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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마사띠 Sep 04. 2022

#2. 뒷모습

옳고 그름의 언덕 너머에서 당신과 만나리라

나는 지금 더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안에 앉아 있다. 따뜻하고 달콤쌉싸름한 커피한잔을 마시며 한 남자를 떠올리고 있다. 아니 그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짧은 머리, 성실한 어깨와 검은 피부로 뒤덮인 단단한 두 다리. 누군가를 위하고 있음이 분명한 뒷모습. 그대로 멀어져 점이 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향해 뒤돌아선 그는 드넓은 바다같은, 오랜 고목같은 미소로 두 팔 벌린다.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순간에는 시공간에 녹아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2019년 2월 3일. 그게 그를 만나는 생애 마지막 날인줄 알았더라면 나는 무엇을 더 하고 싶었을까? 아니,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20년만에 만난 그의 두 눈을 마주한 순간에 덜 어색해하고 더 환히 웃었을 것이다. 나의 손을 당연한듯 잡았던 그의 손을 통해 전해오는 온기를 더 깊이 음미했을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더 귀기울여 듣고 덜 판단하고 함께 웃어버렸을 것이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며 세상 다 가진 자의 얼굴로 정지용의 ‘향수’를 부르던 그. 그를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허밍으로라도 함께 노래했을 것이다.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포옹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개찰구를 통과한 그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었던 나를 기억한다. 나는 그게 우리의 마지막인줄 몰랐지만 겸연쩍음에 먼저 뒤돌아서지 않고 온전히 그를 배웅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그토록 오래토록 바라보고 있노라면, 결국 가슴 밑바닥에 미움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그 때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얼굴과 표정은 어떻게든 꾸며낼 수 있지만 뒷모습은 숨길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뒷모습은 더 진실하다. 세상 밖으로 꺼내지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서른여덟의 딸과 예순 여덟의 아버지는 언젠가가 될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두 해가 지난 겨울의 어느 날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나에게 카톡 하나가 들어왔다. 아버지의 부음이었다. 세상의 시간 궤도에서 잠시 나만 이탈된 듯한 순간이었다. 2년 전 겨울, 도쿄의 한 지하철 역에서 그를 미리 배웅했다는 사실이 나를 되려 안도케 했다. 꽤 괜찮은 마지막 인사였다. 그의 뒷모습이 내게 유산으로 남았다. 사랑하는 일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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