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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나 Feb 09. 2020

여기보다 그 어딘가, 한 달 살기

에어비앤비 광고 문구는 깊이 숨어있던 이방인 욕구를 깨워 일으켰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광고 카피가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은 우리의 여행 로망을 잘도 그려냈다. 사나흘동안 꼭 가봐야 한다는 관광지에 들러 인증샷을 남기고 기념품을 사러 이곳저곳 들르는 여행이 아닌,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슈퍼에 들러 장을 보기도 하고, 동네에 있는 공원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그런 여행 말이다. 그리고 요즘, 이러한 로망을 실현하려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낯섬이 필요하다

너무 익숙하다며 낯섬을 일부러 찾아 떠난 윤종신

 매번은 아니더라도 종종 보는 예능 중 하나가 MBC ‘라디오 스타'이다. MC들의 독설과 이를 맞받아치는 게스트들의 입담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윤종신은 터줏대감이었다. 라디오 스타가 서브 코너로 출발할 때부터 12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프로그램을 지켜냈다. 그렇게 꾸준히 예능을 하면서도 한달에 한번 ‘월간 윤종신'이라는 프로젝트로 신곡을 발표했다. 대충 시간에 맞춰 발표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랬다면 ‘좋니' 같은 명곡이 나올수가 없을테니까. 그렇게 그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자신의 본업을 놓지 않으면서도 예능 MC로 익숙해져가는 듯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나버렸다. ‘이방인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물건, 사소한 감정, 심지어 팥빙수까지 노래로 풀어내던 그가 이 모든 익숙함에서 벗어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를 더이상 라디오스타에서 만날 수 없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나도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윤종신처럼 낯섬을 찾아 타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달쯤 가는 것이 보통이라 ‘한 달 살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언뜻 장기 여행 같지만 살짝 결이 다르다. 유명 관광지에 들러 사진을 찍고 맛집을 찾아다니기 보다는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동네 시장을 들러 장을 보고, 가끔 시내에 나가 저녁을 먹는다. 말 그대로 ‘살기’이다. 



한 달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사실 한 달 살기는 2010년 전후부터 유행이었다. 그때 한참 느리고 여유로운 킨포크 스타일이 붐이었어서 텃밭을 가꾸고, 그렇게 수확한 농산물을 이웃과 나눠 먹는 소박한 삶을 모두가 꿈꾸고 있었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은 결혼하자마자 제주도로 이사간 가수 이효리였다. 그녀는 우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미국 포틀랜드의 라이프 스타일인 킨포크를 제주도에서 실현했다. 마당 넓은 집에서 유기견들과 함께 뒹굴고, 텃밭에서 기른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면서 말이다. 소박해진 이효리의 삶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그녀의 여유로운 삶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제주도로 아예 이민을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도 도시에서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제주도에 잠깐 집을 빌려 ‘한 달 살기’를 떠났다. 이렇게 ‘한 달 살기' 열풍이 시작되었다. 

 한 달 살기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온라인 카페에도 한 달 살이 메뉴가 속속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 달 살기’라는 명칭이 들어간 온라인 카페만도 거진 400개가 넘을 정도이다. 주로 어디서 묵어야하는지, 체류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같은 정보를 공유한다. 정보 공유만이 아니다. 심지어 한 달 살기 열풍은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2~3일 여행오는 단기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이나 콘도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면, 한 달동안 저렴히 묵을 수 있는 렌트하우스나 한달 살기 이후에도 세컨드 하우스로 쓸 수 있는 타운하우스 사업이 부쩍 활기를 띈다. 

휴가를 한달이나 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불가능할 정도도 아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You Only Live Once)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모두의 생각으로 자리잡았으니 말이다. 이러한 흐름에 회사도 안식월, 근속 휴가 등으로 조직원의 행복을 적극 지원 중이다. 한달 살기를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외국에서 현지인처럼 한 달 살기 


“한 달이라는 시간은 참 적당했어요. 처음 한 주는 그 동네와 친해지는 데 보내요. 다른 관광지를 가기보다는 마을 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길을 익히죠. 그러다 보면 친숙해진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좋은 여행지를 추천해줘요. 직접 태워서 데려다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두 주를 지내다 보면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이 찾아와요. 그럼 정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음 여행지로 여정을 계획하죠.”

