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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나 Oct 20. 2020

900원, 그 모자란 100원의 유혹

점포에 물건을 진열하며 가격표를 꽂다 보면 1,000원이나 10,000원보다는 900원 또는 9,000원인 상품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1,000원이면 1,000원이고, 10,000원이면 10,000원이지 고작 100원, 1,000원 할인해놓고 생색이라니. 그러나 900원, 9,000원에는 고객을 유혹하는 장치가 숨겨져 있다.


점주님은 둘 중에 얼마짜리 상품을 사시겠어요?

 여기 A 상품과 B 상품이 있다. 두 상품은 같은 종류에 모양, 품질이 거의 비슷한 상품이다. 다른 점 한 가지는 바로 가격. A 상품은 4,900원, B 상품은 3,000원이다. 당신은 둘 중에 어떤 상품을 사겠는가?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고객 10명을 대상으로 위의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10명 중 7명이 가격이 좀 더 나가는 A 상품을 구매했다. 예상 밖의 결과에 조건을 바꿔 다시 실험해보았다. 이번에는 같은 상품을 3가지 가격 조건으로 진행했다. 4,400원, 4,900원, 5,100원. 동일한 점포에서 판매하면 비교가 될 수 있으니, 각각 다른 점포에서 판매했다. 실험이 끝난 후 판매율을 보니 이번에는 가장 저렴한 4,400원짜리도, 가장 비싼 5,100원짜리도 아닌 5,000원에서 100원 모자란 4,900원짜리가 가장 많이 판매되었다. 아니, 왜 고객들은 100원 모자란 가격의 상품만 찾을까?  


앞자리 숫자로 뇌 속이기

100원 차이이지만 상품 할인폭이 크다고 생각한다 (출처 : EBS)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가격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면 할인 폭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왼쪽 자릿수 효과 Left digit effect’라 부른다. 실제로는 가장 비싼 5,100원짜리와 4,900원짜리는 200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앞자리 숫자가 달라지기 때문에 4,900원짜리 상품의 할인 폭이 크다고 여기며 기꺼이 손을 내민다.

 왼쪽 자릿수 효과는 정확성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우리 뇌의 특징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만 복잡해도 주의를 끝까지 기울이지 못하고 놓친다. 이 때문에 상품 가격도 오른쪽 숫자까지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고, 먼저 읽게 되는 왼쪽 숫자로 판단해버린다. 그 바람에 100원 차이이지만 1,000원보다 왼쪽 숫자가 한 단계 낮은 900원을 훨씬 저렴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숫자의 끝자리를 무시하거나 버려버리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1,990원을 2,000원에 근접한 가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1,000원에서 2,000원 사이 가격 정도로 여긴다. 

 조삼모사 朝三暮四? 원숭이들만 속는 것이 아니다. 원숭이들을 속이던 인간도 속는다.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100원!

 사실 900원으로 끝나는 가격 전략은 누구나 한 번씩은 어디선가 읽어봤을 정도로 알려진 전략이다. 그러나 여전히 CU는 물론, 마트, 소셜커머스, 온라인 쇼핑몰 등 많은 곳에 적용되고, 아직도 고객은 가격의 앞자리를 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실제로 왼쪽 자릿수 효과를 무시했다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CEO도 있다. 미국 리테일계의 스타 중의 스타, 론 존슨 Ron Johnson이다. 애플스토어의 지니어스 바 Genius Bar 등을 시작하고 IT 업계에 오프라인 매장과 고객 서비스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인물이다. 애플 이전에는 미국의 대형 할인 매장 브랜드인 타깃 Target을 시크한 이미지로 포지셔닝해 타아제(‘Tar-zhay’ : Target을 프랑스어로 발음하여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라는 닉네임을 얻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렇게 화려한 성공담을 가진 그가 JC 페니의 CEO로 부임하자 리테일 산업의 미래를 개척할 것이라는 평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JC 페니를 새롭게 바꾸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 로고를 만들고, 인기 있는 상품을 대거 들여놓았다. 그리고 새로운 가격 정책을 펼쳤다. 바로 ‘매일매일 정정당당한 가격 전략 Fair And Square Every Day’이다. 초특가 할인으로 고객을 끌기보다는 일 년 열두 달 ‘정직한’ 가격을 책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가격 끝자리 숫자도 .99 대신 .00으로 모두 바꿨다. 가격표에 이전 가격과 할인율을 보여주는 것도 금지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상시 할인 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00으로 딱 떨어지는 가격에 고객들은 할인 중이라는 인상을 전혀 받지 못했다. 1센트로 스타 CEO의 운명도, 11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기업의 운명도 바뀌어버렸다.

 그러니 단돈 100원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100원이 점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참고문헌 

Kenneth C. Manning and David E. Sprott (2009). Price Endings, Left-Digit Effects, and Choice.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2009.

DBR, 애플스토어 성공 주역 론 존슨, 백화점 사업에서 참패한 이유. 2013. 05.

브런치-퍼니제주. 조삼모사? 원숭이들만 속는게 아냐. 2019. 07. 16.

https://brunch.co.kr/@patros/29



CU 사보 'I LOVE CU 2020년 1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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