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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Dec 24. 2020

천천히 해도 괜찮아

[오늘, 책] 어린이라는 세계_김소영

"빨리 양치 해."

"빨리 옷 입어."

"빨리 나가자."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오면 내가 뱉은 말에 흠칫하게 된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빨리"라는 말을 자꾸 내뱉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한 번 말하면 듣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는 아이들을 탓하는 건 변명에 가깝다. 내가 어떤 일에 몰두해있을 때 누군가가 재촉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유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은 "빨리"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현실의 나와 부딪힌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0)를 읽었다. 아주 어렸던 나는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두 명의 어린이를 키우고 있다. 어른의 세계에 발을 담근 지 오래여서 어린이라는 세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어린이였을 때 나의 마음을 짐작하며, 내가 낳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란 어렵기만 하다. 특히 부정적인 마음 앞에서는 무너지기 일쑤다. 어떤 마음일지 짐작이 되면서도 그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답답해진다. 모든 감정을 잘 품어주고 싶다는 욕심은 그저 욕심에 그치고 만다.


침대 위에 놓인 어린이라는 세계』를 만지작거리며 딸아이가 물었어.


"엄마 이 책 뭐야?"

"응, 어린이의 세계를 잘 이해해보고 싶어서 샀어."


"아, 엄마 열심히 읽어야겠네."


그렇게 딸의 응원를 받으며 나는 이 책을 열심히 읽었다. 애쓰지 않아도 열심으로 읽게 되는 책이었다. 문장마다 어린이가 살고 있고, 그런 어린이를 바라보는 사려 깊은 시선이 담겨 있었다. 작가 김소영은 어린이 책 편집자로 오래 일했고, 지금은 독서 교실의 선생님이다. 전작은 독서 교육에 관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에세이 형식으로 어린이에 대한 그의 마음을 온전히 보여준 책이다. 곁에 있는 어린이, 어린이와 나, 세상 속의 어린이라는 세 개의 챕터로 스물일곱 편의 글이 담겨 있다.


독서 교실에서 어린이들과 겪은 반짝이는 일화들, 작가가 어린이였을 때 마음들, 그리고 세상 속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조심스레 꺼낸 이야기까지.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문장을 써나갔을 작가의 모습이 그려지는 글이었다. 나는 웃다가, 울다가, 숙연해졌다가, 결연해지기도 했다. 책을 펼치는 일은 어른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어린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다녀오면 우리 집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더 따듯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망각의 동물이니까. 책을 곁에 두고 자주 들어가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집 열 살 어린이가 만든 클레이로 장식한 트리




"빨리, 빨리"가 입에 붙어 있는 요즘 나의 마음에 가장 닿았던 에피소드는 길잡이라는 마지막 글이었다. 에 담긴 따듯한 문장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문장들을 백번쯤 읽으면 "천천히 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잘할 수 있는 엄마가 될 것 같았다.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게 오늘, 서평 속에 귀한 문장을 고스란히 옮겨둬야겠다.



사실 "천천히 해"는 내가 아는 가장 '맺힌 데 없는' 선배가 자주 하는 말이다. 퇴근길에 비가 오면 그 선배는 사무실에서 지하철역까지 꼭 후배들을 차로 데려다주었는데, 우리가 차에 탈 때도 내릴 때도 늘 그렇게 말했다. "천천히 해."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덕분에 차를 얻어 타는 게 미안하지 않고, 고마웠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중에서


어린이라는 세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쁨. 금박이 입혀진 제목이 은근하게 빛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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