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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l me Nov 09. 2024

뜨개하는 마음 (3)

뜨개를 시작하며 알게 된 사실들

1. 나는 뜨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뜨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뜨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뜨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뜨개를 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뜨개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건 비단 뜨개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테지. 어떤 일들은 시도해 보기 전까지 그게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없다.   

   

뜨개에 관심이 생기면서 유튜브에 뜨개 관련 영상을 찾다 보면 다양한 나이의 뜨개인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특히 어린 나이에 뜨개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이른 시기에 어떤 일을 시도해 보고 좋아하게 되고 그 세계에 깊어져 가는 사람들.


진짜 나를 찾아가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것보다 어떤 일을 하는 게 도움이 되고 생산적인지만 생각하며 살았던 생활들. 그 시간이 싫었던 건 아니다. 일을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지 못한 건, 결국 나니까. 일과 나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내가 하는 일도, 나도 좋아하지 못했다.   

   

뜨개를 하다 보면 뜨개를 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좋아하는 게 있었다면 더 풍부했을 그 시간. 뜨개를 하지 않았다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을 나의 시간이 털모자가 되고, 조끼가 되고, 카디건이 되고, 가방이 된다니, 근사하다. 뜨개를 하지 않았던 지난날, 나는 어떻게 버텼던 걸까. 한번 시작한 뜨개는 밤낮없이 계속되었다.       


    

2. 다들 무언가에 몰두해 있다.     


  내가 거주하던 곳은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은 곳이라서 털모자를 만들어도 쓸 기회가 없었지만, 쓰지 못하는 모자를 여러 개 만들고 혼자 기뻐했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를 뜨기 시작했다. 도안을 보는 법도, 게이지 내는 법도 몰랐지만, 유튜브 선생님들을 따라 하며 쉼 없이 뜨개를 했고 실을 사러 다녔다. 유튜브에 뜨개 관련 영상들이 제법 많았고, 이미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취미를 위한 모든 것이 있는 큰 상점 브랜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ichaels와 Hobby Lobby     


뜨개뿐만 아니라, 가죽 공예, 그림, 취미에 관한 모든 것들이 있는 공간.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하며 지내는구나. 많은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자신을 다독이며 살고 있구나. 

다양한 질감과 다채로운 색깔의 털실이 전시된 뜨개 코너도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뤄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뜨개를 하지 않았다면 와보지 않았을 장소. 한국에 바늘 이야기라는 공간을 알게 되고 한국에 돌아가면 가보고 싶은 곳도 생겼다.     


대바늘보다 코바늘은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아크릴, 울, 레이온, 다양한 실 브랜드와 실들의 질감, 바늘 브랜드, 좋아하는 일을 향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

늦게 입문한 나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 를 연발하며 젖어들었다. 


         

3.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뜨개를 하다 보면 코를 빠트리거나, 무늬를 빠뜨리거나, 잘못 뜨는 경우들이 생긴다. 어떤 실수들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실수.      


실수를 정정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고 이 정도는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유혹이 생긴다. 실수를 그대로 두고 완성해도 결과물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그 결과물을 볼 때마다 내가 숨겨놓은 실수를 항상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풀고 다시 뜬다.     


나만 아는 실수를 하더라도 실수를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 뜨개를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풀고 다시 시작하고, 또 풀고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기어코 하나를 완성하는 나를 보며, 나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뜨개를 하며 그렇게 나를 긍정하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고 기분이 꽤 좋았다.

이런 발견,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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