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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이야기

요한복음 21장을 단편 소설로 창작

by 통나무집


사내들은 말없이 그물을 수면 위로 던진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 깊숙이 스며든다. 하얀 달빛에 비친 그들의 얼굴은 가면을 쓴 듯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물결에 흔들리는 어선에 우두커니 앉아 호수에 가라앉는 그물을 사내들은 멍하니 바라본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어획물에 대한 기대감도 밤샘 노동으로 인한 서러움도 비치지 않는다. 한 식경이 지나 그물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손길에도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다. 사내들은 밤새 바람과 물에 젖어 무거워진 몸을 둔중하게 움직이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물 줄을 조금씩 끌어올린다. 애써 거둔 그물이 텅 비어있었지만 그럴 때 흔히 어부들이 내뱉는 욕설이나 한탄의 소리도 없다. 사내들은 묵묵히 그물을 정리하여 다시 호수로 던진다. 사내들의 투망질은 생계를 위해 고된 일을 감당하는 노동자의 노동이 아니라, 오랫동안 시달린 자학과 절망을 지워보려 스스로를 가혹한 노동 속으로 던져버리는 죄수의 몸부림처럼 보였다. 넓게 퍼지며 서서히 가라앉는 그물을 바라보며 사내들은 완강한 침묵 속에서 저마다 상념에 빠져든다. 사내들의 사유는 거센 물결을 거스르 듯 필사적으로 자맥질하지만 결국 그들이 도망치려 애쓰던 기억으로 휩쓸려간다. 그들의 스승이 체포되었던 밤에 대한 기억으로. 짙은 어둠 속에 저벅저벅 울리는 발소리. 사방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횃불들. 차갑게 번득이는 칼날과 쇠사슬. 물 샐 틈 없이 포위한 병사들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배신자. 그날 밤 스승은 도축당할 양처럼 질질 끌려가 갈기갈기 찢겨 살해당했다. 한 때 메시아로 불렸던 남자. 말 한마디로 병든 자를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며 폭풍우를 잠재우고 죽은 자마저 살려낸 사람. 짙은 무력감과 절망으로 가득한 가슴에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었던 설교자였고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허위에 맞서 싸운 투사였으며 어떤 권위자나 권력가도 무시하지 못할 위엄과 신비로 가득했던 스승. 사내들은 그분을 스승이자 아버지, 주님으로 모셨으며 삼 년간 함께 먹고 자며 혈육보다 진한 끈끈함으로 생사고락을 함께 했었다. 그런 스승님이 무력하게 묶여 끌려갔을 때 사내들은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병사의 주먹이 스승의 얼굴을 내리쳤을 때 도마는 풀숲에 바싹 엎드려 벌벌 떨고 있었다. 군사들의 희롱과 모욕 속에서 스승이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가는 동안 세베대의 아들들은 나뭇가지와 수풀을 헤치며 맹렬하게 도망치고 있었다. 베드로만이 칼을 들어 병사들을 막으려 했으나 스승의 불가해한 제지로 저항을 포기한 뒤, 군병들의 뒤를 따라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스승이 심문을 받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늙은 이리의 울음처럼 흉포하게 물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밤새 희롱과 심문에 시달려 처참한 몰골이었지만 스승의 언어는 고요했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이어서 스승은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스승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한 문장의 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그 한 문장 때문에 스승은 야훼를 모독한 이단이자 백성들을 미혹하여 제국을 위협하는 사상범이 되어 사형틀에 매달려 죽었다.


하필 왜 그때 스승님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인정했을까. 병든 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마저 살려내는 이적을 행하셨을 때, 그런 스승님이 진정 그리스도이시라고 수많은 군중이 떠들고 있었을 때, 자신이 메시아라고 선언만 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추종할 이들이 벌떼처럼 일어날 수 있던 때에, 스승님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비밀로 하라는 함구령을 우리들에게 내리셨다. 그런데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위험한 순간에, 자신이 메시아임을 인정하면 지독한 수치와 고통 속으로 내동댕이쳐질 심문의 시간에, 교활한 종교 지도자의 음모에 휘말려 비참하게 살해당할 위기의 순간에, 왜 스승님은 자신이 구세주이심을 스스로 밝히셨을까. 수없이 되뇌었던 의문 속으로 베드로는 다시 빠져든다. 아니, 필사적으로 그 의문을 붙든다. 그 의문 속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그가 떨쳐내고 잊어버리려 애썼던 목소리들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 군집한 수많은 사람들. 그 무리들 틈에 몰래 끼어든 베드로가 스승의 수난을 지켜보던 순간. 갑자기 그에게도 날카롭게 번득이던 의혹의 목소리들.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사방을 욱여싸며 밀어닥치는 공포에 질려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왔던 목소리.


