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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중독자 Jul 10. 2020

프롤로그

마중 물 독서

책을 읽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당연한 수순이다. 사람은 모방의 동물이라 뭐든 따라 하게 마련이다. 내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다. 지금도  컴퓨터를 두드리는 책상 주변에 여러 권의 책들이 쌓여  있다. 모두 읽을 책이거나 읽고 있는 책이거나 읽다 만 책들이다. 아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책 읽는 일일 거다. 하지만 책을 잘 읽는 건 무언가를 잘한다고 할 때의 그 '잘'을  확인할 길이 없다. 책 잘 읽은 걸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책 잘 읽은 걸 확인할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다. 물론 책을 많이 읽었다고 글을 금방 잘 쓸 수는 없다. 글쓰기도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니까 다만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반복되는 독서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잘 쓴 글과 못 쓴 글을 가려보는 눈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이 정도 책은 나도 쓰겠다’라는 선 넘는 발언을 툭 내뱉게 된다. 내 경우가 그랬다. 서평을 쓰기 위해 받은 책인데 삼분의 일을 읽다 보니 작가의 생각이 너무 편협하고 단순했다. 그래서 책을 던지며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라는 말을 해 버렸다. 그날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그렇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쓰는 글은 안 읽고 쓰는 글보다 좋다. 그런 걸 사람들은 당연지사라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한 키워드를 무엇으로 잡을 까 고민했다. 아무리 뒤져봐도 남들보다 잘하는 게 없었다. 글쓰기 강의를 하는 많은 강사들은 각자 자기 이야기가 이미 훌륭한 콘텐츠라며 그걸 쓰라고 부추긴다. 맞는 말이긴 하다. 누가 나와 동일한 삶을 살까? 인생은 각자 다 다르게 살아가는 데.. 중요한 건 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 햇볕 아래 펼쳐 놓을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의 문제였다.


‘줄탁동기’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깨어나려고 할 때 어미닭이 밖에서 알을 쪼아 준다 뜻이다. 이처럼 내 속에 있는 글들은 언제나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데 덜미를 잡고 나와 줄 마중물이 변변치 않다. 내겐 어미닭이 필요하다.


서두를 어떻게 써야 할까? 글의 소재와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까? 고민하고 고민해봐도 떠오르는 건 책 읽기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한다. 책 읽는 아줌마의 책 읽는 이야기. 7년째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 블로그에는 독서일기라는 키워드를 달아 놨다. 사실 그동안 천 권의 책을 읽었지만 정식 서평은 300편이 체 안 된다. 나머지는 그냥 다 책에 대한 이야기다. 블로그를 방만하게 운영하진 않았다. 다만 너무 사적인 블로그는 이제 몸의 일부분 같아서 잘 떨어져 나가지 않을 뿐이다. 왜 그런 경험이 있지 않나? 너무 친해지다 보니 임의로워져서 긴장감이라고는 일도 없는 관계처럼 블로그는 어느새 내게 가족이 되어버렸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8월이었다. 올해가 2020년이니까 7년 전의 일이다. 날은 덥고 무료함에 지쳐서 방바닥만 긁던 어느 날 문득 도서관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도서관은 아이들 책을 빌리려만 다녔지 내 책을 읽을 여유는 없을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책이 읽고 싶어 졌다. 하긴 원래 나는 독서 형 인간이다. 살아오면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책부터 사 모으곤 했다. 아버지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도, 딸아이의 아토피가 겁나게 심해졌을 때도, 때때마다 책은 내 인생에 개입하고는 했다. 그날 도서관에 가서 고른 책은 무엇이었을까?  독서를 맘먹었으니 독서법에 대한 책을 빌렸다.  지금도 잊지 못할 첫 책 이 이 지성의 [ 독서 천재 홍 대리 ] 다. 이 지성이 욕을 먹는 거 하고는 별개로 자기 계발서의 형식을 갖춘 책은 독서에 동기부여를 받고 싶었던 내게는 딱 이었다.


