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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 Dec 03. 2023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곳, 성균관대 명륜당

설렜던 학교 나들이

가을 하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내 기억 속 가장 가을다운 곳. 가을과 가장 어울리는 곳, 성균관대 명륜당.


11월 둘째 주 어느 평일, 입동 무렵, 홀로 집을 나섰다.

날씨는 추운 듯 따스했고, 따사로운 듯 차가웠다.


실은 며칠 전 흐린 주말 남편과 다녀왔던 창경궁을, 혼자 가볼까도 해서 집을 나섰는데, 이 표지판을 보는 순간 설렜다. 가고 싶어졌다. 오래전 졸업한 학교로. 내 20대의 발걸음을 따라.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 창경궁 vs 성균관대

졸업한 이후로도 학교에 간혹 갔었지만 주로 삼청동에 갔다가 감사원 길, 북악산 길을 따라 학교 후문으로 들어갔었다. 그것도 주로 주말 저녁에.


이렇게 평일 낮, 혼자, 전철을 타고 혜화역에 내려서 걸어가 보는 것은 졸업 후 처음이었다. 거의 20년 만이다.

대학생들이 있을 텐데.


그렇게 혜화역에서 쭉 성대로 걸어가는데 점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아름답다.. 문묘로 들어갔다.


온통 노란빛이다. 하늘도, 땅도.

500년도 더 된, 천연기념물인 두 그루의 나무 크기가 크니, 떨어지는 이파리들이 무척이나 장관을 이루었다.


이곳이, 이 정도로 아름다웠나...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날씨까지 쾌청해서 청량한 하늘과 은행나무가 정말 잘 어울렸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양한 각도에서
명륜당

그저 그림 같아서 넋을 잃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계속 걷다 보니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아니 사실 눈물이 났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란 드라마에서 성인이 된 나희도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처럼, 갑자기 이곳에서의 20대 내 모습이 오버랩이 되었다.


"졸업하고도 가을이 되면 여기 올 거야!"라고 경쾌하게 말하던, 스물셋의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원래 문묘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문득 학교로 올라가고 싶어졌다. 내 생활의 공간이었던 곳.

학교 여러 건물들을 하나씩 도장 찍고 가고 싶어졌다.

헐떡거리며 올라가서 하나씩 도장 깨기하고 내려왔다.


어느 장소에나, 그때 그곳에서의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별 것 아닌 에피소드들인데 지금은 특별한 것이 되어 버린.


이렇게 추워지기 시작한 무렵, 내 손엔 늘 밀크티가 들려 있었다. 파란 코트를 입었지.

다시 내려가는 길


대학 시절은, 내 20대는, 감정이 휘몰아치던 시절이었다.


대학 입학해서는 수능 3문제를 마킹 못한 것을 계속 되뇌며 억울해하기도 했고(수시가 없다시피 한 시절),


아빠가 크게 투자한 일에 실패하는 등, 집안에 여러 어려운 문제들이 겹쳐서 마음 어지러워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동기, 선후배들과 우정을 나누고  동아리 생활 하며 진한 대학 생활을 누렸고,


첫사랑, 첫 연애를 해 보았던,


그때. (수업 생각보단 그때 감정들이 더 떠오르네 ㅎㅎ)


이후 직장을 다니며 다른 대학원을 2곳이나 다녔지만

이렇게 "내 학교"란 느낌은 잘 못 받았다. 이처럼 진하게 정을 주진 못했던 거 같다. 그냥 내 학교는 여기 같다.


한참 서성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당시 친구들에게 결혼을 가장 빨리 할 거 같다는 얘길 들었던 나는, 동기 중 가장 늦은 결혼을 하고, 이 나이에 시험관 시술을 하는 아줌마가 되어 평일 낮에 이곳을 서성이고 있을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하하. 웃프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발길 닿는 대로 걷던 나는, 점점 뺨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에 볼이 시려서 집에 돌아왔다.

똑같이 혜화역까지 걸어온 뒤 전철을 타고.

20대의 한 시절을 여행하고 온 느낌이었다.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매해 가을마다 이곳에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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