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eK May 01. 2024

"네가 왜 날 사랑하냐?"

어른이 된 딸이 아빠를 다시 사랑하는 방법

여느 때와 같은 날이다.

두 달 반 동안 매일 같이 병원을 들락거린 동력은 죄책감이었다. 


대학 입학 후 합법적, 공식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빌미가 주어지자마자 나는 했다. 독립을.


정확히 말하면 아빠로부터 도망쳤다.

군대와 다름없는 규율, 잦은 술, 이어지는 주정, 무시, 다시 과묵함. 


나의 아빠는 가족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몰랐을 뿐이다.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야기가 하고 싶은 날엔 술의 힘을 빌렸고, 나는 그럼 대화하지 않았다. 맨 정신에 말을 걸라고 했다. 

그 말은 술의 힘을 빌려 용기를 낸 아빠에겐 상처가 되었다. 그럼 술은 술을 불렀다. 상처받은 마음은 다시 어깃장이 되어 돌아왔다. 그런 식이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싫었다. 


독립하고 나서 곧 나는 학교를 열심히 나가는 대신 더 재미있는 영화판에서 놀았다. 영화판은 곧 술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만큼 우리는 늘 술을 먹었다. 그 영화판에는 젊고 좀 덜 젊은 아빠가 득시글했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취해 뒹구는 판에 내던져졌다. 그런 술과 술과 술의 나날들에도 나는 마치 일평생 서서 앞섶을 다 적시며 세수하는 신채호 선생처럼 언제든 어디서든 꼿꼿하게 술을 마셨다. 어느 날은 동아일보에서 수업을 늦게 끝내고 호프집, 호프집 2, 호프집 3을 전전하다 결국 막차를 보내고 첫차를 기다리며 청진옥에 5차를 가게 되었는데 아무리 먹여도 내가 죽지 않자, 당시 강사였던 모 감독은 나를 집이든 숙소든 어디든 보낼 요량으로 소맥 폭탄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채호 선생에 빙의한 나는 깔끔하게 쏘맥을 연거푸 말아먹고는, 술이 제법 셌지만 그날만큼은 전봇대를 부여잡고 자신이 먹고 마신 것을 확인하는 M의 뒷모습을 지나, 부서지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출근을 하는 인파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변기를 부여잡고 모든 것을 게워냈다. 그 모습은 나만 알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버티게 한 것은 술을 먹는 어떤 순간에도 어디에서도 흐트러짐 없어야 한다는 나의 강박이었다. 그 강박은 나의 아빠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나를 바라보던 풀린 눈과 허우적대던 사지, 밤새 광광 울리던 코 고는 소리들은 나에게 유쾌한 기억이 아니다. 긴장과 부당함, 억울함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독립이란 이름으로 도망친 뒤로 '난 아빠처럼 술을 마시지 않을 거야.'라는 굳건한 다짐이 있었고 이 다짐은 간절히 무너지고 풀어지고 싶은 때가 있는 요즘까지도 유효하게 되었다. 이쯤되니 모든 것을 잊고 취하고 싶어도 그 기분을 모르는 불행한 어른이 된 것이다. 


누군가 취한 내 모습을 봤다면 그건 높은 확률로 나의 연기다. 취하고 싶은 나의 소망의 투영이다. 언젠가 누군가의 앞에서 무장해제 될 수 있을는지 늘 판타지를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많이 돌아왔지만, 그렇게 도망친 딸이기에 우리의 거리감에는 나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그의 무뚝뚝함에 딸의 애교가 한 발 더 다가섰다면 어땠을까. 그를 이해하고 더 크게 품었으면 어땠을까. 그럼 우린 좀 더 편했을까.


요새 병실을 나서기 전 내가 정한 나의 규칙은 아빠에게 꼭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건 나의 애정하는 J언니가 준 미션이었다. '아빠에게 사랑한다 말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자.' 했다가도, 어느 날은 곰곰이 생각했다. '한 번쯤 해볼까?' 


한 번쯤 해보니 괜찮았다. 심지어 돌아온 대답이 더 충격적이었다.

"나도 사랑해."


그는 손을 내밀 줄을 몰랐을 뿐, 내민 손을 잡을 용기는 있는 사람. 시작이 어렵지만 리액션은 가능한 사람이었다. 겁이 많고 부끄러운 사람. 


이런 경험들은 내게 다시 용기가 되었다. 물론 이 용기는 섣불렀다.


여느 날처럼, 마치 라디오 엔딩 멘트처럼 "아빠 사랑해."라고 하며 스스로 훈훈함을 느끼던 그때.

"네가 왜 날 사랑하냐!"라고 되받아친 그.


그는 그날따라 그냥 심사가 꼬여서 말도 꼬인 것뿐인데, 내게 체감된 것은 엄청난 거절과 좌절이었다. 봄 같은 따듯한 마음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왜 사랑하냐니? 뭐 나는 하고 싶어 하냐? 나도 노력하잖아!'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왜 사랑하는지, 구구절절하게 확인받고 싶었을까?


연인에게도 안 하는 나의 사랑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으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아마도 남자친구가 네가 날 왜 사랑하냐고 물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냥 너니까- 하고 웃고 말았을 텐데. 왜 아빠에게는 부아가 치밀었을까. 여전히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를 사랑한단 그 말을 다시 할 것이다. 

'왜냐건 그저 웃지요.'의 마음으로 하자.



+ 오늘의 다짐

긴 시간 침묵을 깬 것 치고는 너무 사사로운 글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쓰는 날과 쓰지 않는 날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사는 일이 팍팍함 뿐이라도 그래도 쓰자. 그런 마음으로 다시 살자.






작가의 이전글 병문안 필수품, 배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