그날부터 독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독서를 하다 보니 행복한 고민이 생겼다. 거의 매일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던 때였다. 나의 고민은 유 재석의 노래 ‘말하는 대로’의 가사에 나온다. ‘내 스무 살 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 하지 내일 뭐 하지’ 라면 나는 ‘오늘 읽고 있는 책을 다 읽으면 내일은 뭐 읽지?’였다. 그게 무슨 고민이야?라고 반기를 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 당시 내겐 말 그대로 뭔가 행복하지만 고민이 되는 문제였다. 수시로 인터넷 검색도 해 보고 책 좀 읽는다는 블로거들의 블로그도 들어가 봤다. DB로 검색되는 책들은 대개  잘 팔리는 책 위주였고 내 구미에 딱 맞는 책을 쉽게 찾기가 어려웠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책은 책으로 통한다고 궁리 끝에 찾아낸 방법이 독서가들이 쓴 독서에 관한 책을 읽는 거였다.


 유 시민의 [ 청춘의 독서 ] 정 여울의 [ 마음의 서재 ] 정 희진의 [ 정 희진처럼 읽기 ] 장 석주의 [ 마흔의 서재 ] 서 민 [ 집 나간 책 ] 장 정일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시리즈 ] 박 민영 [ 책 읽는 책 ] 이 권우 [ 책 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 등 그동안 읽어 온 독서 관련서는 이 책들 외에도 많지만 일일이 열거하기는 버거워 일단 유명한 분들의 책만 모았다. 이 책들은 모두 내게 독서를 가르쳐 주고 독서를 계속하게끔 동기부여를 해 준 스승이다. 난 이 책들을 쓴 작가들이 책에 언급한 책들에 대해 칭찬을 하거나 비판을 하거나 공감을 하거나 재밌어한 내용들에 최대한 주파수를 맞췄다.


바코드를 찍는 기계를 갖다 댔을 때처럼 삑 소리를 내며 통과해 가는 책들 중에서 나의 코드에 맞는 책은 기록의 서랍장에 코드가 맞지 않는 책은 기억의 서랍장에 나눠서 보관했다. 그리고 기록의 서랍장에 저장된 책들부터 한 권씩 찾아 읽었다. 때론 책을 읽고 난 소감이 그분들과 같지 않다고 느껴지면 그분들의 책을 다시 찾아보고 내 생각과 비교해보는 절차도 잊지 않았다. 어느 정도 독서에 물이 올랐을 때부터는 다음 읽을 책을 찾는 연결고리를 스스로 터득했지만 초반에는 이런 독서가들이 책을 참조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난 왜 책을 읽은 걸까? 정신의 팽팽한 탄력을 밀고 가는 힘을 발휘하며  7년간 천여 권의 책을 읽고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무엇을 얻었을까?

내가 책을 읽으며 얻은 건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 지적인 능력, 글쓰기에 대한 동기 부여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맘에 드는 건 정제된 감정 다시 말하면 삶을 대하는 성숙도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상하다. 독서는 분명 머리로 하는 이성적인 작업인데 천 권을 읽고 얻은 건 감정적 성숙이라니. 꼭 사람 이름 같기도 한 ‘성숙’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본다. ‘성숙’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스럽게 됨’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이 뜻풀이가 이 문단에 가장 적합해 보인다.


그렇다면 독서를 하기 7년 전에 나는 과연 어렸을까? 무슨 소리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가 둘이나 있는 엄마였는데 어리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보면 맞는 말이다. 난 그때 어렸다. 아이를 둘이나 낳아서 키우고 나름 산전수전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보며 나이를 먹었지만, 세상에 부딪힐 줄 만 알았지 관조하는 법을 몰랐다. 언제나 붕 떠서 내 식대로 바라보는 세상, 단순하고 만만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부딪히면 상처 입고 떨어지고야 마는 마치 유리벽에 머리가 깨지는 새처럼 무모함 가운데 나도 나를 보호할 보호막이 없었다.


반응만 하는 삶은 무기력하다. 무기력해서 우울하고 우울해서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졌다. 나를 지탱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다 만난 것이 독서였다. 7년을 돌아보면 책을 도피 삼아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고단한 삶의 강을 건너게 해 준 책은 고맙게도 매번 내게 다리를 놔주었다. 굳이 발을 적시지 않고도 한 발자국 씩 디디며 물을 건너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참고 문헌

김 무곤 - 종이책 읽기를 권함 / 더숲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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