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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냥 Aug 23. 2023

'사람들은 밥 차리다 죽은 엄마만 사랑한다'

황인찬 인터뷰 <<김혜순의 말>>

파킨슨 병을 앓으면서도 환자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시는 분을 영어 공부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환자단체를 꾸리고 외국의 단체와도 교류하기 위해 영어공부에 열심이셨다. 이 분 덕에 파킨슨 병에 대해서 처음 인식하게 되었고, 그분의 모습에 적지 않게 감동받았다. 간혹 손이 떨릴 때도 있었는데 이해와 도움을 청하면 가까이 가서 함께 했다.

  

큰 고통을 겪은 후 충분히 자기 객관화된 사람 특유의 차분함으로 무슨 일이든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말씀하셨는데, 말하다 흥분하신 적도 있다. 가족 얘기할 때. 남편과 성인이 된 아들 둘이 있는데, 그들을 향한 분노가 컸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병을 앓으면서도 밥을 차리신다고요? 남편에 아들 밥까지 다 챙기신다고요? 혹시 그들도 많이 아프나요? 여러 번 물어봐야 했다.  


손떨림과 느려지는 행동, 때론 움직이다 얼어버릴 수도 있다. 약물로 증세를 다스리며 자기 삶을 꾸려가는 데 밥은 또 뭔 문제란 말인가. 놀랍게도 그분은 그 와중에도 육체가 멀쩡하고 건강한 남편과 두 아들의 밥을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행동이 느리다고 밥을 빨리 차려주지 않는다고 아들들이 짜증을 냈다는 거다. 하... 며느리가 암에 걸리니 제사가 없어졌다는 다른 분 얘기도 들었다. 뼈대 있는 집안 운운하던 수컷들이 제사상 차릴 하녀가 몸이 아프자 지들이 상차릴 수는 없으니 제사를 없앴다는 거다. 하... 밥 짓는 노동에 지친 내 친구는 '사람들은 밥 차리다 죽은 엄마만 사랑한다'며 절규하기도 했다. 어라 혼의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는 책을 열심히 읽을 때였다.  그 친구의 슬로건은 '엄마는 되지 말자!'이다.


평생 엄마를 착취해 밥을 얻어먹고 살았지만 자식을 가지지 않은 내가 아는 건 반쪽도 안 된다. 나의 성취는 엄마의 시간을 갉아먹고 엄마의 노동을 무상으로 취한 결과였다. 지금은 엄마가 밥을 만들어주면 고맙다고 잘 먹었다고 꼭 말하고, 엄마의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에 상응하는 돈을 드린다. 밥값 낸다고 했더니 질색하길래(엄마의 순결한 희생을 돈 따위가 감히 얼룩지게 만들랴마는) 몰아서 용돈처럼. 돈이라도 내야 덜 미안하다. 엄마 얘기를 하며 불에 덴 듯 울고 싶진 않다.


텔레비전을 볼 때 늘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출연자들이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꺼내면서 불에 덴 듯 운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있는 어머니를 가졌건,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졌건 말입니다.... 엄마와 자식 양쪽 다 죄의식 때문에 그렇게 울게 되지요. 부모는 완벽한 모성을 발휘하지 못한 죄의식, 자식은 모성성을 유감없이, 목숨을 바치도록 발휘해서 희생한 자신의 엄마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말입니다. 모성은 사회적 구성물입니다. 108쪽
우리나라 남성 시인들이 쓴 '어머니'에 대한 시들을 일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밥 해주는, 온 정성을 다한, 희생한, 이제 늙어버린, 그러다가 죽어버린'어머니들이지요. 혹은 전능의 판타지를 장착한 어머니들이지요. 그들은 환상 속에서만 어머니를 위치시킬 수 있을 뿐, 실제의 어머니는 보지 않으려 하지요. 그 남성 시인들은 여성성을 잃어버리거나 숨긴, '새벽 별을 이고 30년을 하루같이'자식들에게 둥근 밥상을 대령한 어머니의 피폐한 노동을 왜 그토록 찬양하는 것일까요? 시마저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듬뿍 품고, 모성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게 만드는지요. 109쪽


주위 남성들을 보면 이들은 자기 엄마에 대해 아예 무지하다. 희생운운은 여전하지만 실제의 엄마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직도 엄마는 생선대가리만 좋아하고 짜장면은 싫어하는 줄 안다. 공고한 사회적 각본인 모성을 깨닫고 어머니의 욕망을 가진 한 주체임을 알게 된다면 생각보다 착취해 먹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랴. 친구가 절규했듯 엄마는 되지 않는 것도 한 방법.   


한국말로 시를 써줘서 너무너무 고마운 한국여자시인 두 분. 최승자 님을 훨씬 애모하지만 티 내지는 않으려 한다. 책은 김혜순 님 쪽이 좋았다. 시도 김혜순 님 쪽이 좋다. 많이 울게 될까 봐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는 아직 못 읽고 있고, <<피어라 돼지>>는 역대급! 비교대상이 없다.<<당신의 첫>>, <<날개 환상통>>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는 좀 싱거웠고 <<여성, 시하다>>,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에세이로 최상급이다. 시를 많이 읽지도 않고 잘 모른다. 시를 읽을 때 심장이 쿵 떨어질 것 같은 기분만 안다. <<여자짐승 아시아하기>>는 미얀마 여행기에 몰입하며 읽었다. 김혜순 시든 글이든 많이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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