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 내가 말하고 있잖아_정용준
누구도 좋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소년의 눈에 비친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상
하늘 끝까지 헹가래질하다가 마지막에 받아 주지 않을 거잖아. 웃게 만든 다음 울게 만들 거잖아. 줬다가 뺏을 거잖아. 내일이면 모른 척할 거잖아.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작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말뿐이잖아. 결국 그렇잖아. 그러니까 당하면 안 된다. 그땐 진짜 끝나는 거야. 끝. (21-22쪽)
이모는 친절하고 따뜻하고 무엇보다 나를 예뻐해 줬다. 화가 난 표정과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구별해 냈고 용기가 없는 마음에 용기를 주고 힘이 없는 몸에 힘을 넣어 줬다. 손을 흔들어 인사해 주는 거, 머리 쓰다듬어 주는 거, 손잡아 주고 오늘처럼 돈가스를 사 주는 거, 다 좋다. (46쪽)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으면
밤은 가고 해가 뜬다.
또 하나의 진실.
마음이 어둡고 괴로운 긴긴긴긴 밤
톡톡,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탁, 엔터를 치면
계속 쓸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진실.
꾸며내고 지어내고 바꾼 기억들.
감정, 얼굴, 이름, 일기, 날과 달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단어들.
진짜 기억이 되고 감정이 되고 얼굴이 되고 이름이 되어
살아 움직였어.
가짜가 아니었어. 뻥이 아니었다고.
-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민음사, 2020)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