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밥과 노동에 관한 책들
책으로 세상을 보다 ( 1 )
내겐 아이가 둘이다. 처음엔 하나만 낳으려고 했는 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둘이 됐다. 나도 서른 즈음에는 요즘 젊은 세대들처럼 결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혼 안 할 생각도 없었다는 거다. 그 구체적이지 못한 비혼 계획 때문에 결혼을 했고 허술한 남편과 허술한 출산 계획으로 어찌어찌하다 보니 지금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이 두 아이가 코로나로 인해 장기 방학을 진행 중이다. 6월 들어 등교 수업과 온라인 클래스를 격 주로 해서 그나마 숨통은 트였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점심을 챙기는 건 고단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침 8시만 되면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는 남편과 함께 썰물이 빠져나가듯 한꺼번에 집을 나가줬다. 참을 수 없는 미소를 애써 감추며 마중을 하고 나면 그 시간부터는 자유였다 물론, 자유롭다고 해서 독서가 잘 되고 글이 쓱쓱 잘 써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홀가분한 건 사실이다.
글을 쓸 때는 집중과 흐름이 중요하다. 맘 잡고 글 좀 쓸라치면 '엄마 밥 줘'가 귀에서 들리는 듯하다. 어디서나 밥이 문제다. 때 맞춰 그즈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포털 기사에 심심치 않게 ' 돌 밥'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돌 밥? 뭐지? 밥 하다 돌아버리겠네의 약자인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얼른 초록창에 단어를 검색한다. ‘돌 밥’ 돌 밥은 돌아서면 밥을 해야 한다는 나 같은 주부들이 내뱉는 자조적인 단어다. 단어의 맥락이 내 추측과 동일함을 확인하고 어깨를 으쓱해 본다. 그럼 뭐해? 또 밥을 해야 하는 데..
온라인 클래스를 하는 아이들은 등교 수업 때보다 늦게 일어난다. 학교 가는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아이들에겐 늦잠을 잘 수 있는 기회다. 아이들은 여덟 시가 지나서야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바로 책상 앞에 앉는다. 중학생 딸에 반해 실시간 수업을 하는 고등학생 아들은 머리 만지는 것도 귀찮아 모자를 쓰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방문을 닫고 수업을 하니 엄마라도 제대로 수업에 집중을 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사실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난 수업에 관해서는 관여를 안 하고 싶은 쿨한 엄마니까. 내겐 점심준비라는 과업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내 맘대로 만드는 ‘알리 올리오 스파게티’다. ‘알리 올리오 스파게티’는 스파게티 면, 올리브유와 마늘, 마른 고추 정도만 있으면 한 끼가 해결되니 자주 해 먹는다. 스파게티에는 마늘과 마른 고추만 넣으면 섭섭해서 베이컨과 양송이도 같이 넣어준다. 마늘과 올리브 향으로 먹는 전통 알리 올리오 스파게티와는 거리가 멀지만 아이들은 좋아한다. 스파게티가 지겨우면 시판 소스를 사서 ‘토마토 스파게티’를 해 먹는다. 면 만 삶아서 스파게티 소스를 부어 먹으면 되니 간 편은 하다. 하지만 소스의 맛이 너무 강해 금방 질린다. 스파게티 류가 지겨우면 밀가루 사 형제가 기다린다. 어묵 가락국수, 잔치국수, 비빔국수, 수제 비까지..
수제비는 중력분 밀가루로 오전 일찍 반죽을 만들어 냉장고에 한 시간 정도 넣어두면 쫀득한 식감의 수제비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일찌감치 반죽을 만들어야 해서 썩 바람직한 메뉴는 아니다. 밀가루를 너무 많이 먹는다 싶으면 이제 밥으로 넘어가 보자.
사실 나의 주 종목은 볶음밥이다. 야채 햄 볶음밥, 김치볶음밥, 스팸 감자 볶음밥, 날치 알 볶음밥, 계란볶음밥, 새우볶음밥 해 놓고 먹어보면 맛은 비슷한 것 같지만 만드는 나로선 엄연히 구분이 되는 메뉴들이다. 볶음밥의 친구인 덮밥은 청경채 소고기덮밥, 오징어덮밥, 노량진 컵밥에서 아이템을 딴 대접 밥, 삼각 김밥과 비슷하지만 모양은 둥그런 제육 주먹밥, 김치볶음 주먹밥, 참치 주먹밥, 멸치 주먹밥, 카레라이스, 짜장 밥, 각종 김밥 초밥, 꼬마 김밥, 떡볶이까지 하다가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할 게 없으면 전날 저녁에 먹은 반찬과 찌개로 차리는 밥 정식이다.
