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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중독자 Jul 11. 2020

그땐 그랬지

내 인생에 끼어든 책 ( 1 )

     나는 71년 생이다.  71년생들은 제2차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한다.  그 해 태어난 아기의 수는 백 2만이었다. 나보다 한 살 위인 70년생들과 더 한 살 위인 69년생들도 각각 백 만이었으니 삼 년치 출생 아기 명 수를 합치면 무려 3 백만의 아기가 태어난 셈이다. 3백만 명의 아기들이 삼 년에 걸쳐 태어났으니 국가적으로 봤을 땐 이 보다 더한 경사가 어디 있으랴 마는 태어난 아기 입장에서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다수의 또래 압박은 학창 시절을 졸업할 때까지 내게 영향을 끼쳤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각자 가정에서 부모의 손에 돌봄을 받았으나 사실 말이 좋아 돌봄이지 유치원도 변변치 않던 시절, 아이들은 거의 방치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나쁘진 않았다.  당시는 친구처럼 같이 놀 형제자매들이 많았고 우리 집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많아서 두 집만 의기투합해도 함께 놀 수 있는 아이가 족히 일고 여덟 명이 되었다. 일고 여덟이면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많은 형제자매를 빼고도  4대 메이저 놀이 중에서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같은 놀이는 충분히 가능했다. 여기서 4대 메이저 놀이라고 하면 '술래잡기, 땅따먹기, 다방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알고 있는데. 모르겠다. 동네마다 골목 성향 상 선호하는 게임 유형이 달라서 단정할 순 없다. 여하튼  열 명 이상 함께 해야 재밌는 다방구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달리기 잘하고 몸이 날랜 남자아이들이 주축이 돼서 인원을 모아야 놀이가 진행되곤 했는 데 달리기 못하고 소극적인 나는 웬만해선 멤버로 선택되기 어려웠다. 간혹 고학년 언니나 아는 오빠의 백으로 놀이에 가담해도 줄곧 술래가 되거나 깍두기 신세였다. 그래도 어느 날엔가 인원이 붙고 붙어 골목 아이들 전부가 참여해서 함께 했던 축제 같았던 해 질 녘 다방구의 추억은 지금도 잊지 못할 짜릿함을 남아있다.

1978년, 당시로는 국민학교였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러 가는 아이들이 꾸역꾸역 물결처럼 학교로 모여드는 아침이었다. 학교 운동장엔  아이들과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들로 한가득이었다. 춘 삼월인데도 날씨는 얼마나 쌀쌀한 지 코는 발개지고 콧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그럴 때 닦으라고 엄마들은 명찰 밑에 손수건을 길게 접어 옷핀으로 고정해 주었지만, 아이들은  새로 사 입거나 물려 입은 아동복 상의 소매로 연신 코를 닦기에 바빴다.

물론 나는 옷소매로 코를 닦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웬만해서 코감기에 걸리지 않는 면역력을 가진 덕분이었을까? 하지만 툭하면 배가 아팠다. 첫 단체 생활을 시작하는 긴장감을 견디기에 체 여물지 않은 내 소화기간은 너무도 연약했다.


입학하고 한 달간 학교에서는 주로 줄 긋기를 가르쳤다. 주된 준비물은 색연필과 무선 종합장이었다. 선이 없는 종합장을 네 등분으로 접어 그 안에 직선도 긋고 곡선도 그리고 지그재그도 그리고 나선도 그렸다. 그렇게 그려진 결과물에 선생님은 철수와 영희가 그려진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셨다. '참 잘했어요' 도장은 언제나 내게 따뜻한 위안을 주었다. '보통'이나' 좀 더 열심히'가 낮 뜨거움과 좌절감을 선사하는 증표였다면 '참 잘했어요'는 가벼운 깃털을 단 듯하며 가슴에 공기가 가득 차는 뿌듯함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일 학년은  한 반에 70명, 전체 학급이 총 스물세 반이었다 이 아이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교실이 부족하여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서 학교에 갔다. 어느 날은 오전에 어느 날은 오후에 학교에 가서 세 시간가량의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오전 오후반 제도는 지금 기억으로 저 학년으로 분류되는 삼 학년까지 이어진 걸로 알고 있다.  


한 달가량을 그렇게 선을 그으러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한 달이 지나면서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국어를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위에서 말한 종합장을 이젠 더 촘촘히 접어, 대략 6등분에서 8등분 정도 될 거다. 거기에 큼지막하게 ㄱ ㄴ ㄷ ㄹ 를 쓰기 시작했다. 뭐 그 정도의 학습 난이도는 따라갈 만했다. 솔직히 나는 한글을 떼지 못하고 학교에 갔다. 내가 아는 유일한 한글은 '고' 자였다. 아마 나의 성씨 인 ' 오'도 알았겠지만 여하튼 '고' 자만큼은 정확히 읽고 썼다. 내가 한글 중에서 유일하게 고를 아는 이유는 당시 기상캐스터 '김동완' 통보관 덕분이다.

