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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티스 Sep 30. 2022

입덧에 대한 고찰

어느 날 아침 주방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 순간 둘째를 가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전날만해도 멀쩡했던 내 위장이 냉장고에서, 싱크대 주변에서 풍겨나오는 미묘한 냄새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위장이 그럴리가 없겠지만 냉장고 문을 열자 밀려나오는 응축된 음식 냄새에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마치 심장이라도 된 것 처럼 말이다. 임산부에게 냉장고 문을 여는 일은 심해에 잠수하기 직전 다이버가 깊은 쉼호흡을 하는 것처럼 엄청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를 가졌을 때도 입덧으로 고생을 했다. 그때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증상에 정신없이 당하느라 입덧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이사준비를 위해 매주 집을 알아보고 가구를 사러 다니느라 정신이 분산됐었다. 


지금도 육아를 하느라 여유가 없는 건 마찬가지이나 집에서 정적으로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입덧의 온갖 양상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하루 종일 입덧 생각만 하며 지내다 보니 입덧이 뭐길래 하는 주제로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입덧의 증상과 정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나는 음식만 먹으면 화장실로 달려가는 ‘토덧’ 정도로 심한편은 아니고 토하기 직전에 이르는 증상을 종종 경험하는 수준이다. 남자들에게 입덧을 설명할 때 흔히 드는 예시는 ‘술병 증상’이다. “응 그거 술 약한 사람이 전날 소맥 10잔 말아먹고 2차로 와인에 위스키 들이붓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겪는 느낌이야. 그런데 거기다 추가로 배멀미까지 한다고 보면돼.”


나의 입덧 증상은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마치 ‘오늘도 니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잊지말거라’하고 위장이 신호를 보내듯 곧바로 속이 쓰리고 메스껍다. 빵과 우유로 속을 달래고 나면 기다렸다는듯이 위는 격하게 운동을 시작하고 토하기 직전에 이르기까지 울렁거린다. 


주로 저녁에는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저녁을 적게 먹어도 머리가 어지럽고 숨쉬기가 불편하다. 마음 놓고 소화제를 먹을 수 없으니 매실액을 탄 물을 마시거나 몸을 움직여 막힌 음식물을 내려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답답한 와중에도 울렁거림은 여전하다. 


어떨땐 입덧대신 발가락이 부러지는 고통을 느끼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발가락이 부러져 본 적은 없다. 고통을 비교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입덧은 그만큼 살면서 경험해본 육체적 고통 중에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인 것은 분명하다. 첫째를 자연분만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출산한 나는 3~4개월의 입덧보다는 하루동안의 진통이 더 낫다는 생각도 했다. 


어떤 입덧은 실연했을 때 느꼈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증상도 있었다. 과거 20대 시절 실연한 직후 밥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3키로나 빠진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지만 그때는 밥 숟갈을 뜰 때마다 속이 울컥하고 가슴이 아려서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입덧이 끝난 후 정말 맛있게 먹었던 똠얌꿍.

입덧의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임신호르몬인 hCG(인간융모성생식선자극호르몬) 수치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시기에 따라 입덧 증상도 심해졌다가 완화되는 경우가 많아 이 호르몬과 관계가 있을것이라는 학설이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호르몬 수치와 상관없이 출산 직전까지 입덧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입덧은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 기 까지 아이가 잘못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에게 태아가 잘 있다고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첫째를 가졌을 때 초기에는 혹여라도 잘못될까봐 주위에도 알리지 않고 늘 조심스러워 했었다. 

또는 근심 걱정이 많은 임신 초기의 엄마의 혼을 쏙 빼놓게 하려고 입덧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입덧을 하며 골골거리다 보면 아이의 건강이나 출산 후 육아 걱정은 무심하리만치 할 틈새가 없어진다. 그렇게 정신 없이 입덧의 고통을 견뎌내면 어느덧 임신 중기에 이르러 있다. 


나는 고위험 산모는 아니지만 건강한 산모도 아니다. 근육없는 마른 비만의 왜소한 몸이라 주변에서 그렇게 작아서 어떻게 아이를 낳겠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조차도 기나긴 임신 생활과 험난한 출산의 과정을 어떻게 버틸지 늘 의구심을 품고 지냈다. 그래도 16주가 지나니 입덧은 많이 완화됐고 먹고 싶은 것도 먹으며 사람답게 남은 임신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입덧은 공정하면서도 불공정하다. 부와 지위에 상관없이 임산부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정도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정하다. 물론 입덧을 완화해주는 값비싼 약이 있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건강해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입덧은 피해갈 수 없는 점에서 불공정하다. 체육시설을 운영할 정도로 탄탄하고 건강한 몸을 갖고 있는 지인은 임신 기간 내내 입덧으로 고생했다. 다른 지인은 고위험 산모로 임신 내내 누워지냈는데 입덧 증상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입덧은 생명을 얻고 기르는 일은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부모의 첫 관문이 아닐까. 그저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것만이 그 시기를 견디는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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