나는 그를 모르오!


모른단 말이오!


이런 빌어먹을,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니까!


그 순간 들리던 닭의 울음소리. 뇌리 속에서 쟁쟁 울리던 스승님의 목소리.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 목소리들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베드로를 에워쌌다.... 너도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나는 그를 모른단 말이오!... 비겁한 놈... 배신자.... 목소리들의 예리한 칼날들은 베드로의 내면 깊숙이 서걱서걱 베어 들어갔다. 깊게 잘린 상처에서 검붉은 죄책감이 울컥 쏟아졌다. 죄책감은 영혼 밑바닥까지 스며들었고, 점차 차갑게 응어리지면서 섬뜩한 한기를 내뿜었다. 그 독한 냉기 속에서 베드로의 심령과 육신은 맹렬하게 얼어붙고 있었는데....


혹독한 냉기 사이로 문득 희미하나 선명한 온기가 흘러왔다. 그 따스함에 이끌려 베드로의 시선이 향한 곳에, 스승의 얼굴이 있었다. 찢어지고 검붉게 멍이 들고 잔뜩 부어오른 얼굴, 피와 땀으로 덕지덕지 눌어붙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스승의 눈동자는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배신한 제자를 향한 원망도, 잔혹하게 살해당할 죽음 앞에서의 공포도, 쏟아지는 희롱과 폭력으로 인한 절망도 없었다. 다만 혹독한 겨울의 끝자락에 스며드는 봄바람처럼 미약하지만 분명한 온기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디베랴 호수 동편으로 빛이 희미하게 피어난다. 짙은 어둠이 흩어지면서 밤새 아득히 잠겨있던 풍경이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안개처럼 서서히 일어난다. 사내들은 다시 그물을 끌어올린다. 그물은 텅 비어 있었다. 베드로는 피로로 무거워진 몸을 겨우 움직이며 얽힌 그물을 풀어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물에 걸린 이물질들을 걷어내고 더러워진 부분을 물로 씻어내면서 베드로는 처음 스승을 만났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날도 밤을 새워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었지. 춥고 허기진 몸을 겨우 추슬러 그물을 씻고 있었는데 스승님이 나타났어. 스승님의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지. 배에 오르시는 그분의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에 압도되어 다시 배를 띄워달라는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어.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스승님은 뭍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했어. 스승님의 언어는 쉽고 명료했으며 거침이 없었어. 스승님께서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공의로운 삶에 대해 설파하실 때 내 가슴은 거센 불처럼 타올랐고, 그분께서 이웃과 약자에 대해 품어야 하는 사랑을 강조하실 때는 그 말씀이 마치 메마른 날의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내 가슴을 적셨어. 초라한 내 어선 위에서 스승님의 입을 통해 펼쳐지는, 하늘나라 법도의 장엄함에 나는 전율했지. 말씀을 마치시고 스승님은 내게 명하셨어.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순간 베드로의 상념을 헤치고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베드로의 손이 멈추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낮고 고요하지만, 그 목소리에 깃든 위엄과 신성으로 듣는 이의 마음 가득히 울려 퍼지는 목소리.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베드로는 겨우 대답했다.


"없나이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다시 그물이 활짝 펼쳐져 수면 아래로 빠져들어간다. 넓게 뻗어나간 그물 속으로 물고기들이 쇄도한다. 살아있는 생명들이 가득 모여 일제히 꿈틀거리며 몸부림치는 힘이 그물 줄을 타고 베드로의 손에까지 강하게 흘러왔다. 요동치는 줄을 부여잡고 베드로는 사내들과 함께 힘껏 그물을 끌어올렸다. 생선들로 가득 차올라 거대하게 부풀어 꿈틀대는 그물. 배 밑창에 내려놓는 그물에서 쏟아져 나오며 퍼덕이는 물고기들. 물고기들이 무더기를 이루어 파닥파닥 약동하며 만드는 은빛 파도에 찬란히 부서지는 아침 햇살. 스승님을 처음 만났을 때 목격했던 풍경이 다시 베드로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정말 스승님이신가. 스승님이 내게 다시 찾아오신 것인가.


