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겨울, 박준 시인의 새 시집을 읽으며 걷던 중이었어요. 「종암동」이라는 시에서 툭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시를 읽고 운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4연으로 이뤄진짧은 시입니다. 달빛을 받은 조약돌을 보며걸어가듯 시인이 내려놓은 문장들을 따르다가아버지의 마음을 만나 울컥했어요. 혼자 사는 아들 집에 온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 냄새가 반가워서 눈물을 흘립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고 있습니다. 마지막 연은 독자로 하여금 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쉼표의 쓰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시를 읽던 제가, 울고 있는 아버지 곁에 서있습니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 박준,「종암동」(『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 지성사, 2018)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에서 떠오르는 무심한 이미지와 '할아버지 냄새'가 불러왔을 그리움의 감각이 만나면서 애틋해집니다. 특정한 냄새가 우리의 기억을 불러오는 감각을 잘 알고 있습니다. 후각은 뇌의 감정과 기억 중추에 가까운 영역이 담당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후각이 자극되어 불러오는 기억의 생생함을 떠올린다면 '아버지, 하고 울'던 아버지의 마음에 동화될 수밖에요. 우리는 각자 다른 듯 살아가지만, 때때로 비슷한 감정을 나누곤 하니까요.
신형철 평론가는 박준 시인을 '과거가 현재에 도착한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는 더 먼 과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지금 이곳으로 거슬러 올라온다는 것이 박준의 시간관이라고요. 할아버지가떠올라눈물 흘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시적 화자는 어떤생각을 했을까요? 같이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같이 우는 마음으로 쓴 시이기에 독자에게 닿았겠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박준 시인은 놀라워요.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어떤 상황도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거든요. 그 찰나를 세심하게 포착해서 언어로 그려낼 수 있다니. 냉장고 속에 있던 평범한 재료가 정성 어린 집밥이 되고, 어디서도 느끼지 못할 따스함을 주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의 시 안에 있으며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거든요. 표현하기 어려운 애잔함이 깔려 있지만, 많이 슬프지는 않아요. 다독여주는 마음과 손길을 느껴요.
박준 시인의 다른 시들에 관해서는 앞으로 천천히 말해보려고요. 시를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정말 어렵지만, 언젠가 잘 해내고 싶은 일이에요. 시를 읽고 쓰는 날들이 쌓이다 보면 시가 품는 비밀을 문장으로 옮겨낼 수 있을까요. 오늘도 그런 바람으로 끄적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