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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냥 Aug 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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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비소식이 있어 그런지 산책 나간 길, 자전하는 지구 때문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태양의 가시광선이 다채롭게 지구 대기를 통과했다. 여름 끝자락에서 파랗게 올라온 나무들의 생기는 싱그러웠고. 함께 걷고 있는 강아지도 신났고 함께 깊이 심호흡을 했다. 길지 않은 거리를 함께 뛰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내내 머릿속에선 성폭행 직전 너클로 머리와 가슴을 죽을 만큼 강타당해 결국 죽어간 서른 살의 여성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 냄새, 이 광경, 2023년 8월 21일의 현실이 그녀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푸르른 냄새를 맡을 수도, 변화무쌍한 하늘의 색깔도 볼 수가 없다. 출근길에, 대낮에, 아무 이유도 모르고 쇠붙이 너클에 맞아 죽었으니까.

 

한 인간은 한 세계고, 그래서 한 사람이 죽는 건 세계가 사라지는 일이기에 그 목숨에 무심할 수가 없다. 아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누군가는 꾸준히 죽이고 누군가는 또 죽으니까 어느 죽음은 마음 깊이 다가오기도 하고 어느 죽음은 스쳐 지나가 버린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가 1만 명이 넘는다는 뉴스 위로 그 여성의 죽음이 내려앉는다. 알았던 사람인 것처럼 분통하고 슬프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죽을 만큼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다. 하루를 성실하게 살려는 매일 같은 노력이 있었을 뿐이다. 마음이 불에 덴 것 같다.

  

너클에 맞아 심정지가 온 여자를 보며 성욕을 느끼나. 강간하려 했다는 남자의 얘기는 공허하게 들린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


혐오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때려도 좋다, 임금을 안 줘도 좋다, 차별해도 좋다, 무시해도 된다,라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준다. 지들끼리 혐오하고 싸우면 통치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권력자나 재벌이 죽지는 않는다. 혐오는 늘 불쌍한 사람들끼리 한다. 누군가 개죽음을 당하면 불안하지만 나는 아닐 거야, 하고 지나간다. 불안과 혐오는 공기 중에 떠다니며 농도를 더 짙게 만들고.


우울에 지쳐 책을 본다.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100페이지 넘게 읽었는데 더 읽을 기운이 없다. 다른 누군가라도 읽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 안의 여성들은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래도 살아있고 그림자를 이어 길을 만들려 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 이후 말과 글이 무너졌다

저자가 무심하게 하는 이야기가 너무 고통스럽다. 이런 고통이라면 생존을 위해선 어떻게 하루하루 살고 있는 걸까. 햇살이 바람이 구름이 하늘이 눈에 들어오기는 할까.


이상 죽이지 말라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다. 누구에게? 죽고 상처 입고 폭행당하는 여성들의 절규가 매일 들리는 것 같은데 가해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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