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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Jul 22. 2024

친구의 결혼 선물로 현판을 썼다.

소금나무집의 사랑과 축복을 기원하며

지난 6월에는 아끼는 Y의 혼례가 있었다. 직장 동료로 만났지만, 삼만 년쯤 전부터 깊이 알고 지낸 느낌이 들어 늘 마음으로 가까이 한 벗이다. 우리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그렇다. 어쩌면 이번 생의 인연이 처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어리지만 어른스럽고 진중하지만 풍류를 아는 이다.


나 역시 풍전등화 인생을 살고 있는 터라, 이 손우(損友)는 이토록 소중한 혼례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 자명했다. 그녀와 남산 기슭에서 맛난 평양냉면에 만두를 씹으며 근황에 대해 나누고 청첩장을 받아 들었다. 받은 청첩장 중 가장 무거운 청첩장이었을 거다. 그녀는 내 인생이 더 중요하니 괜찮다고 했지만, 그랬지만, 그녀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려 돈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이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을 하다 떠오른 건 그녀의 소금나무집.


그녀는 신혼집의 거의 모든 부분을 그의 부군과 함께 제 손으로 고쳤다. 그 과정이 인스타에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다.

www.instagram.com/saltreehouse


그 과정이 보는 내게도 너무 재밌고 좋았다. 건축가 남편과 디자이너 아내의 조합이라니. 게다가 이토록 멋진 둘이라니. 어디 행복 흐드러진 집 같은 인테리어 매거진에 인터뷰로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그들의 집에는 이름마저 있다. 그 이름은 '소금나무집'.


 이토록 찬란한 흰색 금들이 내려앉은 나무를 보며 이 남녀가 그들의 성실한 걸음걸음들로 만들어 갈 화사한 나날들을 그렸을 일을 생각하니, 몹시도 그들 다운 인생이 그려졌다.


나는 이 글을 곱씹으며 그들의 소금나무집을 한자로 옮겨 적어보기로 했다.


염목당.


이 과정에서 그들이 터를 잡은 양천구가 옛날에 염전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의 서예스승은 이것저것 물으시며 방서에 쓰일 글을 골몰하며 나의 짧디 짧은 배움을 분에 넘치게 채워주셨다.


이에 완성된 본문과 그 해석을 이 글에 옮긴다.



裕陳叔哲余之執友也 往六月十有行巹禮也
其家在龍王山麓而 自說製名之曰소금나무집
其義卽則冬一日偶然看窓外 樹上積雪如鹽
乃余自換之以鹽木兩字 鹽者不腐之物也 木也者其性本直也
但願居其室必成取所志

並祝
旣安且寧和樂且湛
甲辰長夏霖雨連棉 蒸炎肆毒
損友 芝淵 揮汗作此


현명하고 아름다운 Y는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절친이다.
지난 6월에 혼례를 치렀다. 그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용왕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고, 스스로 그 집의 이름을 ‘소금나무집’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 의미는 겨울 어느 날 우연히 창 밖을 보았는데, 나무 위에 쌓인 눈이 마치 소금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 멋대로 ‘염목’이라는 두 글자로 바꾸어보았다. 소금은 영원히 썩지 않으며, 나무는 그 성질이 본래 곧다.

다만 바라는 바, 이 집에 사는 동안 반드시 이들이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아울러 평안하고 화목하며 즐겁기를 빈다. 갑진년 긴 여름 장마가 계속되고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친구 지연이 땀을 뿌려가며 이를 썼다.

선생님이 퇴고해 주신 문장과 체본을 보니 아득한 일이다. 내가 일을 크게도 저질렀구나.


체본을 받아 들고 온 날부터 나의 번뇌와 부담은 날로 커져갔다. 일정과 관계없이 그녀에게 줄 이 현판을 8월에 있을 서예전시에 걸고 그녀를 초대할 계획이었다.



출장에는 문방사우를 챙겨가기 어려우니, 한자노트와 붓펜을 챙겼다. 계속 선생님의 글씨를 닮아보려 쓰고 또 쓰고.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고 몇 번이나 썼다.



드디어 지난 새벽에 완성한 최종본. 배첩 전 마지막으로 도록에 쓰일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낙관을 받은 뒤 배첩표구를 맡기고 돌아와 후련해진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아직 부족함이 많은 글씨이지만, 진심만은 일등이니 그들의 시작에 작은 기쁨이 되기를 바라며.


글씨를 쓰는 일은 단순히 풍류가 아니었다. '글씨란 것이 무엇이다.'를 논하기에는 너무 짧은 경험이지만 적어도 확실한 일은 심신의 상태가 거울처럼 반영된다는 것. 어디에라도 걸리는 일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붓과 먹은 들 수가 없다. 지난 몇 개월을 붓을 잡지 못한 이유는 거기에 있겠지.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다. 흔들려도 좋으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이곳에 있자. 내가 있을 곳에 누구보다 확고하게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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