한 사내가 외쳤다.


"주님이시다!"


순간 베드로는 물 위로 몸을 던진다. 급하게 물 위로 뛰어들면서도 겉옷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스승님이 무력해졌던 순간에 비열한 말을 쏟아내었던 배신자. 그런 자신을 다시 찾아오신 스승님 앞에 맨 몸으로 서는 무례를 범할 수 없기에.


베드로는 차가운 물살을 헤치며 육지를 향해 조급하게 나아갔다. 스승을 보고 싶은 마음이 육신보다 먼저 저 앞에서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따라 허덕이면서 헤엄치는 베드로를 목소리들이 맹렬하게 추격해 온다.


....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나는 그를 모르오! 모른단 말이오! 닭 울기 전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목소리들은 차가운 냉기를 뿜으며 베드로의 온몸을 휘감아 호수 밑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이 파렴치한 배신자야. 이제 와서 스승을 볼 면목이 있느냐. 목소리들이 베드로의 팔다리를 붙잡아 짓누른다. 목소리들의 완강한 손길을 뿌리치려 발버둥 치던 베드로의 몸놀림이 점차 느려졌다. 서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베드로의 눈에 저 멀리 육지에서 조그맣게 타오르는 불빛이 흐릿하게 비쳤다. 작지만 영롱하게 빛나는 빛. 스승님의 눈에서도 보았던 그 빛. 그 빛에서 고요히 목소리가 들려온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베드로의 손아귀에 따스한 손길이 느껴진다. 광풍이 휘몰아치던 바다에 잠겨갈 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절박하게 외칠 때, 즉시 다가왔던 손길. 그 손길에 가득했던 따스함. 그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면서, 팔다리를 옭아매고 사정없이 끌어당기던 목소리의 차가운 손길들이 하나 둘 떠나간다. 베드로는 저 멀리 보이는 불빛에 시선을 고정하고 기진한 몸을 이끌어 겨우 앞으로 나아갔다. 육지로 다가갈수록 불빛은 점점 선명해졌다. 불빛은 검게 타오르는 숯 위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다 타다 타닥 춤을 추고 있었다. 숯에서 벌겋게 타오르는 불빛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생선과 떡의 향기가 온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숯불 앞에 둘러앉은 사내들의 그림자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스승이 건네주는 떡과 생선을 먹으며 베드로는 망연히 숯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들, 해야만 하는 말들, 했어야 했던 말들이 입 근처에서 출렁이며 넘실거렸지만 차마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주여.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스승님. 저를 용서하소서. 스승님께서 붙잡히시던 날 비겁하게 도망쳤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베드로의 내면에 출렁이며 소용돌이치는 말들 위로 차가운 목소리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비겁한 자여.. 너는 스승 앞에 나타나서는 안되었다... 차라리 유다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면 좋았겠구나... 무슨 면목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가... 비열한 배신자... 어서 일어나라. 여기서.. 멀리 떠나가라... 목소리들은 베드로의 마음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목소리들 사이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들이 떠올랐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 문 앞에서 보았던 여종의 얼굴...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나는 아니오! 나는 그를 모르오..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 너머로 이글거리는 의혹으로 가득한 얼굴들...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아니오! 나는 정말 아니오!.. 날카롭게 울리는 비명 사이로 귀가 잘려나가 피가 철철 흐르는 얼굴이 두둥실 떠올랐다...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아니야! 아니란 말이오! 나는 그를 모른단 말이오!!.... 휘몰아치는 목소리들을 타고 얼굴들이 사방에서 흘러들어와 베드로를 에워싸며 빙글빙글 회전했다. 시야를 가득 채운 얼굴들에서 목소리들이 끓어올라 바글거리며 쏟아졌다.... 비열한 자여... 비겁한 배신자... 떠나라... 사라져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조용하고 평온한 목소리. 나지막하게 울리면서 온 마음에 메아리치는 음성. 그렇게 스승의 목소리는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이 짙은 어둠을 서서히 그러나 어김없이 밀어내 듯, 사방에서 우글거리던 목소리들을 잠재웠다.


