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향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건 완벽한 조력자를 만난 이후다.
학창 시절, 친구가 별로 없었다. 늘 하루살이 같았다. 배신을 당하고 홀로 걸어가는 일이 많았다. 슬픔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떡해서든 살아내 보고 싶어 고향을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 대학교를 편입한다고 하자!’ 이 문장이 떠오르자마자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서울로 도망칠 준비 자금을 조금 모았다. 우체국에서 제일 큰 사이즈의 택배 상자를 2개 구매해 한 박스에는 책을 넣었고 다른 박스에는 당장 서울에서 입을 옷가지들을 쑤셔 넣었다. 택배를 받을 주소를 적어 넣고 안방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누나 지금 나가. 작은방에 택배 상자 2개 있는데 적혀 있는 주소로 보내줘!” 22살 2월의 겨울, 그렇게 고향에서 도망쳐 서울로 올라왔다.
온기 하나 느껴볼 수 없는 서울이었지만 낯선 사람들 속에 있으니 오히려 마음만은 편했고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아 아르바이트와 편입준비를 병행했다. 수능을 준비하는 것만큼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 노력을 해야 했다. 편입에 대한 정보가 빈약했던 상태에서 준비한 첫 번째 편입은 실패했다. 휴학 처리를 해둔 대학교에서 휴학 연장 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아 이번에는 반드시 편입에 성공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계획 노선을 변경했다. 인 서울을 하지 못하더라도 경기 충청도권까지 염두에 두고 가고 싶거나 갈 수 있는 대학교를 선별했다. 10군데 대학교를 선별해 지원서를 넣었다.
면접일이 점점 다가와 조급할 줄 알았는데 막상 면접을 보려 하니 마음이 초연해졌다. 여러 군데 면접을 갈 수 있었음에도 유독 이끌리는 학교가 있어, 지원서를 넣은 곳 중에 한 곳에만 면접을 가기로 결심했다. 후회 없이 면접을 보고 싶어 보통의 면접 복장 대신 원래의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청청패션에 화려한 패션 배지들을 주렁주렁 달고 20대의 어느 청춘으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총 3분의 면접관이 계셨는데 학과 교수님 중에 면접관으로 선별된 분들이셨다. 내 복장을 보고 놀라면서도 재밌어하는 눈치셨다.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 하고 싶은 말을 뱉었고 열심히 들어주는 어른들이 있어 솔직함이 말의 이곳저곳에서 묻어 나왔다.
면접관 중에 한 분이 마지막으로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 오늘 복장이 정말 화려하네요. 좋아하는 패션인가요?” “네!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두르고 왔습니다! 그래야 긴장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 패션 매일 보고 싶으시다면 저를 편입생으로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신문방송학과에 편입했다. 인 서울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충남 아산시 소재의 대학교였다. 편입학에 성공한 나는 완전히 고향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시간을 유영하던 중 지역신문 관련 전공을 듣게 되었을 때 나의 도망에 완벽한 조력자 교수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순간 가슴이 설레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조력자와 더 깊은 유대 형성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때를 기다리던 중 예비 언론인 현장실습으로 지역신문 콘퍼런스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의 완벽한 조력자는 지역 신문계 내에서 권위자 중 한 분이라고 조교님이 말해주었다. 현장에서 그는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장군님 같았다.
실습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는 스쿨버스에 올라탔는데 교수님 옆자리가 비어 있었고 고민할 것도 없이 원래 내 자리 마냥 자연스럽게 그의 옆 좌석에 앉았다. 그러곤 이내 질문 하나를 던졌다. “교수님, 면접 때 기억나세요? 저 뽑아주신 이유가 궁금해요!” 그는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 더 보고 싶어서 뽑았어” 타향살이 처음으로 어른에게 온기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 이후로 교수님과 나는 서로의 궁금함에 대해 주고받으며 서로의 시간을 채워나갔다.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 않지만 뜻밖의 완벽한 조력자 덕분에 학교를 편입을 했고 내 삶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유로운 삶으로 편입했다. 어쩌면 나의 완벽한 조력자는 알지 않았을까 나의 간절한 눈빛을 말이다.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간절함을 품고 사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