지금처럼 그때도 뉴스 말미에는 날씨를 알려주는 시간이 있었다. 국민적 신뢰감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하던 김 동완 통보관 덕분에 어른들은  뉴스는 안 봐도 일기예보는 꼭 챙겨봤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였던 그 시절 김 동완 통보관은 그 단정한 매무새와 특유의 목소리로 큰 전지 위에 매직으로 쓱쓱 기압도를 그리며 설명을 했다. 내일의 날씨가 맑을 때는 고기압의 고자를 강조하고 흐릴 땐 '저'자를 강조해서 그렸다. 그것이 맑은 날씨를 선호하던 내가  '고' 자 만을 기억하게 된 사연이다.

 

정작 한글을 떼는 과정에서는 길가의 간판이 큰 역할을 했다. 어느 날이었을까?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일 거다.  엄마와 언니 나 이렇게 버스를 타고 남대문 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오는 시간이 한 시간을 족히 넘는 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버스에 사람이 많아 서서 가고 있었다. 넘어질세라 좌석 손잡이를 꽉 잡고 차장을 내다보면서 가는 데 신기하게 길가 간판의 글씨들이 띄엄띄엄 읽히는 거였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지금처럼 그 흔한 그림책 한 권이 없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삼 학년쯤 되었을까?

학교에 다녀오니 마루에 새 책이 한가득 꽂혀 있었다. 그 유명한 '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 80권이었다. 책 잘 읽기를 바라는 엄마의 바람에 의한 선택이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영업사원 아저씨의 영업력의  결과였다. 다행히 우리 사 남매 중 유일하게 책을 좀 읽던 나는 그 책을 꾸준히 소비해서 엄마의 선택이 오류가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읽던 책만 읽고 안 읽는 책은 항상 새 책이었다는 거였다. 나도 내 나름의 독서 편식을 고치기 위해서 방학 때마다 만들던 생활 계획표에 '80권 완독 하기'를 적어 넣고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되진 않았다. 내가 주로 좋아하던 책은 '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핀의 모험'키다리 아저씨'작은 아씨들'등의 영미권 소설이었다. 그런 책들은 너무 읽어 표지가 너덜너덜 떨어져 있었다

반면 '이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구권 혹은 중앙아시아나 동양 계열의 책은 안 읽었다. ( 80년대에 동유럽계열의 책들이 전집 목록에 들어가 있었을까? 살짝 의심도 되지만 ) 톨스토이의 작품 '바보 이반'이 연상 되어  러시아 작품 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주인공 이름만 가지고 작품의 국적을 유추해 내는 건 한계가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계몽사 전집의 책 목록을 구하기는 요원하니 추측만 해 보는 수밖에..


 * BOOK 변잡썰


영어로 쓰인 소설이지만 영미권 소설이 아닌 작품이 있다. 1955년에 쓰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다. 작가는 이 책을 미국에서 출간하려 했으나 거절당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파리에서 출간되지만 '롤리다'는 곧 발매금지가 된다. 영국 의회에서는 이 책을 두고 논의를 벌이는 사태까지 벌이게 되지만 결국 판결은 출판 가능으로 결론이 난다.  이 문제작은 이후 미국에서도 출간되어  미국인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다. 지금까지도 롤리타는 '롤리타 신드롬'을 일으키는 문제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재밌는 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20세기 러시아 작가 계보의 마지막 부분에 올려져 있다 (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편 )  러시아의 귀족 집안 출신이었으나 혁명기를 거치며 미국으로 망명하고 [ 롤리타 ]를 통해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다. 나보코프는 모국인 러시아 문학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으며 스스로 톨스토이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다고 하니 흥미롭다.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하게도 자신이 사랑했던 러시아를 떠나 타국으로 전전해야 했던 한 작가가 포르노의 표피만 따서 쓴 '롤리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  포르노그라피 산업의 호황,  자본주의라는 삼박자가 맞아 들어가 대박을 터트린 작품이 되었다.

작품의 이슈와는 다르게 어린 시절을 보낸 러시아와 흡사한 풍광을 가진 중립국 스위스에서 롤리타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남은 여생을 보냈다고 하니 작가에게 '롤리타'는 자신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사활을 걸었던 한 천재 작가의 재능기부 작은 아녔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참고 문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롤리타 / 민음사. 2009 ( 로쟈 이 현우 해설 참조 )

이 현우 -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편.  현암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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