딸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한마디 한다 "엄마 내일 점심은 떡볶이"" 내가 급식 아줌마야 " 딸의 말에 꽥 소리를 지르며 면박을 준다. 자격지심이다.
학교 엡의 한 종류인 ' 아이엠스쿨'에는 급식 메뉴와 사진이 매일 올라온다. 올라온 급식 사진과 메뉴를 보다 보면 급식 반찬들은 내게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삼치 카레 구이''베이 커드 오븐치킨''김탕만 버무리''노각 생채' 등등 맛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 엄마가 해 준 음식보다 맛도 좋을 수 있다)
모든 엄마들의 음식이 다 맛있는 건 아니다. 다만 익숙할 뿐이지.. 재료면에서부터 엄마의 '한 재료 한 음식'과는 비교 사항이 되지 않는다.
몇 년 전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직업 전선에 함 나가볼까 해서 알아본 직업이 급식 조리사였다. 경력 단절로 할 만한 일이 마땅치 않았던 차에 아는 지인이 급식 조리사를 하고 계신 다 길래 “ 나도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넌지시 물어보니 그분은 손사래를 친다.” 자기는 체격이 작아서 안 돼. 이 일이 은근히 중노동이야 “
“ 반찬 만드는 일 아니 예요? 이래 봬도 음식 솜씨가 적잖이 있는 데 ” 순진하게 묻는 나의 물음에 그분의 대답은 반찬을 만드는 일은 맞는 데 워낙 대량으로 만들다 보니 들고 반찬을 저어대고 무치는 일이 보통 힘쓰는 일이 아니란다. 하물며 같이 일하시는 분 중에는 반찬을 휘 젖다가 갈비뼈가 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여름에는 냉방시설이 안 돼서 너무 더우며 일하는 것에 비해 월급도 짜고 방학 때 쉬는 것 말고는 좋은 게 없다고 단언하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유지를 위해선 노동의 경중을 따지지 말아야겠지만 그분의 말을 듣고 재고한 건 사실이다.
* 북변잡썰
근간에 읽은 노동에 관한 책으로는 근현대사 책으로 알고 도서관에서 빌렸으나 책을 읽어 보니 현대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였던 ‘ 현대 조선 잔 혹사 ’( 허 환주/ 후마니타스 )와 현대판 ‘난쏘공’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웅크린 말들’( 이 문영/ 후마니타스), 근간에 나온 경비노동자의 살아있는 기록인 ‘ 임 계장 이야기’( 조 정진/ 후마니타스 )가 있다.
일제 강점기를 포함 한국 노동사 100년, 산업화 시기를 기준으로 60년의 세월 동안 노동자에 대한 책은 그동안 숱하게 발간돼 나왔겠지만, 직접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물론 본인이나 내 가족이 노동자라면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상관없겠지만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노동을 우린 무슨 수로 안다는 말인가? 내 아이가 노동자가 되는 걸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사교육으로 무장을 시키며 청소하시는 분이 지나가면 ‘공부 안 하면 너도 저런 일 해야 한다’라는 왜곡된 산(?) 교육을 시키는 단편적인 사고의 부모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노동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단속사회’에서 엄 기호는 노동을 가르치지 않아서 아이들은 모두 전문가를 꿈꾸지만 사회에 나와서의 현실적 괴리감은 아이들을 더 도태하게 만든다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노동자가 없다면 돌아가지지 않는다. 그걸 수단으로 삼는 귀족 노조 집단도 있지만, 우리가 시선을 돌려야 하는 건 조직을 만들 수조차 없는 취약한 노동자들이다. 안전장치 없이 일하는 현장 근로자들, 열악한 환경의 공장 노동자들, 하청 소속 직원들과 많은 비 정규직원들, 더운 여름에도 냉방장치 하나 없이 요리를 해야 하는 급식 조리사, 쉴 공간이 없어 화장실 구석에서 식사를 하시는 청소하는 여성분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마트 노동자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만약 그분들이 없다면 내 자녀가 학교에서 어떻게 따뜻한 점심 한 끼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수고하는 손길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원하는 책을 택배를 통해 받을 수 있으며, 새로 난 산책로를 걸어 운동도 할 수 있으니까
< 참고 문헌 >
엄 기호 『 단속사회 』 창비.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