- 2년 동안 60개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한 백종민, 김은덕 부부 


 다른 나라, 외국인들의 삶은 어딘가 나와는 달라보이고 때로는 더 재미있고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그들의 삶은 마치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처럼 한 순간 한 순간 그저 이국정이고 낭만적인 풍경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부러움에 한 달 살기를 제주도를 넘어 치앙마이, 발리 등 외국에서 해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제주도 한 달 살기처럼 ‘해외 한 달 살기’이다. 실제로 30박 이상을 타지에서 머무르는 사람들이 작년에는 1.8배, 올해는 2배 가량 늘어났다. 

 제주도에서의 한 달 살기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유명 관광지를 돌며 사진을 찍고 맛집을 찾아가는 여행을 뛰어넘어 자연과 현지인들의 생활 풍습을 가까이서 누리고 접해보는 여행을 한다. 그야말로 ‘살아보는 여행'이다. 아이의 영어교육을 위해 한달 살이를 떠나기도 한다. 뉴질랜드, 하와이, 호주, 발리, 몰타, 말레이시아 등 영어권이 한 달 살기의 대상이다. 그동안 고질적인 영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한달 살이를 떠나 영어도 가르치고, 쉼을 얻기도 한다. 

 이렇게 해외로 한달 살기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여행사에서는 아예 ‘한 달 살기 서비스’를 내놓았다. 단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항공권, 숙소, 투어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것처럼 한 달 살기의 체류 준비를 도와주는 토털 케어 프로그램이다. 취향에 맞는 지역을 같이 골라주고, 그렇게 정해진 지역의 숙소를 잡아준다. 여기에 더해 삶에 필요한 렌터카, 마트, 병원, 요가 클래스까지 모두 챙겨준다. 낯선 곳에서 즐기는 ‘새 인생 체험’인 셈이다.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 진짜 ‘나’

 우리는 때때로 낯선 곳을 향한 강한 그리움을 품는다.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말이다. 현재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리에서는 내게 주어진 수많은 역할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타인의 시선과 얽혀있는 관계에서도 결코 해방되지 못한다. 일상에서 탈출하려면 나를 둘러싼 온갖 제약과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달 살기는 나를 내가 속한 환경에서 물리적으로 떼어놓을 수 있게 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떠난다. 멀면 멀수록 좋다. 국내던, 해외던간에 최대한 낯선 곳, 내가 철저히 이방인이 되는 곳이면 된다. 

 그러나 나의 일상을 떠나 여행을 떠나는 곳은 어디인가? 결국 다른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달 살기를 통해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나간다. 지하철은 어떻게 타는지, 주문과 계산은 어떻게 하는지 등 아주 사소한 것들 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나도 모르는 용기와 내가 몰랐던 대범함을 마주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한달 살기에서 만날 수 있는 의미이다.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내며 몰랐던 나를 만나는 것 말이다. 





참고문헌 

뉴스1, [황미현의 방토크]① 윤종신 "50살에 방송 접고 세계 방랑자로" 왜?. 2019. 07. 09

http://news1.kr/articles/?3665435 

여성조선, 엄마표, 해외 한 달 살기 열풍. 2019. 04. 02

https://woman.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nNewsNumb=20190361219 

이현진, 여행의 의미. 2018. 11. 04.

https://brunch.co.kr/@hyunjinheather/12 

서울경제, [토요워치]삶을 바꾸는 720시간...'한 달 살기' 여행 열풍. 2018. 07. 06

https://m.sedaily.com/NewsVIew/1S1Z9X6K1L 

스포츠동아, 내일투어, ‘해외에서 한달살기’ 론칭…체류준비까지 돕는 토털 케어 서비스. 2019. 10. 22

https://sports.donga.com/3/all/20191021/979998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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