다. (시간/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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