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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Mar 15. 2024

병문안 필수품, 배려.

니 맘 편하자고 하는 일방적인 위로는 사절합니다.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는 요즘이다.

우리는 서로를 만날 때 '약속'을 한다.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약속'은 꼭 하는 일이다.


언제 볼래? 괜찮으면 밥? 차? 산책할까?


만남의 정도도 친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세밀하게 조절하게 되고 서로의 관계, 당시 서로의 컨디션 등에 따라 그 만남이 결정된다.


그게 아픈 사람이라고 다를까?


어제는 이미 아빠 친구들이 방문하겠다고 연락해 온 상태였고, 그 친구들도 이미 면회가능 인원을 넘었기에 전날 나는 미리 의료진의 눈치를 살피며 커피와 간식을 준비해 혹시나 그들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챙겼다.


그리고 나는 당일 약속시간보다 30분 더 일찍 도착해서 미리 아빠의 그루밍을 시작했다. 아빠에게도 기억을 상기시키며 웜업을 했다. 오기로 한 친구들 이름을 불러주며, 오면 무슨 얘기할까? 라며 예고도 했다. 아빠가 평소보다 더 편히 얘기할 수 있도록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미리 로션도 바르고 좋은 향도 내고 멋지고 깔끔하게 친구들을 맞을 준비를 함께 했다.


그러나, 반가운 손님보다 더 일찍, 예고도 없이 직장동료라 불리는 예고없던 위로가 불시에 '들이닥쳤다.'


친구들이 올 줄 알았던 아빠도 당황해 이리저리 생각이 튀며 횡설수설하고, 나 역시 너무 당황했다. 순식간에 도합 일곱 명, 나를 포함해 여덟 명이 4인실 입구에 웅성거렸다. (면회 허용 인원은 한 번에 두 명이다.)


심지어 그 무례한 위로는, 아빠를 원숭이 보듯 이리저리 구경하고, 내가 누군지 맞춰보라며 갑분 수수께끼를 시전 했으며, 힘이 상대적으로 빠져있는 왼쪽에 힘을 줘보라며 윽박질렀다. 아빠가 다 들리게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이렇게 무식할 수가!

이런 일방적인 위로가!


솔직히 개빡쳤다고 말할 밖에 내 심정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없다. 보란 듯이 더 상스러워지고 싶지만 그래봐야 그 욕이 내 눈과 귀로 들어올 뿐 어떤 해소가 될까.


한숨? 쉬자면 내가 쉬는 한숨이 더 꺼져내려가겠지. 나도 꾹꾹 참다가 면회가 끝나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야 겨우 쉬는 것이 한숨이다.


그 꺼져내리는 마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본인의 황망함을 어떻게 헤아릴까.


이런 연락 없이 갑작스레 하는 방문은 너무나 당황스럽고 곤란하며, 환자에게는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기에 날짜를 분배해서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좋게 말하려 애썼지만, 내 목소리는 점점 격양되었고 내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


멘탈이 완전히 털려버린 내 손에 무려 직접 손을 가져와 끝까지 일방적으로 봉투를 쥐어주던 당신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무례로 무장해 안타까웠던 사람들. 그 무딘 칼날 같은 폭력적인 위로에 덜덜 떠는 내 손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저 안타까운 사람들.


나는 아빠의 지인 누군가에게는 성격이 드럽고 예민하며 근본 없이 싸가지 없는 딸년일 텐데 어 그래 괜찮다. 그거 나 맞다.


그래도 고향 친구들과의 대화에 금방 분위기는 좋아졌다. 친구들은 아빠가 대답을 잘할 수 있을만한 것들로 질문을 하고 깔깔대며 웃게 해 줬다. 군번을 기가 막히게 외우는 아빠를 보며 놀래고, 고구마, 새침데기 같은 별명으로 친구들을 찾아보라는 말에 어린아이들이 된 것 같이 재밌게 대화를 나눴다. 내가 본 중 가장 길게, 가장 즐겁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며 여전히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아빠 애창곡을 고향의 강 밖에 모른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그리운 금강산과, 장사익, 김형곤 아저씨 같은 걸 들려주라고 이것저것 알려줬다.



모두가 돌아간 병실, 웬일로 계속 깨어있는 아빠에게 너무 답답해서 내가 아빠 직장동료들에게 한 무례한 일에 대해 모두 솔직히 고백했다. 아빠에게 솔직히 다 짜증 난다고 말했다. 그래도 "사과는 해야겠지?"라고 물었다.


"아빠 체면을 생각해서 그냥 사과해라."라는 아빠의 말에


아빠가 원한다면 그게 뭐 어렵겠나. 하면 될 일.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걱정되는 마음에 어려운 발걸음 하셨을 텐데 무례를 범해 죄송했다. 조심히 돌아가시길 바란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안다. 당신들의 마음에 어떤 나쁜 의도도 없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들리는 자리에서 "살면서 저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라고 크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인성이 얼마만큼 존귀한지 나는 모르겠다. 남의 불행 딛고 올라서는 나의 행복이 얼마나 대단한 위안일까.


그래, 맞다. 살면서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

나도 그랬으면 했다.


그래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빠의 왼손이 좀 더 억세지기를. 오늘보다 내일 더 소근육을 잘 쓸 수 있게 도울 수 있기를. 점점 더 정신이 맑아지기를. 말을 많이 하고 다리에 근육도 다시 찾기를. 그런 일들을 돕는 것뿐이다.


이성을 잃고 개빡쳤던 싸가지 없는 딸년은 어제에 묻고, 이 글에 묻자.


앞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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