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매우 유능한 몇몇 조직장들은 1년에 두 번씩 구성원이 조직장에게 편지를 쓰게 했다. 이 편지는 우선 본인과 함께 일하는 조직장의 직무와 본인 직무의 목적을 생각한 대로 기술한다. 그 다음 본인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과 기준과 성과 창출을 위해 해야 할 목록을 적는다. 그리고 성과 창출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기록한다. 조직장 또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 중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방해가 되는 것을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목표(goal) 달성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의 윤곽을 그린다.”
이 구절은 1954년 쓰여진 피터드러커의 <경영의 실제>에 소개된 개인 성과계획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피터드러커는 책의 이 대목에서 성과계획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수립되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는데요. 지식노동자(Manager)는 궁극적으로 ‘회사 전체에 공헌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 조직 구성원들이 조직 레벨의 성과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고 이에 기여하려면 ‘마음과 마음의 만남’(meeting of minds)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그는 하향식 소통이나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오로지 ‘상향식 소통’을 통해서만 달성된다고 말하며, 따라서 결국 성과(performance)창출은 아래가 아니라 위를 향한다고 강조합니다. 오늘은 지난 글에서 다룬 경영계획 수립 방안에 이어, 단위조직 차원의 경영계획에 대한 답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 차원의 성과계획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성과계획’이란 무엇일까요. 서두에서 피터드러커가 소개한 ‘구성원의 편지’ 사례에 비추어, 이렇게 정의해볼 수 있습니다.
누가 : 성과창출자 본인이
왜 : 조직의 성과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 본인의 직무R&R(역할과 책임) 안에서, 해결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에 대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해결대안을 사전에 구상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활동으로
언제 : 한번 수립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해나간다.
‘구성원의 편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조직에는 직무담당자인 개개인들이 성과계획을 수립하고 조직장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도구나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나요? 만약 이에 대한 명시적인 프로세스가 없다면 냉정하게 우리 조직을 돌아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조직이 구성원 개개인을 정해진 방식대로만 일하는 매뉴얼워커로 바라보면서, 높은 수준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를 구성원들에게 주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과계획 프로세스가 조직에 있더라도, ‘구성원의 편지’ 사례처럼 그 체계가 조직 내에서 유연하게 잘 작동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성과계획 프로세스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 존재하는 경우가 더 흔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진짜 중요한 대안은 ‘더 잘하기’가 아니라 ‘장애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인 경우가 많은 것처럼, 성과계획도 그러한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직시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총독부는 코브라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코브라를 잡아오는 수에 비례하여 금전적인 보상을 했습니다. 초기에는 이런 조치들이 성공적인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게도 코브라는 오히려 더 많아졌습니다. 집집마다 우리를 지어 코브라를 키우고 그것을 잡아 보상을 받았던 것이죠. 이 일화에서 유래해 문제해결을 위해 낸 대책이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거나 역효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코브라 효과’라고 하는데요. 계획했던 목표달성 수준에 따라 평가하는 제도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조직들이 개인 레벨의 성과계획을 구성원과 조직장이 합의하고, 합의된 계량화된 목표달성을 위해 구성원과 각 팀이 벌인 활동들을 수치화해, 그 기여도에 따라 평가하며, 차등보상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떤 구성원은 애초부터 달성하기 쉬운 수준의 목표를 수립하고 측정이 용이한 문제만 다루어 결국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뒤로 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다 못한 조직장은 구성원들에게 보다 도전적인 목표를 잡으라고 강요하게 되고, 급기야 이런 줄다리기 끝에 조직장이 목표수준을 결정해 일방적으로 내려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구성원들은 위로부터 정해진 목표수치를 수동적으로 채우게 됩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직무에 대한 몰입도는 떨이지게 되는 것이지요. 성과를 사전에 정의한 후, 이를 기준으로 측정하고 평가하는 경영은 최소기준선을 방어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직원들이 창발적(Emergent)으로 움직임으로써 혁신적이고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길 기대하는 조직에서는, 그 눈높이에 맞는 성과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성과계획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성원이 경영계획과 정렬(align)된 성과를 창출하는데 온전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과계획을 마치 평가의 기준이라고 인식하는 ‘합의한 목표에 대한 달성도 측정’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저는 지난번 ‘성과평가 다시 생각하기’에서 성과를 ‘결과’가 아닌 ‘솔루션’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성과평가는 계획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창출한 ‘성과’(output)와 그로 인해 나타난 이해관계자의 행동변화(outcome) + 결과(impact)의 크기와 각 차원의 인과관계를 토대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성과계획 또한 성과창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과계획에는 어떤 내용과 맥락이 담겨야 할까요? 아래의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정리하면서 ‘목표중심의 성과계획’에서 ‘해결과제 중심의 성과계획’으로 프레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 직무R&R(역할과 책임) 확인 : 직무와 관련된 이해관계자(일의 고객, 협업대상자)가 누구인가? 직무에 포함된 다양한 업무활동(activity)을 통해 이해관계자에게 기대하는 행동변화는 무엇인가?
✅ 해결과제 도출 배경 확인 : 단위조직 경영계획에 대한 해석 + 회고 + 내외부 환경변화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해결과제를 도출해야 하는 영역은 어디인가?
✅ 해결과제 도출 : 왜 이 과제가 중요한지에 대한 의미와 현황(As-Is) + 현재 상황이 발생된 원인은 무엇인가?
✅ 해결대안 : 과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Solution, Trigger)은 무엇인가?(Approach)
✅ 목표 : 과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기대하는 모습은 무엇인가?(To-Be)
이에 더해, 성과창출을 위해 추진할 간략한 일정이나, 성과창출에 방해가 되는 일과 조직장의 지원이 필요한 내용 등에 대해 작성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성과계획이 곧 평가기준이라고 치부해버린다면, 계획한 내용을 그대로 ‘잘’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고 맙니다. 나아가 개인 성과계획 프로세스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을 경우, 경영계획 속에 개인 성과계획에 해당하는 세부적인 내용을 단순히 나열하고, 구성원은 그러한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존재로만 상정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과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직면하는 현실은 이와 다릅니다. 직무담당자는 계속해서 변화되는 내외부의 상황변화 속에서 단위조직 차원의 성과에 기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기존에 본인이 세웠던 가설이 뭔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에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 해결대안을 조정하거나, 여러 대안 중 하나에 더욱 집중하거나,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관점으로 대안을 다시 제시합니다. 시간이 지나 변화가 일어나고 그제야 일련의 맥락 속에서 이 성과가 의미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전에 성과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것을 평가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창출할 수 있는 성과는 예상보다 미흡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일을 하며 만들어 낼 성과는, 우리의 경영수준이 얼마나 깊고 넓으냐에 따라 판가름될 것입니다.
https://blog.clap.company/performance_plan/
*클랩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