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쓸모
뜨개를 하면서 많이 듣게 되는 말들이 있다.
"내 것도 만들어 줘."
"그냥 사 입어."
"몸에 안 좋아. 그만해."
내가 좋아서 하는 뜨개인데,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의외의 부정적인 반응을 만날 때 조금 당황스럽다. 뜨개 공방을 하시는 어떤 분은 일하다 힘들다고 토로하면 주변에서 너무 쉽게 “그만둬.”라는 말을 듣고 더 힘이 빠진다고 했다. 위로하거나 격려가 아닌 때려치우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뜨개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이 엿보여 슬프다고.
왜 다른 일은 힘을 내라고 하면서 뜨개는 쉽게 그만둬도 되는 일이 된 걸까.
스웨터를 하나 완성하는데 30만여 코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베스트 하나 만드는데 밤 낮 틈틈이 해서 일주일이 걸렸다. 어떤 작품을 뜨느냐에 따라서 일주일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사 입어. 왜 뜨는 거야.”라고 말하고, 나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으니, 그런 반응이 섭섭하지는 않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의 가성비를 따지는 반응에 힘이 빠질 뿐이다. 돈도 안 되는 거 몸이나 축나지 이제 그만해. 전기로 불을 빨리 켤 수 있는데, 아직도 촛불을 켜고 사는 사람처럼 본다.
내가 뜬 뜨개옷이나 소품들은 핸드메이드인 만큼, 거기다 나는 초보자니까, 조잡함을 감출 수 없다.
사용 빈도도 생각보다 낮고, 팔 수도 없지만,
나는 계속 뭔가를 뜨는 일에 열중한다.
그러나 뜨개를 그만하고 그 에너지를 다른 곳- 더 생산적인-에 쓰는 것이 어떻겠냐는 무심한 흘리는 말들은 나에게 반발심을 일으킨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뜨개가 다른 것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처럼 취급되고, 뜨개를 도구화해서 이룰 수 있는 이득도 그다지 기대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 특히 자기 일이 아닐 때- 도구적 관점으로 판단하는 일을 능숙하게 하고 그 일의 가치를 그 안에서 판단한다. 뜨개는 그런 의미에서 빨리 그만둘수록 이득인 활동인 셈이다.
도구적 활동이나 관점은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피할 수도 없고, 나도 때로는 도구적 인간이기에 그런 관점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반발심은 바로 거기에서 온다. 경제적 이득은 없고, 도구화될 수 없지만, 그래서, 뜨개를 하면 안 돼? 그냥 내가 즐거우니까, 뜨개를 하면서 나는 배우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데, 나를 위해서 뜨개를 하면 안 되는 거야? 쓸모없으면 하면 안 되는 거야?
쓸모가 있다 없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경제적 계산을 하며 나는 그동안 그렇게 잘 살았었나?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한다면 그중 하나는 뜨개일 것 같은데 말이지. 뜨개는 명상 같아서 뜨개를 하는 동안 복잡했던 마음이 잔잔해진다.
뜨개로 어떤 성공을 꿈꾸지도 않고, 꿈꿀 수도 없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 좋아 뜨개 작가로 활동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순전히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런 마음도 모르고 적당히 하다 그만두는 일 정도로 바라보는 시선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가끔은 뜨개를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이럴 시간에 공모전에 낼 글이라도 하나 더 쓰는 게 좋지 않을까.
글 쓰는 일도 그냥 글 쓰는 것 자체가 좋았는데, 어떤 결과를 생각하며 쓰다 보니 결국 내가 못 하는 일이 되고 만 것 같다. 어떤 과목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것이 인생인 것처럼.
학창 시절은 끝났는데, 시험은 계속되는 그 기분. 성적과 상관없는 일은 빨리 그만두고 집중해야 하는 압박감.
어린 시절, 천주교 성가대를 했었다. 수녀님이 나이 노래를 좋아하셔서 메인 소프라노도 시켜주시고 연습도 열정적으로 시켜주셨다. 나는 수녀님도 좋았고 노래도 좋았는데, 아빠는 공부에 방해되는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닌데, 참.- 일이라고 싫어하셨다. 그래서 성가대 연습을 몰래 가곤 했었다. 성당에 가면서 죄짓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 일들은 엄마, 아빠와 살면서 반복되었고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이게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 느끼기 힘들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일들은 부모님이 모르길 바라면서 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며, 나는 오랫동안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잘못하며 살았다.
쓸모를 증명하지 않는 삶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논점에 따르면 쓸모없음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선한 것들이 있고, 선한 것은 그걸로 이익을 얻거나, 단순히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선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굳게 딛고 설 만한 가치가 된다고.
그래서 쓸모없는 활동에 시간을 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쓸모없는 활동이야말로 삶의 진짜 의미를 되찾아주기 때문이라고.
유튜브만 봐도 쓸모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걸 좋아하다 그걸 좋아해 주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한 사람의 세상이 확장된다.
뜨개하는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고 나의 몫이다. 어떤 의미를 따지다 보면 가끔은 작은 어떤 일을 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위한 일을 할 때, 타인의 인정은 필요 없다.
나의 몫인 인생이 그러하듯.
그러니, 뜨개를 하는 사람에게 가성비 따지고 눈이 침침해지네, 팔이 아프네, 몸이 축나네, 그런 이유로 그만하라고 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