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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수집가 Mar 06. 2017

헬카페 풍경

음악이 바뀌면 공간이 달라진다

헬카페를 가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태원에 가게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처음 가는 공간이라 들어가기 전에 긴장이 됐는데 헬카페라 쓰인 문을 밀었는데 안 열렸다. (미닫이문이었다.)

아이 사진을 찍고 있는 엄마 아빠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어두운 조명 속에  사람들이 많아보였다. 바리스타분과 인사를 했다. 복잡해보이는 바테이블 오른쪽에 있는 메뉴를 살펴봤다. 드립 커피와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드립커피가 많이 진한데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그 지옥 맛을 보러 왔어요라고 하지는 않았고 괜찮다고 진하게 해달라고 H가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큰 테이블로 가는 길은 스피커를 마주하는데 스피커에 가까이 가니 소리가 더욱 커졌다. 스피커와 살짝 떨어진 중간쯤에 자리 잡았다. 주문할 때는 소리가 큰지 몰랐는데 자리에 앉아서 들으니 음악이 공간을 꽉 채웠다. 피아노 곡이 흘렀고 분주하던 바리스타님께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고두헬을 마주한 자리에서 커피 내리는 모습을 피아노 곡을 들으며 보니 딱 맞아떨어지는 조합은 아니었는데 어울리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소리에 맞춰 내리시는 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소리와 움직임이 조화로웠다.



커피를 받았다. 드립커피는 작지만 강해보였다. 잔은 살짝 뜨겁게 느껴졌는데 마시기에 적당했다. 초반에는 살짝 시면서 썼다. 음악을 들으며 기다렸다가 한 모금 마셨더니 씁쓸해졌다. 그동안 마셨던 드립과 다르게 미끄덩함이 느껴졌다. 요즘 맛과 향이 진한 커피를 자주 마시는 편이라서 맛을 재밌게 느낄 수 있었다. 만약에 연한 아메리카노 위주로 마셨다면 정말 지옥 맛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카푸치노를 같이 주문하길 잘했다. 고소해서 드립커피의 씁쓸함과 같이 즐기기 좋았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클래식 곡에서 음악이 바꼈다. 그리고 카페의 풍경이 바꼈다. 피아노 소리가 가득할 때는 그림 같은 공간이었는데 백현진의 절규가 흐르니 달라졌다. 우울도 아니고 쓸쓸도 아닌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어떤 분위기.




'목구멍이 우울해진다' 라는 가사가 들린다. 귀가 터지도록 소리가 커졌다. 이렇게 큰 소리로 음악을 들어본게 얼마만인가 싶어서, 목소리가 좋아서 몇 곡의 노래를 더 들었다. 해질녘 창문 앞에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노래에 따라 사람들이 달라보였다.


커피를 다 마시면 일어나야지 했는데 다 마시지 못한 채로 일어섰다. 그리고 바리스타분들께 인사를 했다. 그리고 문을 밀었는데 안열렸다. 아.. 미닫이문이었다. 왜 미닫이문일까? 보통은 밀고 당기는데 이것부터 불편함을 경험하게하는 지옥의 시작인가? 싶다가 골목길이 좁아 밀고 당기면 길을 지나는 사람에게 불편할 수 있어 배려한 것이구나 다시 생각하게 됐다. 밖으로 나왔더니 더 이상 절규는 들리지 않았고 귀가 편안해졌다.



"사람은 커피나 음악이 없어도 잘 살 거예요. 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움을 경험한 사람은 그것들이 인생의 큰 지향점이 됩니다." 바리스타 권요섭  - 열아홉 바리스타, 이야기를 로스팅하다 p43

헬카페의 바리스타에 대해 이야기한 책을 보니 내가 느낀 것이 의도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트렌디한 카페들 사이에서 자신의 지향점을 확실하게 제안하는 헬카페의 바리스타분들이 바로 디자이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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