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께서 뭐라고 하셨는가 하면!
17일 일요일
강도 높은 수련으로 몸이 여기저기가 쑤셔서 일요일인 오늘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오전 내 여유로이 보내다가 깍두기와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한국식당 드림카페로 갔다. 깍두기는 한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젊은 인도 삼촌들 사이에 이미 인기스타였다. 일전에 만난 한국인 이모가 준 만다라 컬러링 종이를 들고가서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색칠공부를 하는데 일하는 틈틈이 와서 같이 놀아주는 막둥이 삼촌. 쳐다보면 자꾸만 춤을 춰주는 깍두기의 웃기는 삼촌 ㅎㅎㅎ
가게 1층에서 지난번 한국식당 생일잔치에서 보고 얼굴이 기억나는 여자분을 만났다. 그녀도 깍두기 또래의 아이와 함께였고 아빠는 인도 사람이었어서 더 잘 기억이 났다. 생일잔칫날에는 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이들 같이 못 놀아서 아쉽네요 하며 인사만 나눴었는데, 그녀가 오늘은 혼자 식당에 있었다. 알고 보니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어디에 가서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2층 자리에 나란히 앉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와 동갑내기인 SH씨. 인도인 남편과 깍두기보다 한 살 어린 딸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며 우연히 깍두기가 다니는 발도르프 유치원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녀 역시 발도르프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딸아이를 스스로 공부해가며 발도르프식으로 키우고 있다고 해서 놀라웠다.
화이트샌드강가에서 아이들 같이 놀리면 좋겠다고 의기투합해서 늦은 오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약속 장소를 경찰서 근처 어디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어찌어찌 조금 헤매다가 만났고 깍두기와 깍두기보다 한 살 어린 동생(실명 대신 여기서는 짜이라고 불러보겠다) 짜이는 모래사장에 철퍼덕 앉아 놀이하기 시작했다.
SH씨와는 통하는게 많았다. 동갑내기,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도 요가를 하는 사람으로서도 대화의 주제는 다양했다. 무엇보다 편안했다. 어찌 보면 나름 초면인데 그녀의 남다르게 편안한 에너지, 따뜻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나로서도 인도까지와서 만난 육아 동지가 더없이 반갑기도 했다.
SH씨와 나는 한참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깍두기와 짜이가 티격태격하면 중재에 나섰다가를 반복했다. 지극히 평범한 두 아줌마의 일상이자 인도 갠지스에서의 육아라는 측면에서 볼 때 특별하게 기억될 하루이기도 했다.
SH씨는 힌디어에 능통해서 허락 없이 우리 사진을 찍는 인도 청년들을 단칼에 제지하기도 했고 바가지를 씌우려는 꽃 파는 어린 소년에게 나 대신 흥정을 해주기도 했다. 현지인들과 스스럼없이 녹아드는 그녀의 모습에서 9년이란 시간에 쌓인 내공이 느껴졌다.
해가 저물고 짜이의 아빠가 강가로 데리러 오셨다. 남편이 독일로 출장을 간다며 SH씨는 나와 깍두기를 그녀의 집으로 초대했다. 토요일에 짜이네 집으로 가기로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사실 이 곳 리시케시에 깍두기를 데리고 오면서 막판에는 그냥 편하게 발리 우붓으로 갈까 태국 치앙마이로 갈까 고민도 했었다. 아무래도 인도보다야 백번 편안하지 않겠는가 싶었고 생각하면 막막해서 오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러다가 가만히 있으면 마음 한편에 올라오는 생각.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했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이곳에서 만나지는 인연들이 나에게 그 답을 해주고 있다.
삶에 강하게 맞서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돌아가신 니체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그러니까
삶에 강하게 맞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든 무엇이든 기쁘게 맞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