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버리는 매 순간 추억과 이별하는 사람의 이야기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리 기술이 고도화된 타입이다. 집에 있는 모든 것에 규칙이 있고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름 합리화의 도구로 뭔지도 잘 모르면서 chaos를 외치며 “혼돈 속에 질서가 있을지니 절대 내 방을 건들지 말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실제로 놀랍게도 그 혼돈 속에서도 귀신 같이 물건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 신묘한? 재주가 있음에도 나에게 정리 기술이 꼭 필요하고 그것을 고도화시킬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단순히 ‘가진 물건이 많아서’인데, 그마저도 한계가 와서 이제는 ‘버릴 결심’을 하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바꾼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저마다의 인연과 저마다의 사연이 있던 물건들은 어느샌가 내 삶을 무겁게 하는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대학 때 본 영화 티켓, 일기장, 여행을 가면 챙겨 오는 그 지역의 샵 카드들. 주로 그런 잡동사니들은 모든 것이 추억이자 모든 것이 시간이었는데 그것이 그만큼 무거워졌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서글픈 일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크게 즐거운 일은 그렇게 버리고 버려, 그 결과로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면 그 비움의 행복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저 프라이팬 포스터가 이 글의 발단이 되었다. 언젠가 지인이 집에 놀러 와 “저 프라이팬 액자 나 줘!” 했을 때 내가 상실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상실한 것 같은 큰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내가 이쩡씨라고 부르는 그녀는 내가 뭘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 아까워서 못 주는 마음은 전혀 아니었다.
나의 모든 물건이 그렇듯 저 액자 또한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귀한 인연의 시작을 나 스스로 기념하며 걸었던 액자였고, 그 인연은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그저 그랬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시간 모두가 함께 사라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쓰렸다.
그래도 난 알겠다고 대답은 했다. 언젠가에 잘 이별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믿기 힘들겠지만 그러고도 몇 년을 뭉갰다. ‘이제 정리해야 하는 건 아는데 힝…’ 같은 마음이었다.
이쩡씨에게 “그럴 거면 그냥 안 준다고 해!”라는 말도 들었다.
왜 준다고 해놓고 이러고 있나. 그것도 참 맞는 말이었다.
몇 주 전에 한바탕 정리를 하는데 저 프라이팬이 있던 자리를 치워두고 가만히 보니 마음이 어쩐지 편안했다.
‘지금이로구나!’
드디어 오늘 프라이팬 액자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밥을 지어주는 공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원래 저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게 웃기다. 고요한 우리 집보다는 시끌시끌하게 식기들이 부딪쳐 소리가 나고 지글 보글 음식 냄새로 따듯한 온기가 있는 곳에서 한동안 미모를 뽐낼 일에 마음이 좋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헛웃음이 나지만, 이렇게 이별이 어렵고 미련이 많은 나여서 웃기고 좋다.
"열심히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