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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델루나 Mar 09. 2016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당신이 주고싶어하는 사랑만 주는 당신들에게

발자욱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얼른 불을 끄고 잠을 자는 척한다. 그저 화장실을 갈때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문틈으로 새는 빛을 발견하곤 들어와서 내 속을 있는 그대로 뒤집어 엎으며 짜증섞인 목소리로 늦었는데 왜 안자냐? 이러다 내일 늦게일어나면 또 내가 깨워야하냐등 말이다. 그 잔소리에 잠은 달아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아침해를 맞이한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밤귀신'이라 부른다. 내가 불효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그녀의 발자욱 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선다.


몸이 아파 이번 주말 집에 있었다. 그걸 또 못 견뎌하며 내가 집안에만 있는거 보면 답답하다고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을 벌컥열며 짜증을 낸다. 몸이 아파 몸을 못가누는 것보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집을 나선다. 근처 만화방에서 12시간 정액을 끊고 꼬질꼬질한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한다. 나에게는 이곳이 집보다 편하다. 누가 뭐라하는 사람도 없고 자고 싶을때 자고 먹고 싶을때 먹고 놀고 싶을때 논다. 다만 나만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각자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기에 내가 정말 누구한테도 보일수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나 혼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지금 누워 있는 이 소파 만큼의 공간과 자유가 요즘 내게는 절실하다.


전화벨이 또 울린다. 저녁시간인가 보다. 그녀는 저녁을 해놨는데 언제 오냐며 카톡을 십수개를 날린다. 이번에도 내가 졌다. 지금 들어간다고 하며 거리를 나선다. 올라가는 길위에서 담배 한모금을 피우며 마음을 달랜다. 배는 고프다. 그러나 그녀가 차려주는 음식이 내게는 달갑지 않다. 사실 그녀는 요리를 자란다. 어려서 못 먹고 자란 설움이 있어서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한'이 있는지 넉넉치 않는 살림에 아픈 몸을 이끌고 요리 하나 하나 정성을 다해서 다양하게 내어 놓는다. 어렸을때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같이 밥을 먹는데, 너희 집은 매일 이렇게 먹냐고 하며 부러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잘 차려놓고도 음식이 맛없게 된것 같다며 그녀는 일일히 간이 맞는지, 입에는 맞은지, 뭐를 더 넣으면 좋을지 끊임없이 물어본다. 그것도 매 끼니마다... 그녀의 음식은 맛있지만, 소화는 그리 잘 되지 않는다. 


밥을 먹은뒤 방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그녀는 언제나 서운해 한다. 그러면서 내가 보려고 하는 프로가 있으면 자기가 볼게 있다면서 그 채널을 보기를 고집하고 혹여나 내가 틀어버리면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티비를 바라본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드라마를 끼고 살면서 그 저녁시간에 정말 나하고 같이 있고 싶다면 그 정도는 양보해 줄법도 한데 그녀에게는 예외가 없다. 


나는 매일 그녀가 지정한 시간에 일어나 지정한 시간에 들어오고 지정한 밥을 먹으며 지정한 시간에 자야한다. 낼 모레 40이 다되어 가는데도 말이다. 한번은 그냥 날 좀 놔둬주라는 한마디를 했더니 몇일동안 서운해 하며 사람의 애를 태우게 만든다. 자기가 원하는 그것에 충족이 안되면 어떻게든 관철시키려고 하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부모니까 이런거다 부모니까 잔소리하는 거다. 나 죽어봐라 너에게 이렇게 해줄 사람 있는줄 아냐 죽어서 잘한다고 하지말고 지금 잘해라 너는 참 정이 없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불효자인지 모르겠다. 그러더라도 난 너무 갑갑하고 마음이 무겁다. 그녀에게 설득도 해보고 아들러의 심리학도 권해봤다. 그런데 자기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책보는 것도 힘들고 이런거 본다고 달라질것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항상 나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부모가 없는 혹은 부모에게 홀대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내가 배부를 투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난 나를 옥죄는 그녀의 사랑이 너무 버겁기만 하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 사람을 행복해 주는것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내 삶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녀는 다른것 같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주고 난 그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 힘들고 힘들다. 


물리적으로 가격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내가 주고 싶다고 주는것이 결코 사랑이 아니다. 말로도 얼마든지 상처받을 수 있는 것이고 주는 사람에게는 호의일지 몰라도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던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때리지 마라. 그렇게 휘두른다고 사랑받을 수 없다. 사랑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방향이 잘 못되었을때 그건 사랑이 아니라 간섭이고, 부담이고 폭력이다. 나는 오늘도 그녀의 사랑에 맞아 아픈 마음의 멍자국을 어루만지고 있다.  그녀는 서운하고 나는 막막하다. 언제쯤 이 악순환이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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