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몰라 작은 거짓말을 몰래 연습한다. 오래 기다리셨냐는 말에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하기 위해서. ‘30분 일찍 도착해서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라는 사실은 숨겨두어야 한다. 나는 작은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사람이니까. 별거 아닌 인사치레에도 마음을 쓰고 마는 나는 이런 수고를 달고 산다. 상대를 누군가를 기다리게 해버린 사람으로 만들지 않으려 최대한 자연스럽게 준비한 말을 꺼낸다.
약속 시간이 9시 30분이라면, 9시에 도착하면 될까 싶은 마음으로 준비한다. 그 시간에 도착하는 전철은 최소 10분 전에 타야 한다. 좌석 버스는 40분 정도 걸리니까 8시에 집을 나선다. 처음 가보는 곳이거나, 환승을 많이 해야 하는 경우,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차라리 한 시간 전에 도착한다고 마음을 먹는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수없이 다닌 사람은 이런 셈법이 익숙하다. 다만 가끔 결과적으로 셈이 틀려버린 날에는 붕 떠버린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네 시에 네가 온다면 세시부터 행복해진다’는 어린 왕자의 친구 여우의 말은 언제나 맞는 말이 아니다. 모든 기다림이 순수한 설렘일 수는 없다. 먼저 도착해서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일은 나와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된다. 약속 장소 주변의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주변의 볼거리를 찾는다. 일찍 도착해버리고 마는 사람은 기다리는 연습에 익숙해진다. 연습이 부족했던 지난 시절, 나도 모르게 기다림에 지쳐버린 마음으로 상대를 만났다. 그런 마음으로는 상대를 기꺼이 반가워할 수도 없고, 작은 지각에도 예민하게 반응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딱 맞춰서 도착하려면 지각하기 십상이다.
일찍 가는 것은 이제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지각은 하기 싫고 아슬아슬 늦을까 봐 초조한 마음으로 버스 기사님을 원망하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앞으로도 나는 자주 두 개의 약속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