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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부 이야기(헤밍웨이와 베드로)

by 통나무집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잠시 쉴 틈이 생기면 보통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 처음에는 생각이 정지되면서 과열된 마음이 식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극적인 영상이 많다 보니 영상을 보다 보면 어느새 욕망과 증오, 공포에 휘말리면서 더 피로해진다. 한 편의 영상을 클릭하면 제공되는 다음 영상이 궁금해서 다른 영상들을 계속 클릭하고 있었고 유튜브 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오기가 어려웠다.

영상을 보는 대신 책을 읽으면 짜릿한 즐거움은 덜했다. 문장을 따라가며 생각과 상상을 해야 하는 과정이 피곤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이야기에 빠져들고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다 보면 어느덧 현실을 잊게 되었다. 짤막한 글을 읽어도 의미 있는 쉼을 누렸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후련했다. 불현듯 후회와 불안으로 마음이 심란해질 때 이전에 읽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요즘 자주 회상하는 이야기 두 편이 있다. 모두 어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이야기, 그리고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어부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팔십사일 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남들은 노인이 운이 다했다고 하지만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바다로 나선다. 다른 어부들은 가지 않는 먼바다로 나간 노인은 마침내 거대하고 아름다운 청새치 한 마리와 맞닥뜨린다. 하지만 그 청새치는 노인보다 힘이 셌다. 노인은 며칠에 걸쳐 물고기와 고독한 사투를 벌인다. 노인은 평생 낚시를 하며 축적한 경험과 불굴의 의지로 청새치를 잡는 데 겨우 성공했다. 청새치가 노인의 배보다 더 컸기에 뱃전에 청새치를 묶고 귀항을 하지만 도중에 청새치의 피냄새를 맡은 상어 떼의 공격을 받는다. 필사적으로 상어 떼와 싸우지만 결국 청새치는 뼈만 남게 되고 노인은 녹초가 된 채 소년이 기다리는 항구로 돌아온다.

누가복음에서 어부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 다음 날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이 다가오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를 빌려 타고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친다. 말씀을 마치신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하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심히 많은 고기가 잡힌다. 두 배에 가득 차게 물고기가 잡히자 베드로는 놀라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린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앞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따르라고 명하신다.

<노인과 바다>는 냉혹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어부 산티아고는 오랫동안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먼바다로 나가 결국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다. 청새치가 거대하고 힘이 세서 노인의 몸으로 혼자 낚아 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투를 벌여 결국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한다. 귀항하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청새치의 대부분이 뜯기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상어 떼와 싸운다. 그렇게 <노인과 바다>는 가혹한 세상에 대항하여 파멸당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인간을 보여준다.

누가복음은 어부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 삶의 주도권이 인간에게서 신으로 양도되는 인생을 보여준다. 의지와 노력으로 거대한 물고기를 낚은 산티아고와 달리 베드로는 예수님의 은혜로 많은 물고기를 낚는다. 이 표적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베드로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삶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사도의 삶을 살아간다.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허무하다. 얼마나 고기를 많이 잡았는지, 얼마나 큰 고기를 잡았는지, 그 고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지켰는지, 그 결과로 돈과 명예와 같은 대가를 얼마나 얻었는지에 따라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하지만 결국 고기는 모두 물어 뜯겨 사라진다. 고기로 상징되는 성취, 성공, 수확 등은 시간이 흐르면 결국 스러질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허무하다. 가지지 못할까 안달복달하고, 가지고 나서는 지키지 못할까 초조하고, 더 큰 것을 가지고 싶어 또 갈망하고.... 그저 소유의 양으로만 의미가 결정되는 삶은 피곤하다.

누가복음에서 베드로는 많은 고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을 만난 뒤 베드로는 소유가 아니라 사명을 추구했다. 결국 썩어 없어질 소유가 아니라 지금 실천해야 할 사랑에 집중하는 삶.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람을 섬기는 삶, 그 삶이 진짜 의미 있는 삶이라는 걸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해 배운다. 인간적 성취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며, 그 관계 안에서 맡겨진 역할을 감당하는 삶이 더 깊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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