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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Mar 06. 2024

지어먹는 밥이 주는 힘, 밥심

우리가 밥을 '지어‘먹어야 하는 이유

우리는 "밥심"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밥심은 밥과 힘이 합쳐진 말로, 실제 뜻은 "밥을 먹고 나서 생긴 힘"을 말한다.


어른들이 어려운 일,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늘 "네가 잘 먹어야 한다. 특히 밥을 먹어라. 요즘애들은 밥을 안 먹으니 밥심이 없어서 쓰겠나, 꼭 밥을 먹고 다녀라."라고 하신다.


그만큼 그들에게 '밥'의 의미는 굉장한 것이다. 요즘은 쌀이 컬리나 쿠팡이 보내온 진공포장지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농경사회에서의 쌀은 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때는 쌀이 찰랑거리는 논에서 모내기가 되고 무럭무럭 자라 줄기를 뻗고 고개를 숙여 노랗게 익으며 무거워지고 탈곡되는 낱알들이 가마니에 들어가는 과정 모두를 보고 자랐다. 그렇게 봤으니 그 한 알 한 알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일미칠근이란 말을 밥상머리에서 매일 들었다. 농부 땀방울이 무지하게 들어가 있으니까 '일미칠근, 일미칠근'을 되뇌며 밥그릇 벽에 붙은 한 톨까지도 물을 부어 발우공양 하듯 싹싹 설거지를 하고 나서야 식탁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밥 먹을 때 물을 들이켜는 일이 늘 부담스러웠던, 소화가 까탈스러운 어린이였지만 밥상머리 교육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 교육이 잘못 응용되어 밥을 남기는 일이 부담스러운 나는 식당에 가면 애초에 밥공기의 한두 숟갈만 달라고 부탁드리거나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미리 끝내지 못할 일을 피하는 요령이 생긴 것 같다.


앞선 글에서 '짓다'의 고대 한국어 어원의 의미에는 만들어내다, 생산하다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밥은 우리 민족에게는 그냥 쌀을 씻어 불에 앉혀 익혀먹는 단순 조리행위가 아니라 논에서부터 직접 벼를 재배하고 수확하고 그것을 다시 도정이라는 가공을 거쳐 밥을 만드는 꽤 품이 많이 드는 중요한 일이었던 거다.


아무리 HMR 시장이 선진화되어 손색없이 그럴듯한 음식들을 잘해 먹을 수 있게 된 세상이지만, 엄마마음으로 차린 정성 밥상 한 번에 골았던 속이 모두 채워지는 이유는 이런 데에 있다. 밥이 속을 채우는 일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달래는 일이겠지.


아빠는 할머니댁에만 가면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먹었다. 할머니의 간은 놀랍게 세고 강렬해서 나는 코를 쥐어대고 숨을 참았지만, 아빠는 그게 마음을 채우는 일이었을 거다. 얼마 전 고모집에서 김치찌개를 먹다 문득 '이렇게 간이 다르니까, 아빠는 내 요리에 시큰둥했을 수밖에 없었겠구나.'라고 반성했었다. 어떤 음식을 해도 맛있다곤 했지만 개운하게 먹는 모습을 보지 못한 일이 늘 서운했는데 그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갚을 수도 없는 엄청난 사랑과 마음을 받았다. 하루종일 메뚜기같이 뛰어다니다 집에 와 한 숨 돌리고 있는데,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선물이 갈 텐데 집에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라는 말과 함께. 무슨 선물인가 했더니, 그녀가 요리를 했단다. 면회 가는 길에 잠깐 스토리 구경을 하던 중에 먹음직스러운 나물요리를 하는 것을 보고는 '참 요리도 그녀같이 참하다.'라고 혼자 중얼댔는데, 그 요리를 받아먹는 사람이 나였다니.


그녀는 누군가를 온전히 생각하며 요리를 한 게 처음이라 요리를 하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내가 이런 정성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대체 크고 따듯한 마음을 어찌 받을까.



그녀의 정성이 도착하자마자 나도 눈물이 터졌다.



어떻게 했을지, 어떻게 담았을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모두 보였다. 그 과정을 보지 않았음에도 선명히 보였다. 나를 위해 나물을 삶고, 양념을 하고 다시 물기를 짜내고, 볶고 맛보고 재료들을 여미고 정갈히 담아냈을 그녀의 시간들을 생각하니 나는 어느새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나는 사실 요 몇 주를 자동차에 주유하듯 음식을 먹었다. 연료를 채워 넣는 느낌이었다. 안 먹을 순 없으니 먹고 버티자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욱여넣은 것들은 미음이거나 죽, 수프 같은 것이었는데도 다시 게워내길 여러 번 했다. 주말에는 으슬거리고 오한이 느껴지는데 덜컥 겁이 났다. 지금 내가 아프면 정말 답이 없었으니까 가진 약을 때려 넣고 후리스를 껴 입고 잤다. 나는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내 앞에 펼쳐진 그녀의 밥상은 나를 내가 잘 대접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요새 소화능력이 떨어져서 혹시나 하는 불안함에 조금씩 담아냈는데, 정말 대단한 맛이었다.


그녀가 보내온 반찬을 조금씩 덜어 담고 국을 끓인다. 국이 데워지며 집 안에 퍼지는 냄새가 좋았다. 오롯이 음식에 집중해 꼭꼭 씹어 삼킨 일이 얼마만인가 생각해 보니 담마코리아 이후로 거의 몇 달 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마음의 공허함을 먹고, 때로는 스트레스를 먹고, 불안을 먹었을 거다.


천천히 끝까지 비워냈다.


그녀의 편지에는 그녀가 보낸 정예부대, 음식전사들에게 하는 당부가 적혀있었다.




"음식들아. 날아가서 내가 아끼는 사람의 힘이 되고 몸이 되어 줘."



역시 그녀 답다. 나에게 힘을 주고 응원을 하는 방식이 나 스스로를 내가 키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역시 그녀는 나까지 자라게 한다. 내가 여기서 주저앉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데친 도라지가, 잘 삶은 장조림이, 알맞게 끓인 소고기뭇국이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영양분이 될 것이다.


이게 부모들이 자기 자식에게 하는 일이겠지.


나의 부친이, 나의 아부지가, 나의 아빠가 평생을 자기의 방식으로 나에게 영양분을 주었다. 그렇기에 그걸 다시 돌려주는 시늉을 할 뿐이다. 어떻게 갚아봐도 다 갚을 길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한마음으로 내가 굳건하도록 도와주니 나도 버티자. 최고로 잘살자.



나를 위해 밥을 '지어먹고' 살자.

우리 언제고 힘이 들 땐 밥을 '지어먹고' 밥심으로 살자.



며칠간 나를 키울 그녀의 마음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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