"네가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시야를 가득 채웠던 얼굴들 너머로 스승의 얼굴이 보였다. 스승의 얼굴에는 아무런 원망도, 비난도, 질책도 비치지 않았다. 다만,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를 포근히 뒤덮으며 온갖 새명들을 소생시키는 봄바람처럼 모든 허물과 죄악을 녹여낼 듯한 따스함으로 가득했다. 그 온기에 힘입어 베드로는 겨우 말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거칠게 풍랑이 이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누군가 내미는 손을 꽉 부여잡는 이의 절박함으로 베드로는 말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간절히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면서 벌겋게 응어리지고 부어올랐던 내면에 작은 균열을 내었다. 그 조그만 틈 사이로 오랫동안 화농 지었던 감정들이 서서히 풀어져 흘러나왔다. 스승이 환히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을 타고 흘러오는 따스한 온기에 베드로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어서 스승은 명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멈칫했다. 스승님은 나를 다시 사도로 임명하시는구나. 베드로는 스승의 명령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스승을 배신하기 이전이었다면, 스승의 수제자라고 자부하던 그 시절이었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을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맡겨만 달라고 당당하게 아뢰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베드로는 그저 도망치고만 싶었다. 죄책감과 모멸감으로 허물어진 내면은 어떤 책무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약해졌다. 두려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스스로의 과오도 감당하기 어려운 자가 어찌 다른 이를 인도하는 목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스승님은 왜 나를 다시 고달픈 사명자의 길로 몰아가시는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스승의 음성은 부드러웠으나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단호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에 대한 사랑으로 내가 명한 길을 걸어가라. 베드로는 스승이 명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면서도 스승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차마 부인할 수 없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스승은 다시 명하였다.


"내 양을 치라."


스승의 명령은 외줄기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길은 비좁고 거칠었으며 수많은 아픔들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길이 뻗어 있는 저 너머로는 환한 빛으로 가득한 지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길의 반대편에는 널찍하고 편안하지만 점차 어둠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베드로는 길의 양편을 바라보며 고뇌했다. 새로운 고통을 잇달아 맞이하며 빛으로 나아갈 것인가. 짙은 어둠에 서서히 잠식되겠지만 고통에는 점차 둔감해지는 공간에 머무를 것인가. 어느 방향으로도 발을 디딜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베드로는 제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점점 뻗어오는 어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스승의 말에 베드로는 전율했다. 스승님은 결코 물러나지 않으시는구나. 끝이 보이지 않게 멀리 펼쳐졌던 그물이 점차 포위망을 좁혀오다 끝내 목표물을 휘어 감고 물 위로 끌어내 듯, 스승의 사랑은 기어코 베드로를 어둠 밖으로 견인했다. 스승이 베드로에게 펼쳐 보였던 사랑은 그가 명하는 길을 향해 베드로를 불가항력적으로 휩쓸어가고 있었다. 그 광대한 힘에 압도당하여 베드로는 겨우 대답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 말을 마치면서 베드로는 절감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구나. 가야 한다. 가자. 스승이 명령하는 삶 속으로. 그는 오랜 여행 끝에 잠시 거처에 머물렀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따라 다시 머나먼 여정에 임하는 나그네처럼 먹먹한 피로감과 함께 기이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스승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 양을 먹이라."


스승은 보았다. 베드로가 걸어가야 할 길에서 그가 맞이하게 될 고통과 기쁨을. 그 길의 끝에서 베드로가 선택할 죽음의 영광을.

스승은 자신의 말이 베드로가 다시 수렁에 빠질 때 그를 건져낼 구명줄이 되어 주길 바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스승은 베드로를 처음 만났던 호숫가를 떠올렸다. 뭍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베드로의 배 위에서 선포했던 메시지. 베드로에게 내렸던 명령.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 펄떡이는 물고기들로 가득 찬 그물. 놀라서 납작 엎드린 베드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때 베드로를 향했던 신뢰와 사랑으로 스승은 다시 베드로에게 명했다.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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