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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Jun 20. 2022

사랑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윌리엄 트레버 <밀회>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처음에 사랑은 그랬다. 완전무결한 점이거나 절대적인 상태라 믿었다. 미워도 사랑한다는 , 사랑하지만 보내준다는 , 보고는 싶지만 사랑은 아니거나, 절반만 사랑하거나,   사랑하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그런  어떻게 가능하냐고 의심하듯 물었다. 사랑의 순도가  퍼센트가 아니거나  곳에만 머물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며 괴로워했다. ‘라는 존재가 상대의 전부를  채울  없다는 사실에 상심했고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면 상처받았다. 소중히 여기는 관계 속에서   없는 것은 무엇이든 고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투명하게 이해하고 정확히 이름부를  있기를 바랐다. 이름 붙일  없는 관계를 견딜  없었던  어린 마음은 시간이 흐르고 많은 일들을 겪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정해 놓은 사랑의 경계가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이해할  없고 설명할  없음,  안에는 무수한 결이 있고 결마다엔 명명할  없어도 감각할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있음을. 사랑정의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우리 안에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  거란 사실임을. 그때도 그걸 알았더라면 나는 나를  괴롭혔을까. 사랑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고 이별의 모습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동화책의 결말은 서둘러 끝맺어버린 허툰 결말처럼 보인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집 <밀회> 열두 가지 사랑 이야기는 저마다의 의미를 찾아가는 불가해한 삶의 순간들을 품고 있다. 사랑의 찬란함이나 희열의 순간에서 멀어져 , 애잔하고 쓸쓸한 사연들. 어떤 지점을 지나 반대의 끝을 향해 건너가는 여러 모양의 사랑을 통해서, 작가는 지금  순간만이 아니라 사랑이 지나온 시간과 지금을 지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  훗날에까지  시선을 던진다. 트레버의 인물들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감하며 엇갈리고 어긋나는 삶의 변화 앞에 있다. 그럼에도 불확실함을 견디며 생의 움직임을 이어나가는 그들의 자세에는 어딘가 담담함이 흐른다. 사랑인지 아닌지, 사랑의 끝이  찾아오는지 묻지 않고, 그것이 당신의 배신인지, 우리의 실패인지 셈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흘러가는 물살처럼 가만히 내버려 두었는데, 흘려보낸 물살이 안으로도 흘러서 멈추지 않을 파고를 그려나간다. 사랑이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을 그렇게 바라본다는  사랑 이후에 오는 것들을 가만히 기다리는  같았다. 평생 자신을 무시하며 외롭게 했던 남편의 죽음 이후, 불행의 이유가 ‘결혼이   있는  욕심냈 자신의 잘못과 자신의 어리석음이었음을 고백하는 에밀리(「고인 곁에 앉다」). 일평생 사랑하며 꿈꿨던 것이 연인과의 미래가 아닌 미국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피나(「큰 돈」).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오랜 후에야 평생의 비밀, 일생의 번뇌와 화해하게 되는 마음속 아이 (「고독」), 세월이 흘러 과거를 여는 문을 만나고  시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그라일라스 (「그라일라스의 유산」). 선생님의 서글픈 비밀을 친구들과의 교우에 이용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다, 앞으로의 생에서 마주할  많은 비밀과 배신감에 대한 예감으로 우는 로즈(「로즈 울다」). 자신에게도 그릇된 상대를 선택했던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며 알고 싶지 않은 전남편의 이야기를 마주 앉아 들어주는 셰릴(「거리에서」). 불륜을 이어 오다가 자신이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되자 관계에서 물러서는 남자를 말없이 보내주는 여자(「밀회」). 그들 안에서 사랑은 그저 사라지는  없이 저마다의 잔해로 남을 것이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좌절되거나 털어놓을  없는 비밀이 생기면 우리는 고독이라는 세계로 가라앉는다. 고독 속에서 우리가   있는 일은 오직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곳은 나만이 걸어 들어갈  있는 자기만의 내면이기 때문이다. 고독이란 오로지 이해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으로 침잠을 견디며 자기 안에 머무는 일이 아닐까. 부옇게 흐려진 곳을 응시하면서 무언가 투명하게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 그러다 자기 안에 꽁꽁 숨겨져 있던 진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말이다. 침잠의 시간은 저마다 달라서, 때로는 사랑이 끝나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그럴  사랑은 세월이 주는 의미를 덧입고 새롭게 쓰인다. 사랑의 모양과 질감은 달라도 상실과 헤어짐은  일을 겪는 이에겐 언제나 전환적 사건일 수밖에 없고, 어떠한 사랑이라도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언가 남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트레버는 일깨운다. 사랑이 남기는 은밀한 흔적들. 트레버가 빛을 비추는 삶의 조각을 받아  독자는 이것이 우리가 발견해야  삶의 진실이라 생각하게 된다. 사랑의 잔재는 희미해서 놓쳐버리거나 쉽게 지나쳐버릴  있기에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가 더없이 소중하다.

우리는 각자 삶에서 몇 번인가의 사랑과 이별을 하고, 변화가 가져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건넌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강을 건너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이 삶의 새로운 진실, 새롭게 발견하는 나라는 사실은 슬픔보다는 기쁨에 가깝게 여겨진다. 지나간 사랑을 그냥 지나가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이 우리 안에 함께 살아가며 때때로 다시 말을 걸어오고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곤 우리를 어디론가 나아가게 한다. ‘사랑의 잔재’는 무수히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테지만 우리 안의 일부를 이루어서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데려다준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힘은 여기에 있다. 트레버가 그려낸 인물들처럼, 내 좁은 세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억, 그런 존재를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사랑을 아끼려 말고 아껴 사랑하면 좋겠다. 때로 외롭고 고독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하는 거라 믿으며.

오늘 사랑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다. 둘은 그 사랑을 지니고서 몸을 떼고 서로에게서 멀어져 갔다. 미래가 지금 보이는 것만큼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 그 미래 안에 여전히 두 사람의 과묵한 섬세함과 한때 사랑이 만든 그들의 모습이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채로. _ 「밀회」 287쪽

<밀회> 윌리엄 트레버 (한겨레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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