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말하지 못한 것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나는 많은 브랜드들이 언어로 또 비언어로 고객들을 설득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 생각을 말로 꺼내고, 말로 꺼낸 것을 다시 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이 일은 생각보다 육체적인 노동이다. 설득은 체력의 문제이고, 감정은 종종 내 작업의 연료가 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지금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곧 입장을 드러내는 일처럼 보이는 시대다.
상식적인 의견도, 감정이 실리는 순간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지켜보는 사람의 생각으로 말하더라도
그 말은 언제든 쉽게 진영의 언어로 오해된다.
나는 단지, 지금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침묵의 분위기에 대해 말하고 싶다.
감정처럼 보이지만, 그건 내가 보고 느끼는 현실에 대한 판단이고,
내가 품고 있는 최소한의 상식에 대한 반응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감정을 조심스럽게 다듬어 언어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침묵을 감당한다.
요 근래 나의 언어는 날카롭지 않다. 오히려 조심스럽고, 때때로 머뭇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시선은 나의 문장을 조준한다.
“이 말의 의도는 무엇일까?”
나는 예민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신체 반응이 아토피로 온다.
목덜미 라인이 붉게 붓고, 살갗이 따갑고 간지럽다.
낮시간엔 무사히 견디더라도 의식을 내려놓는 밤이면, 무의식이 작동하고, 나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긁는다.
견디던 것들이 무너지듯, 참았던 것이 한순간에 터진다.
아토피는 몸 안의 자가면역 반응이다.
스스로를 방어하다가, 결국 자신까지 공격하는 모순적인 체계.
요즘의 나는, 그 감각을 몸뿐 아니라 마음에서도 느낀다.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에서, 나는 끊임없이 과잉 반응하고 있다.
누군가의 말에, 어떤 헤드라인에, 혹은 나 자신이 쓴 문장 한 줄에도.
나는 직업상 매일같이 관찰하고,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렇게 일상에서 문득 떠오른 의문은, 자연스럽게 일과 연결된다.
감정을 언어로 바꾸고, 언어를 구조화하는 일을 반복하며
나는 내 생각의 근육을 키워왔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건강한 순환을 방해하는 게 있다.
끊임없이 나를 조준하는 질문들,
“너는 그래서 어느 쪽이야?”
요즘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듣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지 않는지를 먼저 살핀다.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 침묵을 읽는 눈빛이, 대화의 자리를 대신한다.
나는 그 눈빛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나는 상식과 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그 감각을 믿고, 말하고, 표현하며 살고 싶다.
하지만 그 감각을 드러내는 일이, 내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춤하게 된다.
나는 기억한다.
언제든 우리가 ‘어느 편이냐’로 친구가 된 적은 없었다는 걸.
서로의 진심과 따뜻함으로, 아주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들이다.
그 관계들이, 정치적 견해 하나로 흔들리는 순간들을 나는 목격해 왔다.
한없이 좋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등을 돌리는 순간이 두려워졌다.
그리고 더 세속적으로는,
내가 아직 꺼내지 않은 어떤 문장 하나가
미래의 고객을 떠나가게 하진 않을까 하는 불안.
내가 쓴 말이, 나의 일을 증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로막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나는 누구보다 세상에 대해 오래, 깊이 생각하지만
그만큼 언어가 가진 파급력을 알고 있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 쏟아낸 문장이
그 모든 고민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입을 다문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긁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
표현을 참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표현하지 않는 감정을, 글로 쓰지 않는 생각을
그냥 묻어두는 법을 훈련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훈련은 지금도 내 말의 리듬을 흔들고,
내 글의 문장을 자주 망설이게 만든다.
말하는 것이 어딘가 위태로운 일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침묵도 하나의 메시지라는 것을.
무엇을 말할 것인가 못지않게,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에도 태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말의 무게를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표현이 약점이 아니라, 태도가 되기를 믿으면서.
*이 글은 누군가의 침묵을 비판하거나, 어떤 입장을 강요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표현을 망설이는 스스로의 태도를 돌아보는 기록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