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한나 Nov 02. 2020

껌을 껌으로 보지 말라

집 앞 편의점에서 계산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껌이 보인다. 괜히 입이 찝찝한 느낌이 든다. 껌을 집어 계산대에 같이 올렸다. 편의점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껌을 살 계획이 없었지만 모 어떤가. 그야말로 ‘껌값'인데. 그런데 껌, 젤리, 초콜릿은 왜 항상 계산대 앞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일까? 


 


껌들 / 출처 : 멘코이 세상



껌의 숨은 매력

 편의점 핫플레이스인 계산대 앞 진열대에는 항상 껌이 있다. 그리고 고객들은 껌을 살 생각이 없으면서도 다른 물건을 사면서 껌을 함께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그렇게 껌은 전체 과자 판매량의 10%를 차지하는 매출 효자 종목이 되었다. 아니 도대체 껌의 숨은 매력은 무엇인가. 



껌의 매력 1 : 호불호가 적은 스펙

 일단 껌의 사이즈가 매력적이다. 그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직사각형 육면체가 거추장스럽고 무겁지 않다.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 사이즈이다. 들고 다니기도 좋다. 가방에 넣기에도, 주머니에 넣기에도, 심지어 손에 들고 다녀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어떤 물건과 함께여도 상관없다. 음료수와 함께 던, 도시락과 함께 던, 심지어 선물 세트와 함께 던 껌은 묻어갈 뿐이다. 

 점주 입장에서도 껌의 사이즈는 매력적이다. 매장의 자투리 공간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계산대 ‘밑’이다. 계산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껌은 그 아래에 묵묵히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러다가 계산하기 직전 그 위상을 드러낸다. 심지어 껌 매출 80% 이상이 계산대 앞에서 일어날 정도이니 말 다 했지. 이러니 어느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껌의 매력 2 : 이리저리 재보지 않아도 된다

 껌이랑 스마트폰 살 때를 비교해보자. 스마트폰은 진짜 당장 매장에 들어가서 사지 않는 이상 기본 일주일은 고민하고 산다. 스마트폰을 바꿀지 말지부터 시작해서, 어느 브랜드로 할지, 이 모델로 바꿀지, 저 모델로 바꿀지, 어디 가서 살지까지. 심지어 살 때도 여기서 샀다가 호구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 사야 한다. 어떨 때는 고민하는 것에 너무 지쳐 호구가 되든 말든 그냥 포기하고 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스마트폰 하나 바꿀 때는 이렇게나 까다롭다. 

 하지만 껌은 고민거리가 없다.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무색할 정도이다. 심지어 껌을 살 때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어떤 껌을 사던 차이도 별로 없고, 잘못 사도 돈이 아깝거나, 오랜 시간 고통받는다든가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여나 잘못 샀다면 다른 껌으로 다시 사면 된다. 심지어 껌은 충동적으로 구매할 때가 더 많을 정도이다. 충동구매 했다고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껌값’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살 때랑 비교하면 너무 쉬운 것 아닌가. 그러니 이 고민거리 많은 세상 속, 이렇게라도 고민거리를 줄여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껌의 매력 3 : 마지막까지 눈에 아른거린다

 사실 껌을 목적으로 편의점에 들어가는 경우가 별로 많지는 않다. 그러나 껌의 매력은 다른 물건을 계산하면서 ‘저것도 하나 살까'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하필이면 계산대 앞에 있어서, 앞에 사람 계산 끝나기를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는 찰나에 꼭 껌이 눈에 밟힌다.

 사실 이건 편의점의 계략이다. 마지막까지 고객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껌이다. 손에 꼭 쥐어지는 적당한 크기,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 어떤 것을 선택해도 괜찮다는 편안함까지. 이러한 매력 포인트가 계산대 앞에선 고객의 마지막 선택을 유혹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꼭 계산대 밑에다 진열해둔다. 고객의 마지막까지 사로잡도록. 



껌의 매력은 계속된다

 그러나 껌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젤리'이다. 계산대 앞 진열대를 젤리가 독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 간식으로 주로 판매되던 젤리가 최근에는 어른들도 즐기는 간식으로 인식이 바뀌었고, 껌보다 다양한 맛과 모양, 식감에 껌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꼴찌 간직이었던 젤리가 감히 말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껌이 아니지. 1월 1일만 되면 금연 목표를 되새기는 사람들이 찾는 것도 껌이고, 다이어트로 심심한 입을 달래주는 것도 껌이다. 열량 높은 젤리가 꿰찰 수 있는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껌을 껌으로 보지 말라. 여전히 껌은 편의점 핫플레이스인 계산대 밑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CU 사보 'I LOVE CU 2020년 3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만 할인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