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영화감독을 꿈꾼다>, 쓰리체어스, 2018
“준성의 말대로 오늘날 모든 삶은 불안하다. 영화판을 택하지 않고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도 여전히 불안하다. 해가 지나면 뒤쳐질까 봐 무섭고 일반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날까 봐 두렵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는 이런 ‘보통의 삶'도 불안한데, 그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그들은 묻는다. “그렇게 사나, 이렇게 사나 다 불안한데 왜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살아요?”
- 김보라, <그럼에도, 나는 영화감독을 꿈꾼다>, 쓰리체어스, 2018.
꿈이 있는 사람은 꿈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불안하고, 꿈이 없는 사람은 꿈이 없어서 불안하다. 아무래도 '꿈'과 '불안'은 한 몸인가 보다.
서른넷 하고 딱 4개월이 더해진 오늘, 내 꿈을 점검해본다. 10년 후, 마흔넷엔 뭐가 돼있을까. 아니 당장 마흔에 나는 어떨까. '마흔'은 내가 스무 살이 조금 넘어서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나이다. 꿈이라는 게 도저히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던 청년이었을 때, 마흔이 된 나를 상상하면서 불안을 잠재웠었다. 그때쯤엔 '어른'일 테니 뭐라도 이루지 않았겠냐는 기대 혹은 자신이었다. 마흔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몰랐던, 꼬꼬마 시절에 순진한 생각이었다.
마흔이 되기 전에 내가 살 집을 짓겠다는 꿈은 하나 이뤘다. 나와 남편의 생활에 꼭 맞춘 '나만의 집'에 산다는 게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매일 체험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명이 최소 10년 단축된 것 같긴 하지만) 다음 꿈은 앞으로 10년 안에 아주 작은 상점과 예술가를 위한 작업장(레지던스)을 만드는 것이다. 틀림없이 돈도 안되고 골치만 썩을 일을 왜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게 '하고 싶다'라고 대답할밖에.
그렇게 사나, 이렇게 사나 다 불안하다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마음껏 불안한 쪽을 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