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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Mar 13. 2024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 사느니, 내 집을 짓고 싶다.

내 집을 지어 산다는 것의 의미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 사느니, 내 집을 짓고 싶다."


나에겐 비현실적인 평생직장이라는 업적을 이뤘던 나의 아빠. 공기업에 다니던 아빠가 일찍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을 때쯤 했던 얘기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누군들 저 꿈을 꾸지 않을까.


모든 이의 꿈은 내 집을 내가 짓는 일인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모든'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에게 주도권을 갖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 문장을 다시 보자.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 사느니, 내 집을 짓고 싶다."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은 표현부터 수동적이다.

"내 집을 짓고 싶다."는 나의 의지가 명확하게 반영되어 있다.


한 문장에 수동과 능동을 모두 담아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우리가 체감하는 수준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은 특히 다양한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를 활용해 우리가 하는 일의 성격과 특징을 세밀히 묘사하는 특징이 있는데, '짓다'라는 동사 역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2배속, 4배속처럼 반드시 건너뛸 수 없는 과정을 성실히 거쳐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마치 몇 백몇 천년을 들여 이루어지는 지층과도 같은 일이다.


물이나 바람에 의하여 부서지고 운반된 자갈, 모래, 진흙 등이 일정 장소에 쌓인다. 이 퇴적물들은 시간이 지나면 단단한 암석으로 변한다. 모든 시간과 과정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이런 퇴적암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올리고, 철근으로 뼈대를 이어 후다닥 올려낸 집들에 살고 있지만 자연상태에서 자갈과 모래, 흙들이 서로 만나 굳어지고 그 사이사이를 다른 물질이 채우고 위에서 눌리고 다시 다져지는 시간들은 우리의 생을 다 바친다 해도 그 시작과 끝을 볼 수 없다. 다만 유명 관광지에서 그 흔적으로 남은 지층의 단면을 보며 감탄할 뿐.


집은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여 계획, 설계, 그리고 건축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건축물이기에 자갈과 모래, 흙으로 비유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짓다'라는 동사는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에 적합하기에 지층이 만들어지듯, 나의 역사와 나의 바람을 담아 설계와 기획을 기반으로 창조적으로 지어 올리는 것이 집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8KAgjTaHmc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이 이천짜리 집을 이천오백에 팔라고 졸라 집을 사는 장면이다. 돈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고시생이 변호사가 되었다고 해도 멋들어진 집 한 채를 번듯하게 지을 순 없었겠지만 힘든 시절 막노동으로 지은 집을 웃돈 주고 살 수는 있다. 이 마음을 본인만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힘들던 시절, 집에 새긴 다짐. 이 다짐으로 사법고시에 패스한 그는 이 집을 결국 웃돈 주고 산다.


절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감동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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